『물까치』 №03 §095 「심층 인터뷰: 2026년의 여름, 서울대에서 노-노-학 연대를 ‘다시’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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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의 여름, 서울대에서 노-노-학 연대를 ‘다시’ 말하다

학사운영직 송혜련 노동자 인터뷰
(좌) 2017년 5월 15일, 행정관 필로티에서 열린 파업출정식에서 발언하는 송혜련 노조원의 모습. (출처: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페이스북)
(우) 2026년 5월 27일, 같은 장소에서 피켓 시위. (제공: 서울대저널 배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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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5일 파업출정식을 했던 그곳, 서울대학교 60동 행정관 필로티에 학사운영직 노동자들이 정확히 9년만에 다시 모였다. 2026년 5월 6일부터 5월 29일까지의 단체행동은, 이제는 희미해진 9년 전 파업의 기억을 다시 불러왔다. 그들이 다시 투쟁에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전에 ‘학사운영직’이 무엇인지, 그 개념과 내력이란? 2017년 파업 당시 ‘비학생조교’ 공동대표였고, 이번 피켓팅의 발단이 된 1인시위를 5월 6일 시작하신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송혜련 노조원께 말씀 청해 듣는다.

◇

5월 마지막 주 행정관 필로티 선전전 현장을 찾아뵌 뒤 이제 다시 뵙습니다. 당시에 드렸던 『물까치』 1・2호를 읽어 보시니 감상이 어떠셨나요?

우리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조합원들, 비학생조교나 생협이 언급된 기사들을 재미있게 읽었고요. 보리(가명)의 글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1] 노학연대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되게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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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저널』에 선전전 기사가 나왔습니다.[2] 그런데 “9년 전 투쟁 때 연대했던 학생을 만났다”라는 오류가 있더라고요. 직접 만난 게 아니고 글을 읽으셨던 것이지요. 우리 『물까치』 기사가 투쟁에 도움 되셨다니 오히려 감사했고, 글 써주신 선배도 감사하다는 말씀 전해 달라고 합니다.

아유, 창피해라. (웃음) 그런데 그 글을 읽고 정말 뒤통수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드는 듯해서. 이번 성과급 피켓팅 선전전이 노동자로서 내 이익을 위해 하는 거라고만 생각하다가, 운동적인 차원에서 피켓팅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2017년 투쟁의 성과가 우리 힘만으로, 우리만 잘해서 된 게 아니었다는 걸 그동안 잊고 있었던 거예요. 학생들 비롯해서 그때 연대해준 모든 분들이, 우리가 개인적으로 예뻐서 도와준 게 아니라, 서울대학교 안의 차별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일환으로 힘을 모아주셨던 건데, 그 점을 소홀하게 잊고 있었구나 하는 반성을 했고. 함께 글을 읽은 다른 분들도 가슴 먹먹해했어요. “그때 홍삼 가져온 대학원생이 누구지?” 막 궁금해하고.

『서울대저널』에 실린 기사를 읽으며 감회가 깊은 송혜련 노조원. (촬영: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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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양한 관심분야가 있구나 싶었어요. 남태령도 다녀오고, 알바 수기도 있고, 게임 비평도 있고. 요즘 운동하는 학생들의 그런 다양한 고민과 관심사를 볼 수 있는 게 되게 좋았고. 그리고 첫 쪽 창간선언문. 왜 제호가 물까치인지 글을 참 잘 썼다. 생긴 것도 예쁜 새인데 이렇게 의미도 부여되는구나. 물까치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성과급 차별 선전전 경과와 추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 처우는 왜 제자리일까요?

최근의 피켓팅 선전전의 발단과 경과를 여쭙습니다. 『저널』 기사 말미에 “보도 이후 대학본부와의 면담이 성사되며 피켓시위는 종료되었다”라고 짤막하게 실렸는데요, 결과를 보다 심층적으로 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1인시위에서 시작하여 20일간의 공동행동으로

2017년에 비학생조교에서 학사운영직으로 전환된 지 올해로 9년차예요. “내년이 벌써 10년차가 되네? 10년이 되었는데 뭐가 변했나?” 그런 얘기가 사석에서 나왔어요. 아시겠지만 우리 조합원들이 서울대노조로 많이 이탈해서 지금 우리가 교섭대표노조가 아니예요. 그래서 그동안 그런 교섭이나 단협 문제에 관여를 못 하고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10년 사이 뭐가 바뀌었을까 궁금해졌어요. 많이 개선되지 못한 거야 피부로 느껴서 알지만 수치로 어느 정도인지를요.

그래서 알아내서 금액 비교를 해보니 너무 황당한 거예요. 정규직 법인직원이 많이 받는 건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많이 받는 줄 몰랐고, 학사운영직이 적게 받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적은 줄은 또 몰랐거든요. 그게 4월 말이었는데, 5월 1일 노동절 연휴[3]에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 울화통 터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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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노조를 통해서 뭘 해보기에는 한계가 있는 조건이에요. 왜냐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대학노조 서울대지부가 지금 교섭대표노조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고민 끝에 조직에 부담을 드리지 않으면서 개인으로서 뭐라도 해보고 싶다고, 지부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1인시위를 하겠다 나섰어요. 지부장님께서도 당일날 점심때 찾아오셔서 이해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1인시위를 한다는 소문이, 제가 일하는 공대부터 시작해서 사흘 새 학교 전체 학사운영직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진 거예요. 비록 우리가 지금 노조가 달라졌지만, 2017년 파업의 기억을 공유하기 때문에 학사운영직들끼리는 그래도 사적으로는 친하게 지내요. 그래서 다들 자기도 뭐라도 해보고 싶다고 나서서, 조별로 20일간 교대로 피켓시위를 이어갔어요. 2017년 때의 가닥이 있어서 우리가 조를 잘 짜요.

사실 처음에는 뭘 해야 할지 목표도 없이 그냥 억울하다고 알려나 보자 시작한 거였는데, 사람이 모이니까 목표가 생기고, 결과적으로 사무국장과의 면담까지 성사된 거죠.

— 사무국장 면담과 대학본부의 방어적 태도

사무국은 총무과・인사과 등등의 상위 부서로, 사무국장이 직원들의 우두머리 격. 학생들은 주로 학생처장을 상대해서 사무국은 별로 친숙하지 않겠지만, 우리는 협상하는 상대가 사무국장인 셈이에요. 면담이 6월 10일에 잡히면서 피켓팅은 5월 29일에 마무리가 되었어요. 그런데 면담이 너무 쉽게 잡힌다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너무 오래 쉬었나? (웃음) 그래서 면담에 저 포함 학사운영직원 네 명이 가게 되었어요. 우리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송호현 지부장님과 저쪽 서울대노조 위원장과 지회장에게 함께 가자고 했는데, 송호현 지부장님은 오셨지만 서울대노조 측은 교섭에 집중해야 한다고 안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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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8일, 행정관 필로티 선전전 현장을 응원 방문한 비서공 집행부 학생들. (촬영: 이일휘)

그런데 면담에 학교 측에서는 사무국장, 인사교육과장, 인사과 팀장, 인사과 노무사, 총무과 노무사 이렇게 다섯 명이 나온다는 거예요. 놀랐지요. 당일날 아침에 생각이 들더라고요. 설마 이거 대학노조 서울대지부에서 하고 있는 차별시정소송 때문인가?[4] 그래서 면담장 들어가기 전에 일행들에게 말을 꺼내 봤더니, 다들 제가 과도하게 생각하는 거라더군요. 그래서 저도 수긍하고 올라갔는데, 들어가서 앉자마자 사무국장 첫마디가 대뜸 그 소송 이야기인 거예요. (간사: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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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대학운영직 소송 결과에 따라 우리 학사운영직도 영향을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아직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으니 괜히 자극할 필요 없겠다 싶어서 학사운영직 성과급 문제에만 집중하자고 들어갔는데, 정작 학교 측에서 먼저 인사말 대신 소송 얘기를 꺼내는 거예요. 확실히 대학본부가 그 소송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듯해요. “지금 그 소송 얘기를 하러 온 거 아니다”라고 우리 쪽에서 사무국장 말을 끊어야 했을 정도로. 어쨌든 들어가서 원래 하려던 말은 다 하고 왔어요.

— 학사운영직 성과급 차별의 구조적 원인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학사운영직이 원래 조교였다가 직원으로 전환됐지요. 그런데 국가에서 서울대 예산을 받아올 때 세목은 여전히 조교 인건비 명목으로 받아서, 그걸 대학원생 조교와 학사운영직에게 나눠줘요. 그 성과급 예산 총액이 1억 2천만 원밖에 안 되고, 그걸 나눠받다 보니 얼마 안 돼요. 이 구조가 해결되지 않으면 성과급이 크게 바뀔 수가 없죠.

원래 조교 TO가 350여 명인데, 2016-17년에 우리가 투쟁했을 당시 비학생조교가 250여 명이었어요. 만약 이 인원이 조교 예산 체계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면, 100여 명분에 대한 예산만 유지되고[5] 250여 명의 인건비는 별도의 예산으로 새로 편성해야 하는 상황이 되겠죠. 학교 입장에서도 수백 명분의 예산을 별도 세목으로 신설해서 국가로부터 따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은 우리도 이해는 해요.

하지만 법인직원들은 작년에 15억 원 성과급 파티를 했대요. 서울대노조 총회에서 그걸 성과라고 발표해서 알게 되었어요. 그러니 돈이 없어서 학사운영직 성과급을 못 준다는 핑계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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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대화를 통해서 당장에 얻은 성과는 없었던 것이지요?

없죠. 그리고 성과를 얻을 수도 없어요. 왜냐하면 그건 교섭에서 다뤄야 하는 거예요. 교섭대표가 아닌 사람들에게 사측이 뭔가 약속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 피켓 시위 자체도, 진행 중인 교섭에서 교섭대표노조가 우리 학사운영직 처우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가 있었죠. 우리도 면담 들어갈 때부터 성과급을 얼마 올려주겠다는 확답을 기대하고 들어간 것이 아니에요. 일단은 학사운영직의 단결력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보여줬다. 그것으로 교섭에 도움을 주는 게 목표였고, 그 정도는 하고 나왔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자체직원의 개념과 노동조건: 학생들 눈에는 다 같은 ‘교직원 선생님’, 왜 이렇게 복잡할까요?

보통 학생들은 자체직원 개념을 잘 모르잖아요. 당사자 입장에서 좀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비서공 활동회원으로서도 헷갈리는 것이, 가령 예전 자료를 보면 ‘비학생조교’와 다른 자체직원이 구분되는 것처럼 서술된 경우가 있고, 방금 전 말씀 들을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 법인화 이전의 직렬 구조와 학사운영직의 역사적 기원

2010년대 말까지 서울대 총장이 매번 국정감사 불려가면 비정상적 직군 문제 때문에 혼나고 왔죠. ‘비정규직 백화점’이라고. 2012년 법인화 전에는 정규직 교직원들은 공무원이었어요. 그런데 그 적은 공무원들만 가지고 일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학생들이 등록금에 더해서 내는 기성회비라는 게 있었어요. 그 기성회비 예산으로 인력을 뽑은 게 기성회직. 그러다 법인화가 되면서 공무원들과 기성회직이 합쳐져서 법인직원이라는 정규직 직군이 된 거예요. 비서공 회원들이라면 이 정도는 다들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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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교직원의 직군 구분. 2012년~2017년(좌), 2018년~현재(우). 2017년 6월 비학생조교가 학사운영직으로 전환되었고, 간접고용이었던 시설관리직이 2018년 2월 직고용으로 전환되었다. (클릭/터치하면 확대됩니다)

그리고 법인화 이전으로 잠시 돌아가서, 국가 세금으로 월급을 주던 인력으로 공무원과 함께 조교가 있었어요. 그리고 각 단과대・연구소・기숙사 등 기관들마다 각자 예산으로 채용하던 게 자체직원. 그래서 원래는 ‘조교’라는 게 ‘자체직원’과는 구분되어 있었던 거죠.[6] 그리고 조교들 가운데 대학원생 조교들 말고, 학생이 아니면서 생계를 위해 조교로 들어온 사람들이 우리 같은 경우였죠. 그게 비학생조교였고, 2017년 투쟁을 거쳐서 총장발령 자체직원의 일종인 학사운영직으로 전환된 거예요.

자체직원이라는 범주 아래에, 법인화 이전부터 ‘자체직원’이었던 대학운영직과 더불어 학사운영직・기금직・입학사정관 등이 함께 있죠. 그리고 청소미화・경비・기계전기 등 시설관리직 노동자도 총장발령이지만 업무 성격이 나머지 자체직원과 많이 달라서 별도의 교섭단위를 가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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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운영직은 총장발령이라서 임금과 수당이 다 똑같이 정해져 있다는 게 특징이에요. 어느 단과대에 배치되든 동일한 규정이 적용되죠. 반면 기관장발령 대학운영직은 공대가 다르고, 자연대가 다르고, 농대가 다르고, 또 반도체연구소,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소속 기관장에 따라 처우와 조건이 다 달라요. 그래서 대학운영직의 노사 교섭은 각기 다른 임금・수당・복지 조건들의 최저선을 맞추는 식으로 정해져요.

그렇게 흩어져 있어서 조건이 상이하다는 게 자체직원 문제, 정확히는 대학운영직 문제의 핵심이지요. 학사운영직은 그렇지는 않은 것인가요?

조건이 정해져 있다는 건 좋은 편이죠. 우리가 비학생조교에서 학사운영직으로 전환될 때 원래 대학본부 측은 총장발령 유지 안 해주려 했어요. 뿔뿔이 흩어져서 기관장발령으로 들어가라. 하지만 우리가 임금을 삭감해 가면서까지 고수한 게 총장발령이에요.

공대・농대・자연대처럼 크고 시스템 갖추어진 단과대는 기관장발령이 되어도 큰 문제 없을 수도 있지만, 인문대・사회대처럼 직원 수도 적고 예산도 적은 기관들은 장기적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판단했거든요. 당장은 우리가 투쟁하고 파업해서 이겼으니까 몇 년은 괜찮을 수 있지만, 정년퇴직할 때까지 안정적일 거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흩어지는 건 받아들일 수 없고, 임금이 하락하더라도 총장발령 유지하겠다.

2017년 5월 25일 파업 9일차(휴일 제외) 행정관 필로티 농성장. (출처: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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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운영직 전환 당시에 임금이 최대 44% 삭감되었지요?

원래 국가교육공무원 7급 상당 수준의 임금을 받았어요. 그런데 2017년에 학사운영직 전환되면서 근속연차 초기화하고, 호봉별로 8급의 90%로 합의하면서 그렇게 된 거죠. 그래서 오래 일하신 분일수록 삭감폭이 컸어요. 당시에 제가 9호봉이었으니까 24% 삭감. 그리고 20호봉 되는 분은 44% 삭감되었던 거죠.

그런데 법인직원은 같은 8급 1호봉에서 시작해도 승진을 하면 8급에서 7급으로 올라요. 그러면 임금이 불연속적으로 점프하는 구간이 생겨요. 하지만 우리는 8급에서 선형적으로 쭉 올라가는 거죠. 법인직원이 근속 18년차면 못해도 6급이거든요. 하지만 저는 똑같이 18년 일해도 8급 18호봉이고. 그게 9년간 누적되어서, 정신차려 보니 법인직과 임금격차가 이만큼 벌어져 있었던 거죠. 그래서 승진체계는 원하지도 않고, 10호봉에서 11호봉 갈 때 임금 점프구간이라도 만들어달라는 게 우리 요구사항이에요.

— 학사운영직의 미시적 소외, 그리고 전망

비서공 출범 직후에 비학생조교 대표자 격으로 비서공 초기 사업들을 함께해주셨습니다.[7] 그때와 비교해서 학사운영직의 현황은 어떤가요?

그 당시에 보장받지 못했던 모성보호(출산휴가・육아휴직・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 같은 것들은 이제 법률 기준까지는 다 보장받게 된 것 같아요.

우리가 학사운영직으로 전환되면서 근속연차가 리셋되었잖아요? 가령 근속 10년차면 휴가가 10일 나와요. 20년 되면 20일 나오고. 그런데 우리는 근속연차가 리셋되었으니 휴가에서 그런 불이익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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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대의 경우지만 이런 것도 있어요. 직원송년회에서 대학운영직 선생님들이 20년 근속시상을 받으시는데, 우리는 2017년부터 헤아려서 근속 9년차인 거죠. 그럼 2017년에 이미 20년 일한 분들은 정년퇴직할 때 몇 년차로 퇴직하겠어요? 이런 건 물질적인 불이익은 아니지만, 직원으로서의 사기에 영향을 미친달까? 그래서 어떤 분이 공대에 “나도 20년 넘게 일했다”라고 얘기했는데, “너는 총장발령이라서 뭘 해줄 수 없다. 본부에서도 해주고 공대에서도 해주면 이중으로 받는 거 아니냐”라는 식으로 서로 떠넘겨서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죠.

학사운영직 외의 자체직원이 소외되는 것과는 또 결이 조금 다른가요?

그렇죠. 대학운영직은 워낙에 조건이 기관별로 파편화되어 있어서, 대학운영직이 학사운영직보다 더 열악한 곳도 있지만 대학운영직이 학사운영직보다 성과급은 더 많이 받는 곳도 있어요. 그렇다고 그분들 처우를 우리만큼 끌어내려라 그런 뜻이 절대 아니고,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본부에서 모른 척하고 단과대에서는 소외받으면서, 차별도 차별이지만 소속감을 못 가지는데, 그러는 사이 벌써 내년이면 전환 10년차가 성큼 다가와요. 그래서 10년 정도 되었을 때 이걸 한번 뒤집지 못하면 앞으로 뭔가 개선될 계기를 만드는 게 어려워질 것 같아서 이번에 피켓팅 선전전을 한 측면도 있어요. 왜냐면 학사운영직은 사람이 더 이상 유입되는 직군이 아니거든요. 한 명 퇴직한다고 한 명 새로 고용하지 않아요.[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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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학생조교라는 개념 자체가, 직원처럼 일하는데 신분상으로는 조교라는 고용상태의 특수성이었고, 그 특수성을 해결하기 위해 비학생조교의 후신으로 만들어진 게 학사운영직이니까요. 학사운영직은 ‘과거 조교로 채용되었다가 2017년에 전환된 총장발령 자체직원’으로 정의되니까, 추가 채용 없이 기존 인원들이 퇴직함에 따라 자연스레 사라져갈 수밖에 없어요. 하는 일은 직원인데 TO는 조교인 형태로 더이상 사람을 뽑지 않잖아요. 2017년 파업 당시에 비학생조교가 250여명이었는데, 지금은 학교 전체에 학사운영직 170여 명으로 추정해요.

10년, 20년 지나 수적으로 열세가 되면 어떻게 후퇴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고민은 9년 전에도 했어요. 그래서 장기적으로 미래를 봤을 때 우리는 다른 분들과 함께 가야 해요.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라는 말처럼요. 2016-17년 투쟁도 많은 분들 응원을 받아 이겼던 거였고. 그걸 이번에 『물까치』 덕분에 새삼 다시 깨달았죠.

2017년 3월 8일 19시, 학생 100여 명과 함께한 우정원 5층 실내 농성장 연합집회. “서울대학교의 주인은 성낙인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우리다!” (출처: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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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017년 ‘비학생조교’ 투쟁: 투쟁 420일, 해직 90일, 파업 15일의 치열한 ‘버라이어티’

2017년 파업으로부터 어느덧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비서공은 2018년 3월 출범하여, 그 전 일은 보유한 자료가 많지 않지만, 2017년 파업은 비서공 출범 계기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9] 서울대 학내 노학연대의 시원이 되는 기억으로서 그때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생각했는데, 인터뷰 요청을 받고 예전 사진들을 다시 찾아보다 보니 당시 일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해졌어요. 무엇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 2016년, 해고 대란의 전조와 조직화의 시작, ‘비학생조교’의 탄생

제가 법인화 전에 조교로 들어왔거든요. 조교는 1년마다 재계약을 해요. 2018년 비서공 출범 당시 간담회 때 우리가 육아휴직을 쓸 수 없었다고 했던 게 그래서였어요. 익년 10월에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1월에 육아휴직을 하면 누가 재임용을 시켜주겠어요. 당시에 관리자들이 장난처럼 던지는 “너 그러다 재임용 어려워” 하는 말이 정말 듣기 싫었어요.

1년에 한 번 계약하는데, 명목상 행정조교는 최대 5년, 실험조교는 7년까지 계약을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기관에서 회의자료에 “이 사람은 꼭 필요해서 재임용을 해야 한다”는 문구를 회의록에 남겨놓거나 하면 5년, 7년 뒤에도 계속 재임용이 됐고요. 그러니 2016년에 문제가 터졌을 때 이미 근속 20년차씩 되는 분들도 계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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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법인화가 되면서 그전의 공무원 시스템과는 달라지고 법적인 부분에서 노무를 타이트하게 관리하게 돼요. 2012년부터 조교 임용 햇수가 새로 시작되어 5년차 되는 해가 2017년이었어요. 2017년 2월 28일자로 5년 만료자들이 나오게 되는 거죠.

2015년 말부터 앞으로는 그동안 해주던 재계약을 안 해준다는 소문이 흉흉하게 돌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2016년 연초에 대학본부 측에서 공문을 보냈어요. 1년 뒤 기간만료되면 재임용 없다고. 이거는 진짜거든요. 그래서 위기감을 느낀 조교들이 웅성웅성거리다가, 저하고 박○○ 선생님이라고 나중에 노조에서 저랑 같이 비학생조교 공동대표 하신 분이 계신데, 그분을 중심으로 네트워크와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면서 2016년 1월부터 사람들이 모였어요.

모였으니까 우리가 노조를 만들자.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만들지? 그럼 기존의 노조에 가입을 하자. 처음에는 서울대노조에 가입신청을 했어요. 왜냐하면 그때 교직원 전체에 대한 교섭권을 서울대노조가 갖고 있었는데, 자체직원은 교섭단위 분리가 되었지만 조교는 아직 분리되지 않았던 거죠. 근데 안 받아주겠다는 거예요.

서울대노조가 2018년 이전에는 정규직 법인직원만 받아주었지요.

맞아요. 그래서 민주노총 대학노조 서울대지부를 찾아갔고. 2016년 4월 5일 서울대지부 총회에서 조교들 가입원서 122장을 전달했어요. 그때부터 안 해본 게 없어요. 조를 짜서 출퇴근할 때마다 정문과 후문에서 피켓과 현수막 들고 서 있는 건 기본이고, 결의대회, 조합원 교육, 국회의원 간담회, 감사원 감사 요청, 별의별 걸 다 했어요.

우리가 법적으로 기간제법과 고등교육법 사이의 사각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대학본부 측 주장과 우리 주장이 충돌했거든요. 기간제법에 따르면 2년 이상 고용되면 무기계약직으로 고용해야 하지만, 본부에서는 109조교는 고등교육법 적용 대상이라 예외라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법률자문을 받았더니, 그건 학업을 병행하는 조교 얘기이고 우리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기간제법 적용을 받는 게 맞다. 그래서 저와 박○○ 선생이, 이 특성이 드러나는 단어로 우리를 규정하자고 했어요. 그래서 그때 ‘비학생조교’라는 말이 만들어졌던 거예요. 그리고 인천대도 비슷한 문제가 당시에 있었거든요.

인천대도 법인화되었으니까 서울대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겠군요?

그렇죠. 인천대는 법인화되면서 조교 시절 임금 그대로 직원 전환이 되었어요. 그때 인천대에서 투쟁을 했던 것도 민주노총 대학노조라서, 그것도 우리가 민주노총으로 가는 데 영향을 미쳤어요. 그래서 2016년 4월에 노조 가입하고, 2016년 6월에 법적 검토 받고, 여름방학 동안 워밍업을 하고, 9월 개강하자마자 출퇴근 선전전, 국회 기자회견, 점심선전전에, 학교 안을 돌아다니면서 유인물 나눠주고 그랬어요.

그리고 아까 얘기했듯이 교섭권을 서울대노조가 갖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자체직원처럼 교섭단위를 분리할 필요가 있었어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해서 승인을 받고, 학교에서 재심 신청을 해서, 중앙노동위원회에 올라가서 다시 승소해서 비로소 교섭이 가능해진 거예요. 그게 2016년 10월이었어요. 그때부터 교무처장, 연구부총장, 교육부총장 이런 보직교수들을 만나가며 엄청 압박했어요. 감사원 감사, 국정감사, 할 수 있는 걸 다 했죠.

‘조교’ 교섭단위가 그때 분리되어서 처음 만들어졌던 건가요?

맞아요. 분리되었을 당시에는 대학원생 조교들과 비학생조교들이 모두 ‘조교’ 범주에 속했는데, 투쟁 승리하고 학사운영직으로 전환되면서 우리는 자체직원 교섭단위로 옮겨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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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에 을지로위원회라고, “갑(甲)이 아닌 ‘을(乙)’을 ‘지’키는 ‘로law’” 뭐 그런 걸 하겠다는 데가 있잖아요. 마침 서울대에서 터진 일이고, 총장 공격할 수 있고 이슈화되고 엄청 좋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연구부총장을 만나고 교육부총장을 만나고 그럴 때, 정년보장과 고용승계가 될 거라는 식의 말이 흘러나와서 기사화가 됐어요.[10] 그러자 을지로위원회에서는 “서울대학교 비학생조교들의 문제가 이렇게 해결됐다!” 그러면서, 자기들 치적이라고 우리를 불러서 유은혜 의원하고 사진 찍더라고요. 을지로위원회에 무슨 현황판이 있어요. 이 문제 저 문제 나열해 놓고, 해결된 문제는 옆에 꽃을 달아 놓았는데요. 우릴 불러다 거기 꽃 다는 행사까지 했어요. 기자들 불러다 놓고 사진 찍으라고 하고, 그게 2016년 12월이었죠.

— 2017년 봄 33인 해고, 분노와 눈물의 우정원 점거 농성

그래 놓고 2017년 개강 직전에 33명이 해고를 당하셨지요.

본교섭에 들어가니 “정년보장 안 될 수도 있다, 이거는 교섭에서 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러는 거예요. 녹취록도 아직 있어요. 우리는 “그게 말이 되냐. 본부 측에서 인터뷰하셔서 기사도 나고 그 기사 때문에 내가 국회 가서 유은혜한테 꽃도 달아주고 기념사진도 찍어주고 왔는데.” 그래서 정년보장 번복 규탄집회 하고 난리가 났어요.

2017년 2월 28일에, 교직원 어린이집인 941동 백학어린이집과 느티나무어린이집에 자녀를 등원시키는 조교들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누구누구 어머님, 어머님이 고용 만료되심에 따라 3월부터 아이 등원을 못 시키신대요” 이런 연락이 오니까 학부모 노조원들이 난리가 났죠. 아이와 관련된 문제면 부모들은 정말 예민해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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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5일, 경영대학 58동 앞 정년보장 번복 규탄집회. (출처: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페이스북)

우리가 사무국장한테 쫓아가서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봤더니, 시스템 마련이 안 되어 있던 거예요. 정년보장을 해주려고 방법은 찾고 있는데, 그 사이 2월 말이 되어 버렸고, 일단 계약이 만료되어 버린 상태에서 해고하지 않으면 법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계약기간 만료로 해고할 수밖에 없다는 게 학교 입장이었죠.

2018년에도 비슷하게 돌아가지 않았던가요? 그 당시에 무기계약직 전환 심의위원회 준비가 늘어져서, 심의위 만들어지기 전에 계약 만료되신 자체직원들이 그대로 해고되고 구제를 받지 못하셨지요.

맞아요, 우리도 그 비슷한 상황이 도래했고, 그게 어린이집에서 가장 먼저 터졌던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어린이집 문제 때문에 사무국장 면담하러 회의장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사방에서 문자가 오고 전화가 오고 난리가 났어요. 공문이 왔대요. 무슨 공문이냐 하면, 조교들 퇴직 처리된다, 마이스누 계정이 정지된다, 해고 대상인 조교들에게 업무112지시하지 마라, 이런 공문이 각 기관으로 다 온 거예요. 그래서 또 그날 오후 다 모여서 난리를 쳤어요. 저녁이 되자 일단 해산하고, 3월 개강하자마자 교무과로 모여라, 했어요.

이제 3월부터 마이스누 계정이 정지되잖아요.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그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 증거를 모아 두라는 지침이 있었어요. 근데 그때까지 완벽하게 다 안 된 거예요. 그래서 2월 28일 저녁 해산하자마자 해직 대상자들은 각자 사무실로 흩어져서 자정까지 계정이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걸 다 했어요. 내가 받은 전자우편 다 백업하고, 공문들 내려받고, 엉엉 울면서 그렇게 했어요.

그러고서 3월 2일에 153동 우정원 건물에 모였던 거예요. 지금은 대학본부가 60동 행정관에 다 모여 있지만, 그때는 교무과는 우정원, 총무과는 3식당 앞 32-1동 해동학술문화관(현 창업지원단 소재지), 이런 식으로 다 흩어져 있었어요. 직원 담당은 총무과지만 조교 담당은 교무과였어요. 그래서 교무과 있는 우정원에 쳐들어갔다가 주저앉았어요. 『물까치』 2호에 나온 점거농성이 그렇게 시작된 거죠. 3월 2일부터 3월 9일까지 농성을 했고. 그래서 그때 2월 28일자로 계약만료된 사람이 33명이었고, 제가 그 중 한 명이었어요. 그리고 3월, 4월, 5월에도 계약 만료된 해고자가 한두 분씩 더 생겼어요.

— 2017년 5월의 파업과 5・29 협약 승리까지

학부생들은 일상적으로 행정사무를 봐주시는 ‘과사 조교님’들과 친숙한데, 그런 선생님들이 해고 대상으로 몰렸다는 사실이 학생들에게도 무척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전학적으로 연대가 일어났던 것이지요. 이어진 투쟁 전개 과정을 자세히 들려주시겠어요?

우리는 3월부터 이제 해고자 신분인데, 그렇다고 집에 돌려보내면 아무것도 안 되잖아요. 그래서 해고자들은 매일 노조사무실로 출근하고, 113정문과 후문에서 현수막 들고, 1시간 단위로 조를 짜서 매일 9시부터 17시까지 본부 앞에서 피켓 시위를 했어요. 그러던 중에 노동절도 있어서 민주노총 노동절 대회에 우리 조합원들이 나가서 서명을 받았죠. 저는 교섭하느라 못 갔지만요. 그런데 교섭이 계속 파행되었어요. 지노위에서 결렬되고 중노위에서 결렬되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해서 5월 15일부터 파업을 했죠.

2017년 5월 15일 파업출정식. 가장 앞줄 가운데가 송혜련 노조원. (출처: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페이스북)

파업하면서도 진짜 버라이어티했어요. 조를 또 짜서, 한 조는 기숙사 맞은편 총장 관사 앞에 텐트 치고 죽치고 있었어요. 거기서 짜장면도 시켜먹고요. 그리고 다른 조는 차를 타고 하루종일 총장을 쫓아다니는 거예요. 15일부터 26일까지 파업을 했는데, 29일에 도장찍은 날까지 헤아리면 파업을 거의 보름을 한 거잖아요? 그러면 한 달 월급이 반토막이 나는 거죠. 첫 주는 어떻게 버텼어요. 2주차 되니까 아침에 눈을 뜨기 싫은 거예요. 부담에 짓눌려서. 근데 또 학교측에서 안 보내도 되는 공문을 보내서 화나게 만들어서 도와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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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3일 ‘총장잔디’에서 열린 파업투쟁 응원 문화제 ‘너의 편’ 중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문선. (출처: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페이스북)

둘째 주 수요일, 5월 23일에 총장잔디에서 문화제를 해서 사람들이 감정이 막 고조되고 격앙된 참이었는데, 다음날 아침 노조 사무실로 내용증명이 왔어요. 해고자들 건강보험료 빨리 납부하라는 독촉장을 장학복지과에서 보내왔는데, 그걸 받아든 우리가 열받아서 행정관 건물 옆구리 우체국 있는 곳으로 올라갔어요. 당시에 학생들의 행정관 점거 때문에 정문이 막혀 있었거든요. 그런데 대학본부가 통로에 철문을 세워놓은 거예요. 무슨 감옥 문의 시찰구처럼 눈구멍만 뚫어 놓고.

우리가 그 건보료 독촉장을 전지 사이즈로 확대출력해서 우체국 유리문과 통로 철문에 도배해 놓고, 민중가요 틀어놓고 구호 외치고 구두 벗어서 철문 두드리고 하니까 안에 있는 장학복지과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정신이 없었어요. 사실 장학복지과에서는 우리 사정은 알지도 못하고 자기들 일 했다가 우리 화를 뒤집어쓴 셈이었죠. 그 와중에 총장 추적팀에서 전화가 왔는데 또 우정원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철문 두드리는 건 한 조만 남기고, 나머지 인원은 모두 우정원으로 뛰어가서 총장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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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치면 안 되니까 5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행정관에서 우정원까지 뛰어가서 우정원 지하주차장에서 따라잡았어요. 그러고서 총장 차 앞에 무릎 꿇고 연좌해서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내버려둘 거냐” 그랬더니 또 행정관에서 사무국장부터 시작해서 온갖 관리자들이 다 뛰어서 우정원에 쫓아왔죠. 제가 맨 마지막에 슬그머니 도착해 보니 다들 숨차하며 대치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성낙인 당시 총장이 “내가 문제의 심각성을 알았으니까 연락하겠다” 하고, 우리는 “절대 안 된다, 확실한 날짜 주기 전까지는 못 비킨다”. 그래서 그 다음날 만나기로 했어요. 거기서 합의안이 도출이 되고, 그 다음주 월요일에 5・29 협약 도장을 찍고, 해고자들이 모두 복직이 되었죠. 그렇게 버라이어티했어요.

나중에 사무국장이 한다는 말이, 장학복지과는 아무 것도 모르고 독촉장 보낸 건데 그분들 덕분에 일이 해결된 거나 다름없다고. 서로 퇴로를 마련하고 끝낼 수 있는 빌미가 된 거죠. 모든 일이 지나서 생각해 보면 풀려야 하는 일로 안 풀리고 다른 조건들 때문에 풀리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학생활동가에서 서울대학교 교직원까지: ‘꿈’을 이루기까지, 활동가가 노동자로 거듭난 시간

서울대 입사 당시에는 조교셨지요? 언제 어떻게 입사를 하셨는지 계기나 과정이 궁금합니다.

제가 01학번이거든요? 그 당시 대학 시절에 일종의 학생운동을 했었는데요. (간사: 일종이 아니라 총학생회장을 하셨잖아요. 전설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경리과장이 29억 횡령해서 그 액수만큼 등록금 돌려내라고 대학본부 앞에……) 쓸데없는 이야기 한 거 누구야. (웃음) 그때 제 모교 재단이 문제가 많았어가지고. 대학 다닐 때는 그런 사학비리 때문에 싸웠죠, 그러다 이제 졸업을 해야 했고……. 제 세대가 그런 식의 학생운동 거의 마지막 세대였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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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했는데 직업 운동권이 되지 않은 건, 운동권 내 정파 문제라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요. 운동의 과정 속에서 여러 정파들을 경험하거나 같이 활동하거나 했는데 그런 것들에 회의감이 있었고. 여성운동도 해보고 싶었고. 그게 정리되지 못한 채 졸업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학생운동만 했지 취업 준비를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제가 예전에 우리 학사운영직 노조원들한테 한 얘기가 있는데, “내가 대학교 졸업하면서 꿈이 있었다. 꿈이 뭐였냐면 노조가 있는 회사에 들어가서 노조원 동지들과 함께 노동절 대회 나가는 게 내 꿈이었다.” 우리 때는 취업 자체가 잘 안 되기도 했지만 노조 있는 회사에 취업하는 건 더 어려웠어요. 노조는 대기업에나 있었고, 비정규직이 막 확대될 무렵이었으니 정규직화 투쟁을 위해 노조를 만드는 것도 아직 많이 없었어요. 하여튼 그랬는데, 2017년 노동절 때 “나는 이제 꿈을 이뤘다.” 비록 나는 관악에서 교섭하느라 못 나갔지만, 마음으로 같이 간 거죠? 그런 게 ‘꿈’일 정도로 취업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2017년 5월 1일 노동절 대회. 2월 말 해고자 33인에 그사이 3인이 더해져 현수막에는 “36명 부당해고”라고 쓰여 있다. 당일 교섭 때문에 송혜련 노조원은 관악에 남았지만, 꿈은 이루어졌다! (제공: 송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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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활동가가 되려고 하니, 정파에 소속된 상태가 아니라서 정파 운동권과 관련된 조직으로는 연결이 안 되었어요. 직접 시민사회단체 구직 사이트를 통해 일자리를 찾아 면접을 보러 다녔죠. 그러다 어느 단체에 지원했다가 떨어졌지만, 면접 보신 분이 저를 좋게 봐주셨어요. 마침 어느 교육운동 단체에 사람이 비니까 해보라고 주선하셔서 2년 정도 일했어요. 훌륭한 분들 많이 만나고 좋은 경험도 많이 했지만, 제가 생각한 교육운동은 대학운동, 고등교육운동이었는데 거기는 초증고등학교, 입시문제 쪽이라 약간 안 맞았죠. 게다가 활동비를 월 80만 원 받았는데, 그 당시에도 많은 돈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제가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상태로 거길 다녔어요. 졸업할 줄 알았는데 학점 계산을 잘못해서 졸업이 미뤄졌어요. (웃음) 지금 학생들 학점 계산은 더 꼼꼼이 살핍니다. 나 같은 실수를 하면 안 되니까요.

거기에 한 2년 있다가, 아무래도 그만둬야 할 것 같다, 운동적 전망에 대한 고민도 있고 당장은 돈도 필요하다고 했더니 그 단체에 계시던 분이 서울대 조교 일자리에 지원해 보라고 소개해 주셨어요. 그래서 여기 들어와서 9시부터 18시까지 관악에서 일하고, 퇴근하면 모교에 가서 후배들 지도하고. (웃음) 서울대에서 돈 벌어서 모교 후배들 밥 사주고. (간사 웃음) 그래서 서울대 처음 입사했을 때는 한 1~2년 정도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오래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 했는데, 어느새 2016년이 되었던 거예요.

2016-17년 투쟁 당시에는 건설환경공학부 소속이셨지요?

법인화 전에는 사회과학연구원 소속이었는데, 법인화 뒤 법적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려고 학교가 자리를 이동시켰어요. 고등교육법상 ‘학사와 보조업무’를 하는 사람으로 제한을 하려 했던 거예요. 그래서 연구소 직원이나 단과대 행정실은 안 된다고 과사(학과・전공 행정사무실)로 118이동하게 된 거죠. 제가 2008년 12월에 입사해서 2012년에 공대 건설환경공학부로 이동했고 거기서 해고를 맞았어요.

사회대에 있다가 공대로 넘어오니 분위기가 달랐어요. 사회대는 그냥 출퇴근하면 끝이었거든요. 동료도 한 명뿐이었고. 그런데 공대는 일단 규모가 크고 ‘회사’다운 조직생활이라는 게 있었어요. 단순히 돈 버는 공간을 넘어서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 조교들이 있고, 나이대가 같으니 친해지기도 하고, 회사생활이 재미있어지고. 그렇게 어영부영 계속 일하다 보니 해고사태까지 맞았어요. 제가 과거에 학생운동을 했다 보니 자연스레 대표가 되었죠.

지금은 공대 안에서 순환근무를 돌아서 재료공에 와 계시지요?

맞아요. 학사운영직은 4년에 한 번, 대학운영직은 5년에 한 번 근무지가 바뀌어요. 제가 첫 해고자였잖아요, 그래서 무슨 시스템이 있으면 제가 가장 먼저 적용되는 사람인 거예요. 저는 결혼도 안 했다 보니 육아휴직도 안 해서, 원래 휴직기간이 근무기간에서 빠지지만 저는 휴직 없이 계속 출근만 하다 보니 4년이 차면 칼같이 이동해요. 재료공학부에 온 게 2022년이었으니 올해로 4년을 채웠어요. 6개월 뒤에 또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날 것 같아요.

승리보다 값진 동지들: 직군 안의 연대, 다른 직군 노동자들의 연대, 학생들의 연대

서울대학교에서 노동자이자 노조원으로서 근무와 활동을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어떤 것이 있으실까요?

몇 가지 장면이 생각나요. 첫 번째, 제가 해고되고 우정원에서 철야농성 하면서 각자 대자보를 쓰자고 했어요. 제가 경험이 있으니 가장 먼저 샘플로 하나 쓰고, 그걸 보고 다들 자보를 써서, ‘해고자 누구누구’ 119이름까지 써가지고 각자 근무하는 과사 앞에 붙여놓고 오기로 했어요. 그래서 밤 열두 시에 건환공 과사에 대자보를 붙이고 왔어요. 당시 건환공에 조교가 총 5명, 그 중 2명이 해고되었거든요. 그런데 나머지 3분이 다음날 제 자보 옆에 A4로 “복직을 지지합니다” 붙여놓은 거예요. 그리고 그랬더니 건환공 학생들이 그 밑에 포스트잇으로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메모를 또 붙여놓은 거예요. 저한테는 그게 아직도 되게 인상에 남아요.

2017년 3월 6일 아침 건설환경공학부 행정실 앞 게시판에 붙였던 해직자 명의 자필 자보. (제공: 송혜련)
다음날, 자보 옆에 동료들과 학생들이 붙인 응원의 쪽지. (제공: 송혜련)

왜냐면 서울대가 저한테는 돈 버는 곳에 불과했고, 공대 와서 좀 회사다운 생활을 했지만 그뿐, 정작 서울대 학생들에게는 무관심했던 것 같은데, 학생들이 날 생각해준다는 걸 그때 비로소 느꼈어요. 보리의 『물까치』 글 덕분에 이번에 다시금 느꼈던 그 충격을 그때 처음 120느꼈던 거죠. 이 학생들이 나를 알고 있었구나. 이렇게 써붙이는 것 자체가 용기인데. 너무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이 학생들 중에 이번에 서울대 교수 임용되러 왔다는 이들이 있었어요. 다른 대학에서 이미 강의하고 있다는 이도 있고. 그래서 “어머, 그 학생이 벌써 그렇게 됐어?” 그 학생이 교수님이 된다면 좀 노동친화적인 (웃음) 생각을 가져주셨으면.

그리고 김윤혜 학생이라고, 그때 빗소리 대표였는데 이 친구가 행정관 앞 우리 선전전 찾아와서 연대발언 하고 서명운동 조직하고 하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학생인데 왜 우리 문제에 관심을 갖지?

그리고 두 번째 장면은 동지가 생긴 것인데. 해직자 33명 중 한 분이 정말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선전전에 매일 못 나왔던 거예요. 그게 미안하다고 파업 끝나고 수건을 맞췄어요. “승리보다 값진 동지”라고 수건에 수놓아서요. 승리보다 값진 동지들이 우리에게 더 의미가 있다. 싸워 이긴 그 자체보다도 같이 싸워 이긴 게, 동지들이 더 큰 의미다.

투쟁으로 얻은 가장 값진 것은 정년보장보다 동지들. (제공: 송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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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당시에 생협 노동자들이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을 시점이었어요. 우리가 해고되게 생겼다 그랬더니 너무 마음아파하시면서, 우리 파업을 지지하는 노란 리본을 달고 근무하겠다시는 거예요. 그런데 위생 문제 때문에 옷핀을 달 수가 없대요.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알아요? 리본을 앞치마에 실로 박아서 꿰맸어요. 그럼 통째로 세탁하면 되니까. 그래서 진짜 감동했어요. 옷핀 쓰면 안 된대서 실로 꿰매 박았다는 그 수고로움을, 우리 일 때문에 감수하셨다는 게 너무 감사했고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이 사진들 보면서 또 추억여행을 했잖아요.

그래서 이때 생협 노조원들 덕분에, 그리고 학생들 덕분에 우리가 서울대학교의 다른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구나 싶었어요. 저야 그래도 예전에 학생운동을 해봤다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학사운영직원들도 이런 연대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가치 있게 여기게 된 계기 같아요.

앞치마에 리본을 꿰매 달아 오신 생협 노조원들. 마음을 깊이 울리는 연대의 표현이었다. (제공: 송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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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까치』 창간호에 언급된 2019년 생협사무처 점거 때에도 왔다 가셨죠?

“중간에 학사운영직 노조원께서 방문해 2년 전 비학생조교 파업의 기억을 언급하며 응원의 말씀을 남기고 가기도 했다”[11] 맞아요. 이게 저예요. (웃음) 아직도 기억나요. 제가 뭐라 발언을 하면 사람들이 구호를 복창하고 파업가를 부르고 그게 3층짜리 아트리움을 쩌렁쩌렁 울리는데 소름이 돋는 거예요.

생협이 참 애틋해요. 생협 노조원들은 우리한테도 정말 큰 의미죠. 2019년 파업 때 학운직 노조원들에게도, 노조 탈퇴한 분들에게도 알려서 투쟁기금도 조금씩 모아 드리고. 사진 보니까 나도 너무 어렸네요.

2016년 11월 11일 출근선전전 45일차, 후문에서. (제공: 송혜련)

그리고 이때 제 나이 또래 노조원들이 원래 어린이집에 맡기던 아이를 출근선전전에 데려왔는데, 그 어린이들이 절 “이모, 이모” 부르면서 친해졌어요. 어린이집 건너편 학교 후문 앞에서 현수막 끝을 잡고 있는 이 친구가 그때 여섯 살이었나. 그런데 지금 중학교 2학년이에요. 123벌써 그렇게 됐어요. 그리고 얘보다 한 살 아래인 여자애는 나를 “투쟁이모”라고 불렀어요. 그때 그런 얘기를 했어요. 우리 정년보장 받으면, 애들 다 크고 결혼할 때 축의금 내고 하자고. 그게 벌써 9년 전이라니.

혹시 안타까웠던 기억도 있으신가요?

노조원들이 탈퇴했을 때죠. 제가 그때 지부 사무국장이었고, 거의 매일 점심시간마다 간담회를 다녔어요. 탈퇴 말리려고요. 그런데 그분들은 노조의 방향이나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거지, 저 개인이 싫은 건 또 아니었거든요. 제가 2017년에 대표자로서 수고한 것에 대해 고마움과 미안함이 있으니까. 그래서 오히려 탈퇴를 왜 하는지 제 면전에서 정확히 얘기를 못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무리 간담회를 해도 겉도는 얘기만 하고 감정만 상하는 거죠. 나는 힘껏 설득하려 하는데, 당연히 설득이 안 되죠. 정확한 이유를 얘기를 안 하시니까. 그래서 그때 인간적으로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만큼 남아계신 분들에게 고맙고. 하지만 따로 고맙다는 얘기는 안 해요. 그분들께 “그때 왜 탈퇴 안 했어?” 물으면, 저쪽 노조가 제시하는 약속이 현실성 없고 설득이 안 되어서 탈퇴할 이유가 없었다고만 그러세요. 다들 쿨해서.

이런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좋은 일이 있으면 그 좋은 일 때문에 반드시 나쁜 일이 생긴다. 그리고 나쁜 일이 생기면 그 나쁜 일 때문에 또 좋은 일이 생긴다. 상황이 되게 나쁜 상황일 때는 그 어려움을 헤쳐나가면서 더 좋은 사람들이 옆에 남게 돼요. 반면 “어, 좋다! 이거 너무 해결 잘 됐다!” 싶으면, 가령 그 5・29 협약으로 우리 정년보장 받았지만 그로부터 따라오는 문제들이 또 있는 것처럼요.

나이를 먹었다고 어른들이 말하는 지혜 같은 게 생겼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좋은 일이 있다 그러면 저는 그래서 반드시 너무 124 불안해요. 반대로 너무 불안한 일이 있다 그러면 “이것만 포기하지 않고 잘 해결하면 어쨌든 좋은 일이 또 생길 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송혜련에게 서울대학교 학생들이란? 노학연대란?: 8년 만에 다시 묻는 질문, ‘관계있어진’ 우리의 지금은?

2018년 4월 28일, 학생회관 5층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사무실에서. ‘2018년의 봄, 서울대에서 노동자-학생 연대를 말하다’ https://biseogong.blogspot.com/2018/04/28-video.html
Q. 송혜련에게 서울대 학생들이란?
A. 손이 많이 가는 친구. 손이 많이 가지만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친구.
Q. 2018년에 노학연대의 의미란?
A. 관계없는 사람들이 관계있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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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당시 사무국장이셨던 송혜련 선생님과 비서공 초대 대표가 만나 노학연대의 의미를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8년 사이 학생사회는 많이 바뀌었고, 『물까치』에도 그와 관련한 고민을 다룬 기사들이 실렸습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2026년의 지금 본인에게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그리고 노학연대가 어떤 의미인지 다시 답해본다면?

그때 제가 학생들은 “친구”라고 대답했던 건 아마 건환공에서 행사업무를 했기 때문일 거예요. 지금은 학사업무를 하다 보니, 이제 학생들은……“고객”이죠. (간사: 너무 차가워졌는데요.) (웃음) 차가워졌다기보다, 제가 실수하면 학생들이 졸업을 못 해요. 그래서 제가 불안해지고 경직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편하게 하다가 실수할까 봐. 그래서 늘 친절해지고 싶은데, 학생이 왔다 가면 “더 잘해줄걸, 좀 더 친절할걸……” 후회를 늘 해요. 그리고 코로나 이후로는 볼 일 자체가 줄어 버렸고. 그래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느낌이 많이 없어지고 회사의 고객님(웃음) 정도 같아요.

그런데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면 여기는 제 회사잖아요. 30대 때는 좀더 열의도 있었고, 업무 성격도 학생들과 좀더 부딪히는 업무였다면, 지금은 이제 40대이고, 일과 삶을 어느 정도 분리시키게 되는 것 같아요. 고객이라고 멀어졌다 그런 건 아니고, 제가 일처리를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비서공 같은 학생들은 또 다르죠, 저한테는. 항상 고맙고, 제가 오히려 배우고요.

선생님께서 학생운동을 하시던 시절과는 달리, 요즈음은 강력하면서도 대 중적 지지를 얻는 운동이 불가능한 조건입니다. 그럼 2026년에 노학연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제가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해도 노학연대라는 건 ‘노조’와 ‘정파 운동 권 학생회’의 일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노동자’와 ‘학생’이면 126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옛날에는 운동을 하려면 무슨 사상이나 이론에 따라서 해야 했잖아요. 사회변혁주체를 노동자로 보느냐, 농민으로 보느냐. 그 시절 학생회는 그랬어요.

그런데 『물까치』에도 실려 있지만 지금은 그런 정파적 이해관계 같은 것 몰라도, 희망버스 타고 공장 노동자들과 연대하면서 동시에 남태령도 가서 농민들과도 연대하고 그럴 수 있잖아요. 옛날에는 사상과 이념을 가진 조직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노학연대에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오히려 누구나 노동자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와서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것이 마치 개인 단위로 분절화된 것 같지만, 오히려 연대의 자격이 더 넓게 확장된 것일 수 있어요.

그리고 또 생각했던 게, 옛날에는 “왜 집회 나가야 해요? 왜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이러면 선배들이 궁여지책으로 꺼내는 대답이 “너 언젠가 노동자 될 거잖아.” (간사: 그건 사실 요즘 저희도 하는 얘기인데요.) 그리고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변혁주체는 노동자이기 때문이야.” (간사: 아! 그건 요즘과 다르네요.) (웃음) 그런 시절이었는데. 지금 대학현장의 노학연대는 그런 게 아니죠. “교정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문제에 관심을 왜 가져야 하느냐” 하면 “곁에서 함께 살면서 영향을 주고받는 공동체 일원이니까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게 대답이잖아요.

그 답이 꼭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문턱이 낮아지고 참여 자격이 넓어졌다는 거죠. 내가 생협의 지배구조에 관해서 잘 알지 못해도, 뼈주사 맞아가며 일하고 샤워실도 없이 칸막이 쳐놓고 샤워하는 건 비인간적인 거고, 인간이라면 마땅히 관심 갖고 연대할 만하다는, 지금의 노학연대는 “인간다움”에 가까워진 것 같아요.

조만간에 교직원들 개편이 될 거예요. 과사에는 자체직원만 두고 단과대 행정실 위로는 법인직원만 두는 식으로요. (간사: 차별시정소송 떄문에, 학교에서는 자체직원과 법인직원을 분리해서 동일노동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는 것이127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개편되다 보니 드는 생각이, 한 10년쯤 뒤에 AI가 더 발전하면 우리가 하는 학사운영 업무가 AI로 다 대체될 수가 있겠다. 수당이나 임금 문제가 아니라 해고의 문제를 다시 고민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미래에는 AI 때문에 노학연대의 형태와 의미가 또 바뀔 수도 있겠죠. 노동의 개념이나, 노동자의 범위나, 학생 입장에서 보면 대학교육의 본질, 사회적 역할, 그런 것들 자체가 변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의 노학연대는 “인간다움”인 것 같지만, 앞으로의 노학연대는 각자가 가진 본질, 아이덴티티가 되게 중요해질 수도 있겠죠. 어떻게 보면 고전적인 의미의 운동권 다 죽은 거 아니냐 할 수 있지만, 또 어떻게 생각해 보면 누구나 운동권이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려 해요. (웃음)

학내 쟁의가 없은 지 벌써 여러 해라, 교정의 노동쟁의를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학생이 대다수입니다. 지금처럼 경험의 근육이 부족한 상황에서, 유사시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파업하면 2017・2019년만큼 학생들이 힘있게 연대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어요.

그런 걱정은 노조도 많이 해요. 학사운영직이나 생협 노동자들이 특수한 건 파업을 했고 승리해본 경험과 기억이 있기 때문이거든요. 2017년 파업 승리 이후 제가 노조 조직화 사업을 많이 다녔어요. 만나보면 직군을 불문하고 노동자들은 다들 뭔가 불만과 열망이 있어서 기꺼이 노조에 가입해요. 그런데 투쟁이 없으면 그 계기가 안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노조원들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하게 되죠. 투쟁을 해야 노조가 강해지지만 그렇다고 투쟁이 항상 가능한 게 아니라는 문제, 그 고민은 조직활동 하는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고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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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학생사회는 진짜 더 어려울 것 같아요. 노조야 퇴직할 때까지는 계속 노동자이지만, 학생들은 계속 졸업하고 입학하고 사람이 바뀌니까요. 우리는 뭔가 어려움이 있다면 현장으로 내려가서 밭을 다시 일구면 되는데, 그것도 노조라는 틀이 있어서 가능한 거죠. 그런데 학생사회는 이제 그런 게 부재하다고 하니까요. 옛날에는 총학생회 선거에 정파별로 후보를 내면 하나만 이기고 다 질 것 아니에요? 그러면 패배한 정파들은 “하방한다!” (웃음) 그러면서 단과대로, 과로 내려가서 조직 기반을 다시 만들고 그랬거든요.

지금은 학생회가 더 이상 운동을 하지 않으니, 운동 자체가 ‘하방’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람을 모아 조직을 이어가는 것만도 쉽지 않지만, 그에 더해 어떻게 능동적인 투쟁역량을 길러나갈 것인지도 참 어려워요.

제가 모교의 문제에 더 이상 천착하지 않고 “시대가 변한 거구나”하고 흘려보낼 수 있게 된 계기는, 일부러 흘려보낸 건 아니지만, 학생사회 문제는 결국 지금의 학생들이 해야 할 몫이구나 싶었거든요. 내가 9시부터 18시까지 서울대에서 일하고 저녁마다 모교에 가서 후배들 붙잡고 토론하고 지도하려 해도, 결국은 그들이 해야 하는 몫이 있구나. 그렇게 자연스럽게 놓아주게 된 것 같아요. 결국 다들 잘할 거예요. ◆

“어떻게 보면 운동권 다 죽은 거 아니냐 할 수 있지만, 또 어떻게 생각해 보면 누구나 운동권이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후배들에게 맡기면 결국 다들 잘할 거예요.” (촬영: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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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2016-17년 비학생조교 투쟁 타임라인

        ♠ 사측 대응
■ 노동자 직접행동
♣ 법적・제도적 대응
♥ 학내외 연대
● 사회 동향
2016
1월
♠ 대학본부, 2017년 2월 말일 자 계약만료 예정 조교들에게 공문 통보
4월 5일
■ 비학생조교 120여 명, 대학노조 서울대지부(이하 ‘노조’) 가입
5월 20일
♣ 감사원, 서울대 비정규직 감사 착수
♣ 서울대학교 조교의 법적지위 및 고용관계에 대한 법률 의견서
7월 11일
■ 행정관 앞 점심 선전전 개시 (1주)
7월 15일
■ 행정관 앞 비학생조교 고용안정 결의대회
8월 5일
♠ 2017년 8월 말일 자 계약만료 예정 조교들에게 공문 통보
 
2016. 9월
5일
■ 정문・후문 출근선전전 개시 (12월 23일까지, 휴일 제외 75일)
■ 아크로폴리스・자하연・3식당 점심선전전 개시
7일
♣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 송혜련 당시 교육부장, 회견문 낭독
13일
♣ 서울지노위에 조교 교섭단위 분리 신청
130 
2016. 10월
5일
♥ 관악 맑스주의연구회 맑음, 비학생조교 투쟁 지지 성명 발표
10일
● 전체학생총회, 시흥캠 철회를 위한 본부점거 결의. 오후 10시 행정관 돌입, 4층 총장실 점거
11일
■ 국정감사 대비 최종회의장(호암교수회관) 아침 기습 선전전
■ 국회 국정감사 기자회견
13일
♣ 서울지노위, 조교 교섭단위 분리 신청 인정
14일
■ 서울대학교 개교 70주년 기념식 입구 피켓 시위
28일
● 제58대 총학생회, 행정관 앞 박근혜 퇴진 시국선언. 익일 촛불집회에서 총학생회장 연설
 
2016. 11월
■ 교무처장 면담 및 연구부총장 면담
8일
♠ 대학본부, 교섭단위 분리 결정 재심 신청
■ 노조, 총무과(3식당 맞은편 현 해동학술문화관) 항의 방문
12일
● 대학노조 본조, 박근혜 퇴진 투쟁결의대회 참여
21일
♥ 비학생조교 정년보장을 위한 서명운동, 빗소리 발의로 개시
131 
2016. 12월
5일
♣ 중노위, 조교 교섭단위 분리 결정 초심 유지. 교섭단위 분리 확정
12일
♥ 서명운동 결과 발표. 학부생 1966인, 대학원생 760인, 동문 170인, 교원 101인, 직원 273인 총 3270인 연서명
19일
♥ 시흥캠 반대 본부 점거 70일 서울대 연대한마당, 노조 참여. 송혜련 당시 교육부장 연대발언
22일
♠ 비학생조교 고용안정 구두 공언, 경향신문 단독 보도
28일
♣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서울대 비학생조교 사안 해결 축하 행사
 
2017
1월 25일
■ 조교 교섭단위 1차 본교섭
■ 전원 정년보장 번복 규탄 집회
2월 9일
♥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시흥캠 반대 본부점거 지지 성명 발표
2월 28일
♠ 계약만료 직원 자녀 어린이집 등원 불가 사태
■ 오후 3시 사무국장 항의방문. 어린이집 문제 논의
♠ 오후 5시(사무국장 면담 도중) 대학본부, 퇴직처리 및 마이스누 계정 정지 방침 통보
132 
2017. 3월 우정원 점거농성
1일
♠ 해고자 33명 발생
2일 1일차
■ 해고자 포함 100여 명, 우정원 5층 교무과 앞에서 실내 농성 개시
♥ 학생(학생회, 개인자격 등)과 노동자(생협, 자체직원 등) 농성장 연대방문
3일 2일차
♥ 시흥캠 반대 본부점거본부, 투쟁 지지 성명 발표
♥ 제59대 총학생회, 우정원 농성장 방문
6일 5일차
■ 아침 8시, 해고자 각자 근무지 앞에 자필 자보 부착
■ 해고철회 노란리본 달기 운동 개시
♥ 본부점거본부 학생 100여 명 우정원 방문, 실내 농성장 연대집회
♥ 공과대학생회, 투쟁 지지 성명 발표 및 농성장 방문
♥ 사회과학대학생회, 투쟁 지지 성명 발표
7일 6일차
■ 우정원 앞에 자필 현수막 설치, “의지없는 총장은 물러나라” 외
♥ 농생대학생회 및 산하 13개 전공 학생회, 투쟁 지지 성명 발표
♥ 사회학과 93인, 투쟁 지지 연서명 발표
♥ 로스쿨 노동법학회・인권법학회, 지지 성명 발표 및 농성장 방문
8일 7일차
♥ 총학생회, 비학생조교 투쟁 지지 성명 발표
♥ 산업공학과 115인, 비학생조교 투쟁 지지 연서명 발표
♥ 법학전문대학원 재학생・졸업생 604인, 투쟁 지지 연서명 발표
9일 8일차
■ 4차 본교섭 재개, 우정원 농성 해제
10일
● 헌법재판소, 박근혜 탄핵 심판 인용
● 대학본부, 익일 토요일 오전 6시 전원 출근 지시
133 11일
● 대학본부, 시흥캠 반대 학생 행정관 점거농성장 강제해산
13일
♥ 조선해양공학과학생회, 투쟁 지지 성명 발표
♥ 종교학과 학부생・대학원생 일동, 투쟁 지지 성명 발표
15일
■ 해고철회를 위한 정문・후문 출근선전전 개시 (5월 26일까지, 휴일 제외 47일)
20일
♥ 총학생회-본부점거본부 주최 서울대인 공동행동에 노조 참여. 송호현 당시 사무국장 연대발언
22일
♥ 민주일반노조 서울대분회, 비학생조교 해고자 간담회
27일
■ 본부・정문 앞 릴레이 1인시위 개시
30일
♥ 해고자들, 당시 감골식당(101동 1층) 생협 노조원 방문
 
2017. 4월
♠ 해고자 3인 추가 발생
12일
■ 노조, 6차 본교섭에서 최종 양보안 제시
19일
♠ 대학본부, 1주간 무응답으로 노조 측 양보안 거부. 교섭 파행
20일
♣ 서울지노위에 노동쟁의조정 신청
28일
■ 노조, 쟁의행위 찬반투표
134 
2017. 5월 파업
1일
■ 제127주년 노동절 대회 참여, 현장 서명운동 진행
■ 쟁의행위 찬반 투표 결과 찬성 89%로 쟁의행위 결의
● 시흥캠 반대 학생 본부 재점거 (7월 14일까지, 75일)
11일
♣ 지노위 최종조정에서 교섭 결렬, 쟁의권 획득
15일 1일차
■ 행정관 필로티 앞 파업 출정식, 학내 행진
♣ 지노위 공익위원 서울대 방문, 행정관 필로티 간담회
16일 2일차
■ 행정관 앞 대정부 문제해결 촉구 기자회견
■ 행정관 앞 소나무에 부당해고 철회 리본 달기
■ 총장관저 앞 현수막 및 피켓 선전전 개시
♥ 변혁당 서울대분회, 파업 지지 성명 발표
17일 3일차
■ 투쟁기금 마련 위한 벼룩시장
■ 행정관 필로티에 자필 현수막 설치, “우리는 욕심쟁이가 아니다” 외
18일 4일차
♥ 빗소리, 파업 지지 성명 발표
♥ 언론정보학과학생회, 파업 지지 성명 발표
♥ 사회학과 106인, 파업 지지 연서명 발표
19일 5일차
♥ 시흥캠 투쟁 학생 징계・고발 철회 촉구 기자회견, 노조 참여
22일 6일차
♥ 자연과학대학・물리천문・수학・화학・통계・생명 학생회, 파업 지지 성명 발표
135 23일 7일차
■ 해고철회 파업투쟁 승리를 위한 문화제 ‘너의 편’, 총장잔디에서 진행
16일 2일차
♠ 장학복지과, 노조 사무실로 해고자들 건강보험료 납부 독촉장 발송
■ 장학복지과 항의방문
■ 우정원 지하주차장에서 성낙인 총장 기습면담
25일 9일차
♥ 철학과 169인, 파업 지지 연서명 발표
26일 10일차
■ 성낙인 총장 면담
29일 종료
★ ‘2017년도 조교 고용안정에 따른 협약서’ 체결 및 해고자 복직
 

× 1 (편집부) 보리, 「야근 중에 쓰인 글」, 『물까치』 2, 81-91쪽.
× 2 (편집부) 송수림 기자, 「“총장님 만나주세요” ‘비학생조교’였던 이들이 10년 만에 피켓 든 이유」, 『서울대저널』, 197, 2026년 6월 18일.
× 3 (편집부) 2026년 5월 1일 136돌 노동절은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법정공휴일이 되었다.
× 4 (편집부) 같은 행정실에서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데도 법인직원과 자체직원의 임금과 처우가 불평등한 것에 대한 소송을 2020년 제소하였다. 2025년 2월에 2심 승소,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소송 당사자는 7인뿐이지만, 최종 판결에 따라 서울대학교 전체 자체직원, 어쩌면 다른 국공립대, 공공기관 전반에까지 파급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2026년 4월 28일 판결 촉구 기자회견 자료 참조.
× 5 (편집부) 이 100여 명은 행정실에서 상근하며 인건비 예산으로 월급을 받는 ‘대학원생 행정조교’이다. 이와 별개로 TA・채점・시험감독 등 업무를 하는 대학원생들은 ‘강의연구지원 조교’로, 인건비가 아닌 장학금 형태로 보수를 지급받는다.
× 6 (편집부) 고등교육법 제14조(교직원의 구분)상 ‘조교’는 ‘교원’(총장・학장・교수・강사) 및 ‘직원’과 구분된 제3의 신분으로 규정되어 있다. 교원・직원・조교를 아울러 ‘교직원’이라고 한다.
× 7 (편집부) 2018년 3월 서울대학교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 간담회 ‘지금 만나러 갑니다’. 송혜련 노조원은 서울대생협의 이창수 부지부장, 지금은 퇴직하신 민주일반노조 최분조 분회장 등과 함께 패널로 참여했다.
× 8 (편집부) 경비 직렬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본부는 경비노동자가 정년퇴직해도 신규 인력을 채용하지 않는 식으로 경비 직렬 자체를 점진적으로 없애고 에스원 무인경비로 대체하는 기조를 가지고 있다. 공과대학, 미술대학은 이미 완전 무인화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2025년 5월 진행된 휴게실 전수조사 중간발표회 참조.
× 9 (편집부) 2017년 학생사회는 성낙인 총장의 시흥캠퍼스 졸속 추진과, 반대하는 학생들의 본부 점거라는 큰 사건을 겪었다. 시흥캠 반대 학생들과 파업한 비학생조교 노동자들이 연대했던 기억에 더해, 2018년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 전개되며 노학연대가 당시 서울대 학생사회의 새로운 주력 의제로 부상했다. 비서공은 이러한 배경 위에서 출범했다.
× 10 김원진 기자, 「[단독] 서울대 “비학생조교 고용 보장”」, 『경향신문』, 2016년 12월 22일. https://www.khan.co.kr/article/201612220600015
× 11 (편집부) 이일휘, 「응답하라 2019: 서울대생협 전면파업 회고」, 『물까치』 1, 86쪽 첫 번째 이미지 캡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