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1호) 들어가며
창간선언문
물까치는 참새목 까마귀과 물까치속의 조류다.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교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박하고 친숙한 새다. 교조로 지정은 되어 있으나 실제로 볼 수는 없는 두루미의 고고한 권위성과는 대별된다.
물까치는 수십 마리가 무리를 지어 공동육아를 하는 연대의식을 아는 새이며, 둥지를 위협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덤비는 투쟁성 있는 새이다.
물까치의 푸른색, 흰색, 검은색 깃털은 현장직 노동자(블루칼라), 사무직 노동자(화이트칼라), 그리고 학생(학위복)들의 노학연대 총연대 총단결을 상징한다.
우리는 “세속의 이해관계로부터 초연”하게 높이 나는 두루미가 아니라, 시끄럽게 울며 낮게 나는 물까치가 될 것이다.
비서공 회칙 1장 2조
비서공은 서울대학교 노동자들의 차별적 고용구조와 노동조건을 개선함으로써 노동자와 학생을 비롯한 모든 학교 구성원이 이윤논리를 넘어 존엄한 권리를 보장받는 서울대를 만들고, 궁극적으로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는 노동자-학생 연대단체이다. 서울대학교 노동자들의 권리를 증진하고 노동자와 학생 권익을 공동성장시키며 노동을 바라보는 사회 전반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비서공은 다음과 같은 사업을 전개한다.
비서공 회칙 6장 15조
비서공은 다음 조건이 모두 충족되었을 때에 한하여 해산된다. ▲서울대학교의 모든 상시적 노동자들의 고용형태에 법인직과 자체직의 차등이 사라지고 총장발령 정규직으로 일원화될 때 ▲서울대학교의 모든 상시적 노동자들이 임금과 복지 등 모든 방면에서 차별을 받지 않고 평등해질 때 ▲서울대학교에 위험한 노동환경이 남지 않고 교정의 모든 곳이 안전한 일자리가 되었을 때
005들어가며
2018년 3월 출범한 비서공이 조직으로서 7년차를 맞았습니다. 이 시점에 문집을 창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를 자문해 보았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더 미룰 수 없어서”가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문집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2024년 7월에 처음 회의 안건으로 나왔는데, 미루고 미루다 이렇게 1년이 넘어서야 첫 문집을 내게 됩니다. 그 1년 동안 열심히 준비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른 일들이 생기고 그것을 우선시하다 보니 오랫동안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던 것이 사실에 가깝습니다. 긴 호흡의 시간이 소요되는 사업이 대개 그렇습니다. 가령 관악캠퍼스 노동자 휴게실 조사사업도 2024년 6월부터 거론되던 것이 10월에 구체화되었다가, 12월의 홍두깨 같은 계엄으로 또 미루어져 2025년 2월에야 개시할 수 있었습니다.
노학연대 단위는 성격상 긴 호흡보다는 사건에 대한 대응이 우선시될 수밖에 없습니다. 활동보고나 외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비공개로 처리되는 사안들까지 헤아리면 눈코뜰 새 없이 바쁩니다. 그럼에도 긴 호흡의 사업들을 포기하지 않고 준비하는 것은, 이 단위가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라는 목표를 이룰 때까지 그 목표를 이어가기 위한 방법이 추상적으로나 구체적으로나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왔다가 가는 학단위에서, 졸업해서 떠날 사람과 함께 기억과 암묵지(暗默知)가 소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 이 단위에 일시적으로 모여 있는 사람들이 활동하는 가운데서 각자의 내면과 006서로의 관계 속에 일시적으로 갖게 되는 감각과 의식을, 지금의 바로 이 순간을 미래에 도달할 수 있게끔 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언제 올지 모를 결정적인 순간에 동요하지 않고 망설이지 않게 해줄 기조를 각자의 마음 속에 세우기 위해서. 이러한 것이 휴게실 조사사업을 한 이유이기도 하고, 또한 문집 『물까치』를 더 미루지 않고 이번에야말로 발행하기 시작한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간호에 실린 기사는 크게 전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에는 회원들이 학외 현장에 연대한 경험이나 일상사업 체험을 소재로 쓴 짧은 수기를 배치했습니다. 먼저 구미가 고향인 임채린 활동회원이 구미 옵티칼하이테크 투쟁에 연대한 경험을 자신의 개인사와 결부해 진솔히 고찰한 글을 보내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새내기대학보다 비서공 사업 참여를 먼저 해 본 신입생 진제헌 활동회원이 자신의 입학 전후로 체험하고 관찰한 학내외의 여러 모습에 대한 감상을 담은 글을 보내 주셨습니다. 조성윤 활동회원은 세종호텔 복직투쟁 연대 경험을 중심으로 자신이 노동운동에 연대하게 된 계기에 관한 글을 보내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지원 연대회원은 연세대 학부생 시절 참여했던 호호체육관 사업을 서울대 대학원생으로서도 체험한 감회를 남겨 주셨습니다.
후반부에는 비교적 길고 무거운 글, 비서공이 활동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현장에서 있었던 심각한 일들에 관한 회고담을 배치했습니다. 우선 이일휘 활동회원이 2019년 서울대생협 전면파업 때 연대했던 경험을 회고해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이재현 활동회원이 2021년 청소노동자 사망사건 당시 비서공 학생대표로서 대응했던 경험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올해 2월 졸업하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한 이은세 연대회원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4년간 비서공 활동을 하면서 느낀 여러가지 고충을, 특히 2년간의 학생대표 경험을 중심으로 총괄해 주셨습니다. 학생대표를 역임한 두 분의 글은 이 단위에서 007책임있게 활동하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과 시야가 필요한지에 대하여 많은 시사점을 남기는 좋은 글입니다.
그리고 전・후반부를 연결하는 가운데는 흔히 접할 수 없을 흥미로운 글로 두 편을 배치했습니다. 2023년 하반기까지 집행위원(현 활동회원)으로 함께해 주신 황교련 연대회원께서 현재 미국 존스홉킨스에 박사과정 방문연구원으로 가 계신데, 트럼프 정부의 유학생 추방・탄압과 이에 대응하는 미국 대학원생노조를 가까이서 관찰한 르포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기숙사 기전노동자 남궁윤 노조원(민주일반노조 서울대시설지회)께서 12・3 계엄 발령 당일 계엄군을 막기 위해 국회의사당 앞으로 나갔던 이야기부터 서울대학교에 입직하기 전 과거 직장에서의 노동운동 경험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주신 인터뷰를 준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 참여형 코너로, 비서공 집행부에서 기획한 사업에 회원들이 참여하면서 느꼈던 기대나 소감을 자유롭게 짧은 글로 나누어 보자는 취지의 ‘뒤풀이’를 준비했습니다. 이번이 창간호라 독자 참여를 충분히 모으지 못하고 전・현임 활동회원들이 주로 참여해 주셨습니다만, 다음 호부터는 활동회원들이 기획한 사업에 참여해 주신 연대회원들의 사연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미흡한 점이 많지만 창간호 준비의 경험이 앞으로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가 만들어진 미래에 띄우는 오늘의 편지로서 이 문집이 도착할 미래의 그날을, 기다리며 또한 앞당깁시다.
2025년 9월 30일
편집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