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까치』 №03 §039 「마드리드에서,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를 바라보다」
마드리드에서,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를 바라보다
이번 여름방학에 스페인[1], 그 중에서도 마드리드를 방문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SNU in the World Program 중 하나인 SNU in Madrid 프로그램에 참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 전공이 서어서문학인데 아직 스페인 또는 스페인어권 국가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기에 개인적으로 너무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솔직히 출국하기에 앞서서, 이번 학기 비서공 공동학생대표를 맡고 있는데 제 역할을 잘하고 있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들기는 했다. 처음에는 애초에 프로그램에 붙을 줄을 몰랐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막상 출국 날짜가 다가오니 마음이 편치는 않았던 것 같다. 출국을 앞두고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있었고 바쁘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최대한 기금 집행 같은 일들을 미리 해두려고 노력했는데, 잘 됐는지는 모르겠다. 이번 학기 고생하신 다른 활동회원들께 감사드린다.
040이 글은 원래 스페인 노동 현장 르포를 절반, 스페인 학생운동에 관한 내용을 절반으로 구성하려고 했다. 노동 현장의 르포는 내가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Universidad Complutense de Madrid의 어학원인 콤플루텐세 스페인어 교육센터Centro Complutense para la Ensañaza del Español, CCEE(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한국어교육센터[LEI-KLEC]와 비슷하다)에 다니면서 만나는 스페인 노동자들과 소통하여 구성하려고 했고, 학생운동에 관한 내용은 현지에서 스페인 역사를 전공하고 연구원으로 일하시는 한국인 한 분을 소개받아 그분과 소통하여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연구원님께서 연구소에서 일하는 마지막 달이라 일정이 바쁘셨고, 나 역시 프로그램 참여 일정이 빡빡한 관계로 일정 조율이 쉽지 않아 늦게서야 만나뵙게 되었다. 스페인 정치 상황과 노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고,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가서 쭉 미국에 거주하셨기에 미국 상황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서어서문학을 전공하고, 연구원님은 스페인 역사학을 전공하시기에 분야는 조금 다르지만 소수 학문을 전공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연구원님이 말씀하시기를 본인과 교수들까지 포함해서, 한국에서 스페인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는데 참 공감되는 말이었다. 서울대에도 스페인 역사 전공 교수님은 계시지 않는다. SNU in Madrid 사전 강의에 역사학부 교수님이 한 분 오셨는데, 네덜란드 역사를 전공하시는 분이셨다. 네덜란드는 과거에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나, 조금은 생뚱맞은 일이다. 패자의 시각에서 역사를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수 있고 실제로 교수님의 수업은 재밌긴 했지만, 장기적으로 소수 학문의 학술 생태계가 잘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이 깊다.
연구원님은 스페인 전국노동총연맹Confederación Nacional del Trabajo, CNT 조합원이신데, 최근에는 노조 활동은 거의 하지 않으시고 041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에 주로 결합하고 계셨다. 만남 장소였던 몽클로아-아라바카Moncloa-Aravaca구 아르구에예스Argüelles역 근처에 스페인 집권여당인 사회주의노동자당Partido Socialista Obrero Español, PSOE 당사가 있다고도 귀띔해 주셨다. 매일 한국으로 치면 태극기 부대 같은 극우세력이 집회를 연다기에 식사를 마치고 다녀왔더니 주말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집회나 시위가 열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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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드리드시 몽클로아-아라바카구 페라스가 70번지, 스페인 사회주의노동자당 (PSOE) 당사. 유리창에 “그 어느 때보다도 바로 지금”이라는 글귀가 있다. (촬영: 안승민) |
연구원님과 만나뵙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기사화할 만큼의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편한 분위기에서 만나뵈었다. 좀더 심층적인 이야기를 나눌 만한 여유가 없었음에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래서, 이 글은 수기 성격의 현장 르포와 개인적인 감상 조금으로 꾸려가려고 한다. 우리와는 다르고 생소한 문화나 용어가 많아서 자칫 042스페인 사회를 소개하는 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것도 이 나름대로 재미있기를 바란다.
스페인의 노동법
스페인은 정말 많은 부분에서 대한민국과 닮아 있다고 한다. 스페인이 그냥 스페인이지 꼭 다른 나라와 닮았다는 비교를 통해 파악해야 할까 싶었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으로서, 와서 한 달 정도 거주해 보니 어느 정도 닮아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스페인은 유라시아의 서쪽 끝이고 한국은 유라시아의 동쪽 끝이다. 인구도 대략 5천만 명 남짓, 국민소득도 거의 비슷하다. 음식을 나눠 먹는 문화도 한국과 같이 발달해 있다. 20세기 중후반 한국이 한국전쟁(1950-1953) 이후 긴 권위주의 통치와 독재를 겪었듯, 스페인도 스페인 내전(1936-1939) 이후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사망(1975)하기까지 장기간 독재정권을 경험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닮은 것은 아니다. 스페인에서는 식사 시간이 약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내 생각에는 음식을 주문하면 나오는 데 30분에서 40분이 소요되는 것도 긴 식사시간에 한몫하는 것 같다.
스페인의 노동법은 주 40시간 노동을 표준으로 제시하며, 초과근무는 연 80시간만 (주간이나 월간이 아니다!) 인정된다. 연차휴가는 약 30일 가량이 인정된다. 2025년 기준 스페인 평균 노동시간은 주 31.4시간으로 평균 주 35.3시간의 한국보다 짧다. 스페인의 최저임금은 최근 환율변동성이 커서 다소 애매하지만 한국과 거의 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수준이다. 한국의 1.5배~2배 가까이 되는 물가를 감안하면 심각한 저임금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만 스페인은 연금 제도가 발달해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면 은퇴 후에도 기존에 받던 월급 수준의 소득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단순하게 비교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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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드리드시 참베리구 이삭페랄가 58번지, 콜레히오 마요르 데 산 파블로. (촬영: 안승민) |
나는 마드리드 북쪽의 참베리Chamberi구에 있는 콜레히오 마요르 데 산 파블로Colegio Mayor de San Pablo에 머물렀다. 소재지는 참베리구였지만 몽클로아-아라바카구 시우다드우니베르시타리아Ciudad Universitaria동[2]과 큰 길 하나만 사이에 두고 붙어 있는 곳이었다. ‘콜레히오 마요르’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대학 기숙사’를 의미하지만, 이 기관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기숙사와는 조금 다르다. 한 학교 학생들만 모여서 사는 것이 아니기에, 정확히 말하자면 기숙사라기보다 향토학사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044통상적으로 스페인의 대학은 자체 기숙사가 없다. 지금은 내가 묵었던 기숙사가 방학을 맞아 방을 비우고 서울대 학생들을 비롯한 단기방문자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평시에는 주변의 여러 학교 학생이 하나의 기숙사에서 같이 생활하게 된다. 주변에 학교가 거의 없는 지방의 몇몇 학교를 제외하면 각 학교마다 기숙사가 있지는 않은 것이다. 정리하자면, 내가 다녔던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 자체는 기숙사가 없는 대신에 주변의 콜레히오 마요르와 같은 소위 ‘공동 기숙사’에 학생들이 모여서 사는 것이다. 물론 콜레히오 마요르와 같은 기숙사는 주거 형태의 하나일 뿐이고, 피소[3]를 나눠 쓰는 ‘피소 콤파르티도piso compartido’ 주거 형태도 있고, 그냥 통학하는 학생들도 있다. 여담이지만 마드리드도 집값이 많이 올라서 주거환경 자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기숙사는 전반적으로 만족스럽고 좋았다. 기숙사가 거의 1인실이었고, 스포츠 시설이나 수영장이나 도서관 등 전반적인 시설이 훌륭했다. 학교와의 접근성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노동 환경 측면에서는 좋은 부분도, 아닌 부분도 있어 보였다.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몇몇 노동자들과 오며가며 대화한 내용을 글로 정리해 옮긴다. 나도 작년에 관악사에 살아 보았기 때문에 서울대와 비교하는 글도 될 수 있겠다.
이 기숙사는 식사가 주 7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공되고, 방 청소도 노동자들께서 이틀에 한 번씩 직접 해주신다. 가장 놀라웠던 방 청소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 보자면, 청소는 우리가 단기로 방문하는 학생이라 특별히 해주시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지나가다가 여쭤보니 평소 학기 중에도 노동자들이 이틀에 한 번씩 청소를 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씀해 주셨다(실제 경험해 보니 이틀에 한 번보다는 주 3회라는 표현이 정확한 것 같다). 심지어 청소를 단순히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나 045옷 등을 대략 정리해 주시고 침구류도 관리해 주셨는데 엄청난 고생이 아닐 수 없겠다. 한 번은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의료용 테이프가 사라져서 고생했던 적이 있었는데, 청소하시는 분께서 테이프 케이스에 넣어 두신 것이었다. 책상을 조금 어지럽혀 놓아도 어느 정도 깔끔하게 정리해주시는 것이 너무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죄송해서 가급적 방을 깨끗하게 잘 쓰려고 했다. 노동자 한 사람이 맡는 구역이 정해져 있어서 같은 분께서 계속 같은 방을 청소하시게 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학생들의 방을 누가 청소해 준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는데, 방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청소용품을 제대로 갖춰 두고 청소하는 것 역시 학생들에게 나름의 부담이 될 수 있기에 아예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제대로 인력 충원 상황 등을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가 머무는 기간에는 청소를 맡아 주신 인원이 충분했다. 다만 침구류 교체, 쓰레기 청소, 대략적인 정리 등의 노동을 1년 내내 각 방마다 계속 반복하다 보면 장기적으로 신체에 무리가 가거나 부하가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고 이 부분은 고민이 필요한 지점인 것 같다. 여름에 스페인, 특히 마드리드는 메세타 고원에 위치한 관계로[4] 한낮에 40도를 넘나드는 폭염 문제가 있어, 마드리드에 오기 전 혹서기 노동환경에 대한 우려도 했다. 하지만 마드리드는 햇살이 따갑기는 해도 습도가 높지 않아서 실내에 있으면 시원한지라 한국보다 그런 문제는 조금 덜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기숙사 내 경비노동자에 관해서도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서울대는 무인화 경비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경비노동자 인력을 점차적으로 감축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경비 직원께서 교대로 항상 기숙사 입구를 지키고 계신다. 무인경비 시스템보다 학생들이 누구인지 잘 파악하고, 046교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큰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우편물과 택배 수령 등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아울러 우리 학생들이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부분은, 카드키를 방 안에 놓고 왔을 때마다 경비노동자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마스터키를 통해 문을 열어서 들어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다행히 나는 한 번도 카드키를 방 안에 놓고 나온 적은 없지만. 스페인도 스몰토크 문화가 어느 정도 발달해 있는데, 그래도 전공생인지라 스페인어를 조금 하기에 열심히 지나갈 때마다 “¡Hola!(안녕!)”와 “¿Qué tal?(잘 지내?)”을 말하면서 소소한 라포르를 쌓기도 했다. 경비노동자 한 분은 마드리드를 연고로 하는 축구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열렬한 팬이신데, 우리가 스페인에 머무는 동안 이강인의 이적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인인 우리에게 이강인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 오시기도 했다. 나도 축구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축구선수이고, 스페인 발렌시아 지역에서 축구를 배웠다는 정도로 이야기를 전해드렸다. 이강인 선수의 선전을 기원한다.
기숙사는 심야 시간대에 따로 통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밖에 있는 큰 정문이 잠기게 되는데, 경비노동자께 인터폰 호출을 하고 신원을 확인한 뒤에 문을 열어주시는 방식이다. 어느 정도의 안전을 확보하는 동시에 학생들의 자유도 크게 제약하지 않는 나름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2026 월드컵 결승전 거리 응원을 다녀오고 나서 한 번 인터폰으로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드린 적이 있다.
이외에도 보호자가 원하는 경우 야간 출입 기록을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해 주셨는데, 대학생의 출입 기록을 보호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내가 살펴본 스페인의 문화상 그런 기록을 알고 싶어하는 부모가 많을 것 같지는 않았다.
서울대와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에는 이것저것 시스템이 다르기는 하다. 출입 방식에 대해 말하자면, 내가 작년에 거주했던 919동은 원래 047손목 혈관 인식 출입 시스템을 쓰다가 작년 언젠가부터 학생증으로 출입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손목 혈관으로 출입하는 방식이라고 특별히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학생증으로 출입하게 되면서 외부인이 학생증을 빌리거나 습득해 출입하는 것을 막기 어려워지는 등 학생들의 신뢰에 안전을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관악사뿐만이 아니라 캠퍼스 전반에 무인경비 시스템이 확대되면서 경비노동자 분들과의 교류가 어려워짐은 물론이고 택배 수령이나 우편물 수령, 야간 출입 등에 도움을 받기도 어려워진 실정이다. 특히 위험한 상황이 생기거나 도움을 청할 일이 있을 때, 이곳 기숙사에서는 0층[5]에 계신 경비원을 찾아가면 되지만 서울대 관악사나 몇몇 단과대에서는 찾아갈 곳이 요원하다. 정말 다행히도 인문대에는 아직 경비원 한 분이 계시지만. 서로 다른 시스템 속 어느 곳이 더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기숙사에 가까울까? 물론 어느 곳에나 장단점은 있겠지만 나는 이곳이 조금 더 편안하고 안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기숙사의 일상을 지탱하는 그런 노동 덕분에 산 파블로 기숙사의 일상은 안온했다.
서울대 한국어교원 문제의 거울: 마드리드의 스페인어교원 문제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콤플루텐세 대학교의 어학원인 CCEE에서 3주 정도 되는 스페인어 수업을 수강했다. 서울대로 치면 딱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한국어교육센터의 수업을 수강했다고 볼 수 있겠다. 어쩌다 보니 어학원의 선생님 중 한 분과 친해질 수 있었고, 어학원의 스페인어교원들이 불과 10여 년 전에 어떤 문제에 놓여 있었으며 어떻게 투쟁을 통해 해결했는지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서울대에 한국어교원 문제가 있듯이, 콤플루텐세 대학교에는 스페인어교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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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학원 강의가 진행된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 법대 강의실. (촬영: 안승민) |
서울대에도 한국어교원 자격증을 취득한 교원들이 있듯 스페인에도 ‘외국어로서의 스페인어 교육’ 교사들이 따로 있다. 전반적으로 스페인어 학습 수요는 전 세계 어디에나 많은 편이기에 떠나기 어려운 편은 아니라고 하지만,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는 불안정한 고용형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일부 사립대학에서는 비슷한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10여 년 전의 고용형태는,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스페인어 능력이 완벽하지는 않아 틀렸을 수도 있다) 3개월 단위로 계약이 연장되는 부분이 가장 큰 문제였다. 불안정한 계약직 노동 형태가 상시적으로 유지되면 노동자가 일상을 제대로 유지하기 힘들다. 특히 3개월이라는 기간은 안정성을 확보하기에 너무 짧은 기간이다. 따라서 다른 업무와 병행해야 049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트 아르바이트나 저녁 식당 아르바이트 등 다른 일과 스페인어교원 업무를 병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학교 측에서 제시한 3개월은 어학원의 한 학기에 해당하는데, 봄・여름・가을・겨울학기 단위로 수업이 개설됨에 따라 사실상 짧은 휴지기를 제외하면 연속적인 업무가 반복해서 이어지는데 각 학기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셈이다. 선생님은 학교 측에서 계약 갱신을 무기로 삼아 무리한 요구를 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암묵적인 방식이나 우회적인 방식으로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3개월마다 계약이 갱신되는 고용 형태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기도 매우 힘든 상황일 수밖에 없다. 파업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매우 놀랐는데, 나는 파업이 일어나지 않은 것도 불안정한 고용 형태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3개월 단위로 고용이 갱신되는 형태에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파업을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다가 길고 긴 법적 분쟁과 사회적 논란, 그리고 투쟁 과정이 있었다. 한 교원이 콤플루텐세 대학교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1심 법원은 직급, 임금, 휴가, 매년 10월∼7월의 활동기간을 명시한 계약을 체결하도록 판결했고, 2심에서는 하급심의 판결을 거의 인용하고 특별상여금 문제를 일부 조정했다. 이 판결이 영향을 미쳐 사회적인 논란과 투쟁 끝에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는 이제 계약 연장 형식이 아니라 정규 계약 형식으로 모든 ‘외국어로서의 스페인어’ 교원을 고용한다. 지금은 25명 정도 되는 교원이 매 학기 학생들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계약 연장 형식 대신에 정규 교원 명단에 예비 인력풀을 두어 교원을 관리하고 있다. 다행히도 고용 형태가 안정적으로 바뀐 축에 가까워 보인다. 서울대에서도 지난 2019년 한국어교원 투쟁 당시, 교육노동자의 특성상 한계점도 있지만 한국어교원의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050기존의 계약직에서 무기계약직 자체직원으로 고용형태가 전환되었다고 들은 바 있다. 2010년대 비슷한 시기에 한국의 서울대와 마드리드의 콤플루텐세 대학교가 비슷한 경로를 거쳐 보다 안정적인 고용 형태를 얻어냈던 것이다.
다만 안타까운 이야기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콤플루텐세 대학교는 마드리드 권역에서는 가장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학교 중 하나이기에 이러한 법적 투쟁 과정에서 동력을 잃지 않을 수 있었고, 판결 이후에도 문제가 시정되는 데 사회적인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마드리드의 여타 여러 대학에는 비슷한 계약 연장 제도가 지속해서 유지되고 있다. 선생님은 “콤플루텐세 대학교는 유명해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고용형태를 오래 유지하기 어렵지만, 다른 유명하지 않은 학교들은 계약직 고용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곳도 있다”라고 하셨다. 서울대의 한국어교원 투쟁 승리 이후에도 강원대, 연세대, 제주대 등지에서 한국어교원 투쟁이 이어졌고 또 많은 학교에서 이어지고 있다. 한국어교원 문제가 서울대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듯, 스페인어교원 문제도 콤플루텐세 대학교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서울대도, 콤플루텐세 대학교도 앞으로 주변의 학교들에 안정적인 고용 형태와 연대의 모델을 확장시킬 수 있기를 희망한다.
마드리드에서 보낸 한 달이 안온했던 것은 좋은 시설 때문만은 아니었다. 방을 돌보는 청소노동자, 밤의 문을 지키는 경비노동자, 불안정한 계약 속에서도 교실을 지켜 온 스페인어교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학교에서 얻은 고용 안정이 다른 학교로 저절로 번지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 한국어교원의 고용 형태가 바뀐 뒤에도 다른 대학의 투쟁이 이어졌듯이, 콤플루텐세 대학교 주변에도 불안정한 계약으로 일하는 스페인어교원이 남아 있다. 유명한 한 대학의 변화가 예외적인 성공으로 그치지 않게 하는 일은 결국 다른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연대에 달려 있다.
051안온한 대학은 노동이 보이지 않는 대학이 아니다. 노동을 존중하고, 안정적으로 책임지며, 한 현장의 승리를 다른 현장으로 연결하는 대학이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이 만들어나갈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역시 그런 대학이어야겠다.
글을 마치며
출국 일정으로 인해 한 달간 비서공 사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 크다. 마드리드에 있는 동안 여러 일들을 맡아서 해주신 비서공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글을 마치는 지금까지도 아직 마드리드에 머무르고 있다. 중간에 짬을 내어서 개인 여행으로 발렌시아와 바르셀로나에 며칠 다녀온 후 마드리드로 다시 돌아왔다.
스페인에 온 지도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매우 여유롭고 편견도 덜한 스페인 사회에 거의 적응했는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무언가를 또 해내야 한다. 단기 유학생으로서, 또 여행객으로서 기숙사에서나 학교에서나 스페인 노동자들의 노동 위에서 즐거운 기억을 쌓았다. 특히 오랜 시간 기숙사와 어학원에서 기숙사 노동자, 교원 노동자 덕분에 편안히 한 달을 즐길 수 있었다. 스페인어를 조금 하다 보니 스페인의 스몰토크 문화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고 덕분에 이런 글도 쓸 수 있었다.
거창한 시사점을 남기려고 쓴 글은 아니다! 스페인을 다녀온 서어서문학과 학생이 노동과의 연결고리를 찾아 개인적인 감상을 열심히 써 봤다. 긴 글을 쓰는 일이 너무 오랜만이라서 어색했다. 고백하자면 AI의 도움을 받는 글쓰기에 그동안 너무 익숙해졌는데, AI 없이 쓰는 글이라서 글이 독자 여러분께 잘 다가가고 잘 읽힐지 걱정이 많다. 잘 읽으셨기를 바란다.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