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1호) 고인을 위하여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2021년 서울대학교 관악학생생활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그 이후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를 실천해 온 4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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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을 위하여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

2021년 서울대학교 관악학생생활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그 이후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를 실천해 온 4년의 기록

이재현

비서공 활동회원

(전) 비서공 제3대 학생대표
(2021년 1월 - 2022년 7월)

2021년 6월 26일, 서울대학교 관악학생생활관(이하 관악사) 925동의 휴게공간에서 한 청소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토요일에 근무를 선택해 출근했던 고인은 잠시 휴식을 위해 누웠다,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196명 정원의 건물을 한 사람이 청소해야 했기에 자연히 노동강도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배달음식이 늘어나며 쓰레기양도 덩달아 늘어났던 시기였다. 1일 최대 100L들이 쓰레기봉투 기준 18개 분량의 쓰레기가 나왔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라 중량물을 계단으로 옮겨야 했고, 제습에 취약한 낡은 샤워실에서 곰팡이를 제거하는 일은 고됐다. 주말 근무는 의무가 아니었지만, 월요일의 노동강도가 심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기숙사 청소노동자들은 토요일 출근을 택했다. 2019년 입사 시 신체검사에서 너무나 건강했던 고인은 그렇게 출근한 후 퇴근하지 못했다.

충격에서 일탈이 아니라 구조를 짚는다는 것은

고인은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대시설분회(현 서울대시설지회) 조합원이었다. 2011년에 조직된 이래 용역업체 기간제 간접고용 구096조에 놓여 있던 학내 시설관리직(청소미화·경비·기계·전기·소방·통신·건축·영선 등 직종) 노동자들의 대학 직고용 무기계약직 전환을 2018년에 이루어낸 민주노조였다. 물론 ‘차별 없는 진짜 정규직화’와는 거리가 먼, 한계가 많은 전환이었다. ‘별도 직군’을 신설하는 방식의 전환은 당시 많은 공공부문에서의 전환과 마찬가지로, 고용안정을 이루어낸 한편 고용구조와 노동조건에서의 차별은 온존했다. 그런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2019년 일각에서 도서관 일부 구역의 난방이 꺼지게 했다고 비난했던 이른바 ‘난방 파업’으로 투쟁하기도 했고, 노동조합 탄압에 맞서 현장간부들이 대학본부 앞에서 삭발하며 농성하기도 했다. 2019년 열악한 계단 아래 휴게공간에서 발생했던 공과대학 302동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에서도 민주일반노조가 재발 방지에 앞장섰다. 그랬기에 미진하게나마 2년 남짓의 시간 동안 휴게공간에 최소한의 기준이 마련되어 개선이 진행됐다.

일터에서 발생한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처음엔 모두가 쉬쉬하기 마련이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 며칠이 지난 후 일하던 서점 근처 카페에서 민주일반노조 상근자의 전화를 받고 소식을 접했던 기억이 난다. 고인의 죽음을 둘러싼 정황을 알아내는 일은 조심스레 이루어졌다. 유월이 다 지나고 7월 7일이 되어 사망 사건을 공론화하는 기자회견이 대학본부 앞에서 열렸다. 이유는 달랐지만 한 사람의 청소노동자를 떠나보낸 지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재발한 사망 사건이기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됐다. 고인의 동료들도 짙은 선캡을 눌러쓰고 기자회견에 나서서 증언을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2021년 7월 7일, 행정관 앞. ‘또 다시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죽었다!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
“노동을 통해 공부하고 생활하는 학교의 일상을 유지해 왔던 학생으로서 정말 부끄럽습니다. 이번 사망 사건을 초래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노동자들도 학생들도 이러한 학교에서 일하고 공부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은커녕 부끄러움만 느낄 것입니다.”

사건이 공론화될 때에 특히나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은 노무관리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던 비민주적 관행과 폭력이었다. 그러나 갑질과 직장내괴롭힘의 실상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러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구조적 이유에 대해 충분히 사회적 관심이 이르지 097못했던 데에는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 공중파 드라마로서 이례적인 인기를 끌었던 <노무사 노무진>은 2021년 사망 사건을 모티브로 한 에피소드를 방영하면서, ‘드레스코드’나 부적절한 필기시험을 비롯한 중간관리자의 갑질이 죽음의 주요한 원인인 것으로 각색하며 자극적으로 묘사하였다. 해당 드라마의 감독인 임순례 씨가 동물권행동 카라의 사측으로서 민주일반노조(2021년 사망 사건 고인이 소속된 노동조합) 카라지회에 대한 노조 탄압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해당 에피소드에서 청소노동자들의 대자보를 과잉되게 틀린 맞춤법으로 대상화해 시혜적 시선을 보여줬단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분명 문제적인 098묘사다. 일터에서의 비민주적인 노무관리와 폭력적인 문화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이는 중간관리자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책임을 개인화하고 한 중간관리자의 일탈로 치부하여 ‘꼬리 자르기’를 시도하는 것은 대학본부가 사망 사건 이후 보여주었던 일관적인 태도였다. 7월 17일, 용기 있는 제보자를 통해 청소노동자들에게 부과된 직무와 무관한 필기시험에서의 사진이 공개됐다. 시험 장면에서 명백히 드러난 “근무성적평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라는 안내는 부적절한 시험이 결코 한 중간관리자의 일탈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에게 ‘승진’이 없다고 하더라도, 근무성적평정은 더욱 힘든 건물로 발령되진 않을까, 정년퇴직 이후 촉탁직으로 더 일하게 될 때 심사에 적용되진 않을까 걱정하는 노동자들에게 중요한 생존권의 문제였다. 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불평등한 권력 관계 속 ‘인사관리’를 권력이 작동하는 기제로 삼은 구조의 문제였다. 다음날인 18일에 JTBC에 의해 공개된 관악사 운영실무위원회 회의록은 직무와 무관한 필기시험이 윗선에도 보고되고 승인되어 실행된 노동 통제의 방식이었음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사망 사건의 구조적 책임을 더욱 명료하게 보여주었던 것은 서울대 보직교수들의 연이은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노동권을 위한 투쟁에 대해 서울대에서 발화된 ‘망언’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고 하겠다. 당장 2019년 초의 이른바 ‘난방 파업’에 대해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은 노동자들의 파업이 응급실 폐쇄와 무엇이 다르냐며 비난했다. 파업을 비롯한 단체행동의 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물론이거니와, 그런 파업권을 행사함에 있어서도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이 난방이 가동되는 학생들의 학습 공간을 보장하며 부분적으로 파업하였다는 기본적인 사실마저도 완전히 무시하는 발언이었다. 기자회견 이후 이틀밖에 지나지 099않은 7월 9일에 학생처장이 SNS상에 남긴 “피해자 코스프레 역겹다”란 2차 가해성 발언, 노동조합이 유족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하는 관악사 부관장의 기숙사 홈페이지 공지글은 어쩌면 그 연장선상에 있었을지 모른다. 부관장은 기숙사 운영에 책임이 있는 인사로서 그 권한을 이용해 기숙사생에게 공지를 문자로 돌리기까지 하였다. 학생처는 그런 기숙사의 관리감독 부서이기도 했다. 어쩌면 사망 사건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마저도 ‘노무관리’의 일환으로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BTL(임대형 민자 사업)을 비롯한 민영화와 인사관리 감독 강화 등이 기숙사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거론되는 분위기였는데, ‘효율적’인 인사관리를 통한 ‘행정’이 일하는 이들에게 어떤 폭력으로 다가오는지 생각해보진 않았을 게다.

아픔을 견디기 위해 그 무게를 진다는 것은

고인의 남편은 서울대 규장각에서 기계·전기 직종에 종사하던 시설관리직 노동자였다. 민주일반노조와 함께 산업재해 승인과 진상규명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싸웠던 유족은 너무나 무거운 슬픔, 그리고 부담이 되기도 했을 사회적 관심의 무게 아래에서도 투쟁하는 내내 존엄하게 보였다. 그런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 견뎌야 할 부담을, 그리고 존엄을 위해서라도 투쟁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다시금 무게로 다가오는 것을 알기에 너무 슬펐다. 2019년 공대에서의 사망 사건 이후 학내 시설관리직 휴게공간 조사를 하는 와중에 찍힌 유족의 사진이 있었다. 지하실이라는 위치와 기계의 소음 등으로 휴식과 노동이 분리되기 어려운 기전실을 조사하는 학생이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유족의 뒷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 쓸쓸한 뒷모습이, 2021년 마스크 뒤에서 울음을 삼키면서, 때로는 사람들 앞에서, 때로는 카메라 앞에서, 계속해서 아픈 경험과 입장을 이야기해야 했던 그분의 모습에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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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사망사건 유가족(고인의 남편)의 뒷모습. 당신의 근무지인 지하 기계전기실로 내려가고 있다. 고인의 남편은 규장각에서 기계전기 노동자로 일했으며, 기숙사 청소미화 노동자였던 고인과는 부부이자 직장 동료였다.

우리는 사망 사건의 진상 조사에 있어서 인권센터 조사를 거부하고 산업재해 공동조사단을 결성해 조사해야 한다고 마음을 모았다. 노측, 사측, 그리고 국회 등에서 파견된 전문가 3자가 공동으로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인권센터에서 활동했던 분들을, 특히 사망 사건 당시 주어진 조건에서 객관적인 조사를 위해 헌신적 노력을 다했던 전문가들을 개인적으로 불신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전에 다양한 학생의 인권침해 피해에 있어서 인권센터가 보여왔던 부적절한 행태, 그리고 학생처 산하의 기구로서 독립성이 보장되기 어려운 한계를 생각하면 인권센터의 조사에만 모든 것을 맡길 순 없었다. 특히나 학생처장의 부적절한 발언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진상규명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101강압적인 군대식 인사관리 방식을 개선하고 노동강도 완화에 필수적인 인력 충원을 단행하기 위해선 노동자들이 주체로서 참여하는 협의체가 필요했다. 일터에서의 폭력도, 위계적 구조에서 발생하는 보직교수의 부적절한 발화도, 대학의 다양한 노동자를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이 되풀이됐다. 우리는 진상 조사에서도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서도 공동체의 평등한 시민으로서 우리의 공간에 대해 정당한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

민주일반노조에서 긴급히 만든 소식지 중 하나엔 ‘효율적’인 비용절감을 위해 폭력이 자행되는 대학의 위계적 구조를 ‘설국열차’에 비유한 그림이 실렸다. 어느 한 사람이 이례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라 차별과 위계를 재생산하며 일상의 권리도 안전과 생명도 도외시하며 질주하는 열차의 구조가 문제였고, 더 나은 일터 그리고 더 나은 대학을 위해선 그 질주에 제동을 걸어야 했다. 너무나 무력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가 브레이크를 잡기 위해 함께했던 방식은 공감 그리고 애도였다.

떠나간 이의 삶과 기억이 우리의 일부라는 것은

고인이 사망한 자리에서 멀지 않은 관악사 920동 후생관(아고리움)의 1층에 추모공간을 설치했다. 학생회관 1층이나 중앙도서관, 그리고 이후엔 2년 전 사망 사건이 발생했던 공대 302동 지하에도 추모의 공간을 마련했다. 수많은 목소리가 포스트잇에 모였고 공간이 꽉 찰 때면 한 장 한 장 뗴어 공책에 붙여 보존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 작은 글귀와 몸짓들을 허투루 다룰 순 없었다.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메시지들을 온라인 아카이브에도 한 자 한 자 모두 타이핑해 보존해 두었다. 어떤 언어로 쓰인 것인지 처음엔 알기 어려웠던 포스트잇도 생각난다. 한참을 수소문해 알아보니 몽골어로 쓰인 것이었다. 아마 유학생 혹은 어학연수생이었을 분이 남긴 짧은 102말씀이 무슨 뜻이었는지 알게 되었을 때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잠시 스쳐 갈 뿐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연결되어 있구나,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같이 슬퍼하고 잠시 발 담근 공동체가 더 나은 공간이길 함께 바라는구나.

2021년부터 2023년까지 학생회관, 중앙도서관, 제2공학관, 학부생기숙사 후생관(아고리움)에 설치한 포스트잇 분향소에서 받은 추모 메시지들을 정리한 공책. 3년간 모인 800개의 추모 메시지는 비서공 홈페이지에 모두 보존·공개되어 있다.[1] (촬영: 이재현).
“ум сайн амгалан болтугай
[옴 사인 암갈란 볼투가이]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촬영: 배상희)

사회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다 보니 다양한 정당과 사회단체의 학내 방문도 이어졌다. 그런 관심이 감사하면서도, 때론 그럴 때마다 비슷한 이야기를 아프도록 반복해야 하는 유족께서 괜찮으실지 걱정하기도 했다. 때로는 ‘정치권’의 개입으로 ‘순수’한 사건이 ‘변질’103되고 ‘정치화’된다는 백래시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접하기도 했다. 다양한 혐오와 차별이 쉽게 재생산되곤 하는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임에도 그런 주장엔 비판하는 반응도 많이 달렸다. 일터에서의 권력 관계와 노동 안전이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문제이기에, 그리고 ‘정치화’를 이야기하는 비난이 결코 공감과 연대에서 비롯되지 않는단 걸 잘 알기에, 현실에선 애도와 기억을 향한 의지가 더욱 강함을 알면서도 종종 온라인상의 비난을 보면 화가 나곤 했다. 하지만 그런 혐오와 별개로 기숙사란 개인적일 수도 있는 공간에 다양한 정당과 사회단체가 오가며 느끼는 불안을 솔직하게 토로하는 글들엔 공감도 갔다. 그런 반응들을 전하며, 노동자와 함께 공간을 공유하는 학생들이 더 넓게 연대를 모을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노동조합 상근자 ‘동지’와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그 ‘선배’ 활동가는 “모두가 욕하지 않는 운동을 할 수 없는 거야”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사생들이 외부인 출입으로 겪는 불안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주셨다. 학생들의 반응을 최대한 고려하면서 노조의 대응을 진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셨다. 때로는 모두의 합의가 아닌 갈등과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그럼에도 설득과 공감대를 만들어나가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기, 지금까지도 ‘운동’을 하면서 늘 견지하려고 노력하는 소중한 ‘레슨’들이다.

고용노동부에서도 직장내괴롭힘과 관련된 조사가 시작됐다. 7월 20일 관악지청에 조사를 위해 함께한 동료 노동자들 중에는 기간제 계약직 노동자들도 있었다. 2018년 전반적으로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이 무기계약직 전환이 되었지만 여전히 계약직으로 사용되는 노동자들은 매년 생겨나고 있었다. 심리적 압박이 심하셨을 텐데 용기를 내 진술에 참여한 계약직 노동자들은 이후 계약 연장에서 탈락하고 관악사를 떠나야 했다. 계약이 연장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었는진 단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계약 연장이란 생존권이 사측에 달려 있는 비정규104직 불안정노동의 현실이 증언과 진술을 결단하는 데 있어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단 건 분명하다. 일터를 떠나게 된 분들은 그럼에도 동료를 위해 증언하기로 한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비록 노동강도를 비롯한 노동조건이나 인사관리에서의 구조적 책임까지 규명한 것은 아니지만, 고용노동부의 직장내괴롭힘 판정 뒤엔 그런 용기 있는 동료들의 헌신이 있었다. 지금 어떤 곳에 계시든, 늘 건강하시길 그리고 행복하시길 바라 마지않는다.

개인적으로 3년 남짓 관악사에 거주하면서, 스스럼없이 친하게 지내던 청소노동자 한 분이 계셨다. 가끔씩 우리는 학생들을 위한단 사명감에 일을 너무 열심히 하시는, 동료들도 종종 건강 챙기며 쉬엄쉬엄 하시라고 권하는 노동자들을 만나곤 한다. 그분도 그런 타입이었고 그분이 맡은 기숙사 동의 사생들은 감사함과 함께 때로는 미안함으로 매일 인사를 빼먹지 않으려 노력하곤 했다. 사생들이 퇴사하거나 동간 이동을 할 때가 되면 현관 안쪽 화이트보드에 감사한단 메시지가 빼곡하게 적히곤 했다. ‘노학연대’(노동자-학생 연대) 활동을 하면서 가까이에서부터 마주치고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민주일반노조 조합원이기도 하셨던 선생님과 자연스레 친해졌다. 나중엔 종종 더운 날엔 관악산자락의 산장에 함께 가서 강아지 쓰다듬고 술 한잔 기울일 만큼 가까워졌다. 관악사의 노동자들이 사망 사건 대응을 위해 모이는 자리에서 선생님을 발견했을 때에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는지 모른다. 지금은 퇴직 이후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긴 선생님은 새 직장이 서울대보다 훨씬 ‘바르고 깨끗한’ 곳인 것 같다고, 그렇지만 노조가 없어서 아쉽다고 말씀하셨다. 대외적인 이미지를 너무나 중시하면서도 실상은 너무나 숨기려 드는 서울대, 그런 일터를 그래도 일할 맛 나는 곳으로 만들어준 것이 노동조합이었구나, 민주적이고 자주적으로 동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공동체였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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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진하지 못해도 계속 나아간다는 것은

“사소하지 않은 죽음”이란 구호 아래 휴게공간을 비롯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던 2019년 이후, 2년 만에 “다시는 단 한 명도 떠나보낼 수 없습니다”란 구호를 들게 됐다.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연서명에는 312개 단체, 그리고 8,305명의 개인이 뜻을 학내외에서 뜻을 모아주셨다. 8월 4일 연서명 발표 기자회견 이틀 전, 서울대 오세정 총장은 다소 이례적이지만 실질적인 책임의 내용은 빠진 사과문을 발표했다. 연서명 발표 당일 오전, 총장과 유족 및 동료 노동자 간 간담회에선 학생은 물론이거니와 노동조합의 참여도 배제됐다. 노동자를 그리고 노동조합을 문제 해결의 주체로 대우하지 않는 모습은 2019년 한 단체교섭 실무자가 “민주노총은 서울대에서 나가라”라고 외쳤던 때로부터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학본부의 개선책은 인사관리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겠다, 노동자가 혼자 쉬지 않도록 1인 휴게실을 다인 휴게실로 통폐합하겠다, 주말 근무를 없애고 주말인 용역업체 외주를 주겠다, 등의 미봉책에만 그칠 뿐이었다. 특히나 주말 외주업체 사용은 직고용에 대한 이전의 합의에 역행할뿐더러, 용역업체가 맡은 업무가 매우 한정적인 관계상 월요일에 집중되는 노동강도를 개선하는 효과도 거의 없었다. 생활임금 쟁취를 요구해온 청소노동자들의 입장에선 노동강도도 나아지지 않는데 소득원이기도 한 근무시간마저 빼앗긴 셈이 됐다. 1인 휴게실이 위험한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과도하게 많은 인원수가 함께 쉬는 휴게실로의 통폐합은 휴게의 질 뿐 아니라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감염병 예방조차도 위협했다. 유족과 악수하는 총장의 모습에서도 보직교수를 비롯한 윗선의 구조적 책임을 통감하려는 의지, 대학본부가 책임지고 인력 충원과 처우 개선을 단행하겠단 의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한 건 아니었다. 대학본부가 형식적106으로나마 책임을 인정한 것은 수면 아래로 묻힐 수 있었던 일을 가시화하고 기억해내는 과정에서 함께 만들어낸 결과였다.

사망 사건이 공론화된 이후 8월 초까지 한 달여 간의 시간은 매일매일이, 때로는 매시간 시간이 치열하고 촉박해야 했다.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만 곧바로 대응해야 했고, 상황에 맞추어 입장문과 보도자료를 쓰고 급박하게 배포해야 했으며, 연락이 오거나 찾아오는 언론과 인터뷰를 자주 이어가야 했다. 사회적인 관심에 따라 대응하는 일만큼 학내 노동자들과 만나고 학생들에게 대응 방향을 알리는 일도 중요했다. 방학 기간이지만 계절학기를 듣는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더 보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사진 한 장 한 장을 모아 추모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교통이 편하다곤 하기 어려운 어느 단과대의 지하에 위치한 민주일반노조 사무실에서 눈을 붙이는 일도 잦아졌다.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지만 함께 대응에 참여한 학생들도 눈코 뜰 새 없이 움직여야 했던 한 달이었다. 연서명을 발표하고 부족하게나마 대학본부의 반응을 이끌어낸 이후엔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한 고민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런 시간 동안에도 진상규명과 책임 인정을 향한 몸짓은 이어졌다. 우리가 거부했던 조사이지만 인권센터 조사에서도 고용노동부에서 인정하였던 인사관리의 폭력이 인권침해였다고 판정했다. 9월 30일엔 근로복지공단 서울관악지사에서 3개월 전의 사망 사건을 산업재해로 승인하라고 신청하는 기자회견에 다녀왔다. 담당 노무사님의 헌신적인 노력과 조사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던 건강과 안전에 대한 구조적 책임을 상세히 밝혀내고 있었다.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를 지나 12월 27일, 중량물과 노후화된 건물 등으로 인한 높은 노동강도, 그리고 심리적 스트레스가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죽음에 원인이 되었다는 취지에서 고인의 죽음은 산업재해로 인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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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30일 근로복지공단 서울관악지사 산재신청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재현.
“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는 고인을 기억하는 일을, 그리고 고인의 동료들이 더는 죽지 않고 퇴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는 누구도 떠나보내지 않을 수 있는 학교는 노동자와 학생 모두에게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유족은 여기에서 멈출 수 없었다. 단순히 배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형식적 사과를 넘어선 실질적 책임 인정을 위해 소송에 나섰다. 소송은 오랜 시간이 걸렸고 2024년 2월 15일에야 대학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일부 승소 판결이 나왔다. 총장의 ‘사과’가 모든 것이 마무리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서울대는 그 사이에도 법원에 노동강도가 과장되었단 주장을 제시하는 등 책임을 어떻게든 회피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법원의 판결은 기숙사 전 부관장이 그토록 중시하며 유족에 의해 훼손되었다고 주장했던 서울대의 “명예”란 것이, 오히려 대학본부의 행태에 의해 실추되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108대학본부의 항소가 우려되어 압박을 위한 성명을 작성하기도 했으나,[2] 너무 늦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서울대는 배상 판결 이행을 받아들였다.

애도의 형식을 초월하는 애도를 한다는 것은

2021년에 일어났던, 일어나선 안 되었을 사건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여전히 많은 것이 그대로이지만, 그것이 유족과 동료들이 우리의 공동체를, 그리고 앞으로 그곳에 올 사람들을 위해 디뎠던 걸음들을 평가절하하게 만들진 않는다. 아픈 사건을 기억하면서 다신 그런 일이 없길 간절히 바랐던, 서울대란 공간을 잠시 거쳐 가며 많은 생각을 하고 작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행동에 나섰을 학생과 노동자와 대학 구성원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나 스스로에게도 분명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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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앞에 급박하게 대응하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노동안전과 건강권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서, 그리고 혹시라도 노동과정에서의 아픔이 발생할 때에 충분한 준비를 다진 위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연대의 기반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방학이 끝나고 가을이 찾아왔을 때, 서울대생협 단체급식 및 카페 노동자들이 2019년 파업에서의 미완의 과제로 인해 2년 만에 파업에 돌입하였을 때에도 노동 안전과 노동자 건강권은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였다. 일터에서의 민주주의, 그리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한 인력 충원은 직종을 넘어선 중요한 화두였다. 그리고 이는 일하는 존재들이 시민으로서 스스로의 권리를 일터를 규율하는 정치체에 기입할 수 있어야 달성될 수 있었다. 민주적이고 자주적으로 노조할 권리가 보장될 수 있을 때, 그리고 이를 위한 공동체 구성원의 관심과 연대가 한순간에 끊이지 않고 지속할 수 있을 때 가능했다. 노동자의 신체와 정신이 어떻게 노동과정에서 무너지지 않고 정의롭게 회복할 있을지에 대해 일하는 당사자가 가장 잘 아는 법이고, 그러한 지식이 무시되고 배척되지 않기 위해선 일하는 이들의 권리와 이에 대한 사회적 연대가 필요했다.

노학연대는 그렇기에 투쟁이 있을 때, 혹은 대응해야 할 사건이 발생할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나 쓰러지지 않고 퇴근할 수 있는 일터, 모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권리가 평등하게 배분될 수 있는 공동체, 더 나아가 경쟁적이고 ‘정상성’ 중심적인 건강 담론이 아니라 다양한 몸을 지닌 존재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건강하게 관계 맺을 수 있는 사회는, 우리 모두의 사회적 역량이 길러질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긴박하게 수면 위로 가시화된 투쟁이 없을 때도 노동권 그리고 노학연대에 지속적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학생 주체들을 만들어내는 110것을 이후 몇 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남은 학부생 재학 기간의 사명으로 삼았다. 평소에 커다란 이념이나 정치적 사조를 이야기하길 좋아하면서도 구체적인 우리 공동체 속에서 그 문제의식의 지속성을 고민하는 데엔 소홀했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도 컸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 지금, 그 일을 잘 해냈는지 묻는다면, 아쉬움이나 부끄러움도 여전히 크다.

2022년 6월 21일, 1주기 분향소에 헌화하는 재현(좌)과 은세(우). (촬영: 오마이뉴스 소중한 기자)

그렇지만 이를테면 ‘호호체육관’을 통한 시설관리직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스포츠 교류 그리고 연대 사업을 생각하면 2021년의 문제의식을 이어가는 일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탁구이든 배드민턴이든 앞으로 함께하게 될 어떤 체육 종목이든, 일하는 노동자가 자신의 신체에 대해 더 잘 알고, 일터 그리고 삶터에서 신체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일은, 건강을 위한 중요한 노력이면서 동시에 통상적인 ‘건강’ 개념을 초월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는 일터에서 쉴 권리 그리고 여가를 즐길 권리를 이야기하는 공간이기도, 공동체의 구성원인 학생들과 평등하고 새롭게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우리는 민주일반노조의 시설관리직 노동자들과 관악학생생활관의 공간에서 탁구를 치기도 했고 배드민턴으로 함께 마주치기도 했다. 구조적 폭력이 그리고 입 밖으로 꺼내기도 어려운 아픔이 있었던 공간이었던 관악학생생활관에서, “호호” 웃는 프로그램을 한다는 것이 때로는 낯설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나 동료의 권리를 위해 인사관리 개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길 두려워하지 않았던 고인이 바랐을 일터는, 앞으로 올 이들이 더욱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기에 다양한 애도의 방식을 실천하면서 어두운 공간의 틈새를 열어내고 그 공간의 의미를 바꾸어 나가기를 주저하지 않고자 한다. 앞으로 서울대를 일터로 찾아올 노동자들이 그리고 연대를 위해 문을 두드릴 학생들이, 이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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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7일 호호체육관 종강일 기념사진. 얼굴을 가리지 않은 사람들은 왼쪽 위부터 재현, 민주일반노조 서울대시설지회 유영균 지회장, 가운데에 남궁윤 노조원, 왼쪽 아래에 사업 주최측인 문화연대의 박이현 활동가. (촬영: 이일휘)

2024년 12월의 비상계엄 뒤 며칠이 지나 유족의 문자를 받았다. 그동안 가끔씩 얼굴을 뵈면서도 바쁘단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해 여러모로 죄송한 참이었다. 비상계엄 이후로 여의도로 향하던 다양한 시민의 얼굴엔 분노와 안도, 그리고 불안이 공존했다. 내 얼굴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수많은 대중이 여의도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토요일, 유족께선 어려운 시기가 되었기에 함께 국회로 간단 말씀을 남겨주셨다. 해병대에서 복무하고 전역한 당사자로서 그리고 해병예비역연대(해병연대)의 구성원으로서, 채 해병 사망 사건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활동해오셨던 분이었다. 저녁이 되면 대중교통을 타기도 어려울 것이라 생각되어 미리 여의도에 와 있던 차에 받은 그 문자는 112어떤 말보다 큰 용기로 다가왔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그저 개인화된 불행이라 이야기하는 냉소에 맞서서 죽음과 연계된 이들은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넘어 연결되고 있었고, 그런 마음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의 안전망을 짜고 있었다. 생명보다 비용 절감이나 권력의 빈틈없는 작용에 더욱 가치를 매기는 사회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아픔을 경험해야 했던 주체들이 함께 광장을 열었다. 거대한 광장이란 물리적 공간이 닫힌 이후에도 그곳의 열망과 문제의식은 이어지고 있다.

다시 비정규직 불안정노동 없는 대학과 사회를 말한다는 것은

우리는 비정규직 불안정노동이 없는 세상을 위해 출발했다. 비정규성과 불안정성이란 불평등은 파편화된 고용구조를 통해 임금은 물론이고 일터에서의 존엄과 건강과 안전마저도 불평등하게 부과하는 체제를 의미했다. 2019년의 조사 이후 개선작업에도 불구하고 남은 사각지대와 공간의 질적 한계를 살펴보기 위해 학내 노동자 휴게공간 전수조사 사업을 진행하며, 그러한 불평등이 얼마나 뿌리 깊이 우리의 일상을 규정하고 있는지 새삼 다시 느꼈다. 계단 아래 공간이나 냉방 등이 아예 불가능한 공간은 사라지고 새로운 공간으로 이전되곤 했지만, 여전히 건물의 너무 높거나 낮은 곳에 위치한 공간, 일터와 접근성이 너무나 나쁜 공간, 명목상 지상이라지만 산에 묻혀 환기 등에 취약한 공간 등이 많았다. 신축 건물에조차 공간의 질을 고려하지 않은 열악한 휴게실이 조성된 사실은, 건물의 노후란 핑계가 결코 노동자의 공간과 삶에 대한 괄시를 정당화할 수 없단 것을, 그리고 주체적인 연대와 투쟁 없인 본질적 개선이 있을 수 없단 간명한 사실을 증명할 따름이었다.

2025년 2월 12일, 휴게실 전수조사 사업차 방문한 51동 미술대학 5층 남성 청소노동자 휴게실. 미대는 2022년 조사에서도 가장 열악하기로 손에 꼽았던 곳인데, 3년 사이 변한 것이 거의 없다. (촬영: 이일휘)

우리가 꿈꾸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 불안정노동 철폐된 세상은, 형식적인 고용구조의 전환이나 직군 이름이 변경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2021년 사망 사건 당시 관악사와 대학이 인력 충원에 대한 113책임을 서로 미루었던 걸 생각해 본다. 원청은 책임 없다, 하청은 권한 없다며 고용과 권리는 갈 곳 없어지는 구조는 학교 바깥의 일만은 아니다. 시설관리직이라는 직군 내에서도 존재하는 총장발령 노동자와 기관장발령 노동자란 차이, 기관장발령으로 많은 학생의 밤과 낮을 유지하도록 하는 관악사의 인사관리, 기숙사비로 재정을 충당하는 ‘독립채산제’라며 인력 충원에 대한 재정적 책임을 방기하는 대학본부를 떠올린다. 우리가 간접고용 구조에서 너무나 자주 목도했던 원청과 하청 사이의 책임 떠넘기기를 대학본부와 관악사 사이의 관계에서 다시 상기하게 된다. 그리고 관악사 내에서도 그리고 밖에서도 한 기관이나 건물에 대한 시설관리를 통째로 외주 맡기며 점점 늘어나는 용역업체 간접고용의 부활을 떠올려 본다. ‘진짜 사장’이 노동자의 생존과 존엄을 114책임지는, 불평등한 고용구조에서 서로 책임을 떠넘기지 않는 대학과 사회가 필요하지 않을까.

대학본부와 학생복지 담당 ‘별도법인’이란 명분의 서울대생협, 총장발령 정규직인 ‘법인직원’과 기관장발령 ‘자체직원’, 계속해서 늘어나는 파편화된 고용과 외주화는 대학 내 불평등을 더욱 복잡하게 다변화하고 있다. 그러한 불평등한 구조가 안전과 건강에 핵심적인 인력 충원 그리고 인사관리의 문제도 더욱 불평등하게 다루도록 만들었다. 이는 우리 대학 내의 다양한 직종 간에 그리고 서울대 바깥의 일터와 삶터에서 반복되는 문제다. 결국 고민은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그리고 ‘불안정노동 없는 세상’이란 문제의식으로 돌아온다. “사소하지 않은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는 길, 그리고 우리 주변의 다양한 일터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길로 나아갔으면 한다. 그 길을 향한 다양한 노력을 엮어가며, 2021년 많은 이들이 결코 가볍지 않은 부담을 지며 냈던 작은 용기들이 빛나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싶다.

학생회관 포스트잇 분향소는 지금까지 붙은 포스트잇들을 철거하지 않고 계속 유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