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1호) 호호체육관 참여 수기
호호체육관 참여 수기
올해 3월부터 대학원생이 되어 연세대학교에서 서울대학교로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3월에 학교에 들어서니 학교가 너무 커서, 학교에 자꾸만 잡아 먹히는 느낌이 들었다. 학교에 사람이 너무 많고, 다 낯선 얼굴들이고, 긴장을 풀고 지낼 수 있는 공간을 알지 못해 새학기면 으레 가지곤 하는 막막함과 긴장감을 잔뜩 안고서 한동안 학교를 오갔다. 대학원 생활은 학부 생활과 분명 다르다지만, 그래도 얼마간 긴 시간을 보낼 공간을 조금 더 익숙하게 만들고 싶었다. 이 넓은 캠퍼스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인사할 수 있는 동료를 만나고 싶었고, 낯선 건물들 사이에 잠깐 도망갈 수 있는 안식처를 발견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번 학기 ‘호호체육관’에 참여했다.
호호체육관은 연세대학교에서 학부를 다니던 시절에도 참여한 적이 있었다. 학내 농구 동아리에 지원했다가 실력이 부족한 탓에 트라이아웃에서 떨어진 뒤, 나의 실패기를 알고 있는 친구 한 명이 호호체육관-농구 신청자 모집 링크를 조용히 들이밀었다. 골대를 향해 공을 쏴 골을 넣는다……정도가 내가 당시 농구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기 때문에, 선생님에게 농구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046점점 더워지는 날씨를 견디며, 대운동장 한 켠에 자리한 야외 농구장에서 아침 11시부터 12시까지 1시간 가량 땀을 뻘뻘 흘리며 참여했다. 농구는 실내 운동이고 한낮에 프로그램을 진행해 날이 더운데 왜 체육관에서 하지 않는 걸까……하고 궁금했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연세대학교 용역 업체의 반대로 체육관 대관 협조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야외 농구 코트를 사용했다고 한다.
한편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호호 체육관을 통해 농구 실력이 크게 늘지는 않았다. 호호 체육관을 통해 농구 실력을 연마해 다음 학기 농구 동아리 트라이아웃에 다시 도전할 야심찬 계획을 세웠지만, 몸이 마음처럼 잘 따라주지 않았다. 코치님이 지난 시간에 가르쳐주신 것들을 그 다음 주면 모조리 까먹은 채 코트에 서긴 했지만, 슛을 쏘는 나더러 “팔을 중간에 엉거주춤 접으면 안되고 끝까지 펴야 해요!”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셨던 것만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ㅋㅋ)
농구를 어려워하는 것이 나뿐만은 아니었던지 시간이 갈수록 농구를 하러 나오는 사람들의 수가 점차 줄었다. 학기 중반부가 넘어가면서부터는 매주 나오는 익숙한 얼굴들의 이름을 자연스레 외울 수 있었다. 우리는 잘 던졌는데도 골대를 빗껴나가는 공의 야속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의 팁을 주고 받았다. 여기에 서서 슈팅을 해보라, 골대 뒤의 네모를 맞춘다고 생각하고 공을 던져라……같은. 그러다가 점심은 먹고 오셨는지, 호호 체육관이 끝나면 어디로 가는지, 땀을 뻘뻘 흘리고 나면 다음 일정을 하러 갈 때 찝찝하지는 않은지와 같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연세대학교 호호체육관에서 새롭게 친해졌던 S님은 스포츠 과학관에서 근무하셨다. 이른 새벽에 출근해 층별 쓰레기통에 모인 쓰레기들을 건물 밖에 내어놓고, 호호체육관에 오신 다음 다시 스포츠 과학관으로 돌아가 간단히 씻고 오후 업무를 이어간다고 하셨다. 나와는 047수업이 끝난 다음 가는 방향이 같아 언젠가부터 함께 돌아가곤 했다. 호호체육관에서 보낸 일련의 시간들은 대학이 당연하게도 학생들만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아님을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이른 아침에 출근해 학생들이 등교하기 전에 대부분의 업무를 마무리하는, 보이지 않는 시간과 공간에서 노동하는 청소 노동자 [선생님들]을 일상적으로 만나고, 서로가 서로의 이름과 얼굴을 알게 되는 귀한 시간이었다.
때문에 이번 서울대학교에서의 호호체육관도 큰 망설임 없이, 커다란 캠퍼스를 매일 같이 바쁘게 쓸고 닦는 이들과의 만남으로 학교를 조금 더 익숙하게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는 기대를 품고서 신청했다. 학부 시절 호호체육관을 경험한 뒤 내가 학교를 두고 떠올리는 얼굴들이 다양해졌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강의실에서 마주치는 동료 대학원생들과 교수자 이외에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청소 노동자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건 다 제쳐두고서라도, 배드민턴 치는 건 즐거우니까!
이번 학기에는 배드민턴을 함께 쳤다. 배드민턴이 널리 보급된 생활체육 종목 중 하나라서 그런지 농구를 했던 연세대학교에 비해 선생님들이 훨씬 더 많이 나오셨다. 궁금한 것이 많았다. 연세대학교에서는 용역 업체의 비협조로 장소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일은 없었는지. 호호체육관이 끝나면 선생님들이 바삐 일하러 가시는데 그리 길지 않은 휴게 시간을 할애해서 배드민턴을 치러 나오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각자 어디서 근무하는지 아실 정도로 친하신데, 어쩌다 친해지게 되신건지 같은 것들.
수요일 오전 연구실에 앉아서 잔뜩 쌓여 있는 할 일을 황망한 마음으로 바라보다가…… 그래도 배드민턴 치러 가자, 하고 마음을 다잡고 체육관으로 향했던 날들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배드민턴 선수이신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형태이긴 했지만, 내가 배드민턴을 048칠 줄 만 알지 경기의 규칙은 전혀 몰라 게임 도중 서브나 복식에서의 역할 분담에 미숙한 모습을 보이면 옆에서 익살스럽게 면박을 주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주셨다. 배드민턴을 치고 난 다음 다시 연구실로 돌아가도 언제 끝날런지 알 수 없는 일들이 한가득이지만 청소 노동자, 학생 할 것 없이 팀을 꾸려 한바탕 시합을 하고 나면 그래도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호호체육관이 모쪼록 계속되면 좋겠다. 다른 사람과 땀을 흘리며 스포츠에 임할 때에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을 학생, 청소 노동자 할 것없이 모두가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공유된 즐거움을 바탕으로 학교의 학생들과 학교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들이 서로가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존재임을, 그리하여 같은 공동체의 일원임을 경험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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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3월 26일 호호체육관 개강일. 학생들과 청소노동자들이 함께 배드민턴 강습받는 모습. (촬영: 임채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