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1호)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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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진제헌
비서공 활동회원

원고를 작성하던 중 전국적으로 예상치 못한 큰 폭우가 있었다. 장마가 지나갔다는 보도가 있은 후였고 따라서 국지성 호우로 분류되겠지만 나라 하나를 덮는 규모의 국지성 호우다. 봄에 있었던 산불에 이어 이상기후를 보여주는 재해이며, 명백한 인재다. 이미 늦었지만 기후정의를 생존의 문제로 봐야 하고, ‘민감한’ 쟁점이 있는 논쟁적인 주제로 보지 말아야 할 때이다. 재해는 만인에게 공평한 피해를 주지 않는 차등적인 현상이라는 점에서만 민감하다.

모두가 기억하듯 2024년 12월 3일에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2025년 4월 4일 파면됐다. 계엄으로 ‘열린’ 광장에서 사람들은 가속노화하기도 했지만 ‘가속꿘화’ 하기도 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사람들은 그렇게 싫어하던 노동조합이 ‘멋지다’고 숭배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꿘충’ 따라가지 말라고 했으나 언론이나 트위터, 집안에서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트위터에는 한동안 ‘저항하라, 금속노조는 선봉에 선다’라거나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습니다’가 떠돌아다녔다. 트위터가 늘 그렇듯이 세 가지 발화의 주체가 아주 별개라고만은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당장 부모님이 현실에서 그런 말들을 했었으니까. 계속 트위터 이야기를 하게 026되는데 그 안에 사람들이 있어서 그렇다. 어쩌다보니 트위터에 친구가 있는 걸 어떡하겠나.

계엄과 파면이라는 모두의 기억이 있으며, 계엄이 해제되고,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탄핵이 인용된 후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상황에 따라 ‘일상’으로 돌아갔다. 두 가지 기억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모두가 기억한다고 해서 같은 일을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그런 생각이 있기에 쓸 수 있었고, 또는 쓰고 있고, 내놓으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특별한 기억도 아니고 부끄러운 기억들로 한가득이지만 우선 나를 위해서라도 써야 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일기를 쓰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잊어버리고 싶지는 않기에.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이 글을 나를 모르는 사람만 읽었으면 싶지만서도.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을 때, 윤석열이 처음으로 구속되었을 때,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되었을 때 등등, 한 고비 넘었다고 생각될 적마다 트위터에는 ‘계엄령 선포 당시 뭐했는지 말해보기’가 돌았다. 나는 수능과 면접이 모두 끝나고 당연히 수업도 없어 놀고 있던 시절임에도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없는 규정으로 인해서 학교는 가야 했기에 다음날 일어나야 했고, 잘 준비를 하고 있던 중 갑자기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는 뉴스가 공유되었다. 몇 달 전에 계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시사 유튜브에서 들은 것을 전달하는 것이어서 신경쓰지 않았고, 이번에는 당연히 가짜뉴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기성 언론을 통해 계엄이라는 것이 정말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알고, 무슨 짓을 한 건지 파악하지 못하는 동안 막차가 끊길 시간이 되었다. 박근혜 퇴진 국면에서도 선포는 하지 않았다는 게 계엄이 아닌가? 이럴 수가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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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할지 고민을 했던 건지 그냥 가만히 있었던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시간이 시간이었고 택시 탈 돈은 없어서 다음날 첫차를 타고 국회로 가겠다고 다짐하고 트위터의 친구들이 어떤 상황인지 지켜봤다. 바로 국회로 간 친구가 있었다. 반면 성인이 아니라는 핑계로, 따라서 부모가 걱정할 만한 일이 없어야 한다는 어느새 효자가 되어버린 듯한 핑계로 집에서 첫차만 기다리고 있는 심정은 편안하기까지 해서 어쩌면 좋을지 몰랐다. 아직까지 계엄을 실감하지 못했던 걸까.

계엄 해제가 있은 후에도 학교는 나가야 했다. 밤새 트위터를 했고, 다음날 학교에서 계엄은 해프닝이 되어 있었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쨌든 해제된 이상 직접적으로 느끼는 영향이 있는 건 아니었을 테니까. 영향이 있어도 나서서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이고. 몇 번의 집회, 그보다 많은 횟수의 등교가 있은 후 서울대에 합격했다. 기쁜 일이었지만 어디 그게 중요한 것이던가. 당연히 중요한 것이었다. 수시로 3년을 보낸 제도권 말 잘 듣는 고등학생에게 더 중요한 게 많지는 않다. 아직까지도 졸업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이미 졸업했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만화판으로만 보고 그다지 감흥이 일지 않았던 에반게리온을 애니로 보고 만화판을 저주하고, 뭐 그런 것들을 하면서. 세상에, 만화판에서 카오루는 그다지 미소년도 아니고 그냥 이상한 사람으로 나왔던 것이다. 혹시라도 에반게리온에 관심이 있다면 만화판은 보지 말고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보시라. 관심이 없어도 교양필수과목 듣는다는 생각으로 보시라.

사실 서브컬쳐의 전개과정을 잘 알지 못해서 어째서 역사적 가치를 지니는지는 모르겠지만 에반게리온과 카오루는 추앙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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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식이 있기 전에, 기억이 정확하다면 고등학교 졸업 전에 합격생 신분으로 비서공 연대회원, 당시 명칭으로는 ‘후원회원’이 되었다. 당시에 자주 있던 오해였다는데, 후원회원이라면 후원을 해야만 하는 건지 고민했었다. 낭비벽이 있어서 정기후원을 감당할 수 있을지…….

아마도 집회에서 본 고등학교 친구가 보낸 게시물이 마침 비서공 게시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비서공의 활동은 아무래도 외부적으로 윤석열 퇴진에 비중을 두고 있었지만 학내 주요 사업으로 노동자 휴게공간 전수조사 사업이 진행 중이었으며, 나는 입학식 다음날 참여했다. 기억이 분명치는 않지만 새내기대학보다도 먼저 한 대학 활동이 집회 참여였고 입학 후 첫 활동이 전수조사 참여였던 셈이다.

입학하자마자 동아리방 혹은 반방에 파고들어 지냈기 때문에 지나갈 일이 잘 없기는 하겠지만, 학교 구조를 익힐 만한 활동이 전수조사 참여밖에 없었다. 새내기대학에서는 경황이 없어서 눈에 들어오는 게 없어서. 강의실을 찾아다니느라 정신 없는 시간 가운데서도 가끔 저 공간은 무엇인가 싶을 공간들이 있는데, 어느 정도는 시설노동자 휴게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 활동이었다. 그리고 그런 눈에 잘 보이는 위치에 있는 공간을 사용하게 된 것도 개선된 결과이고, 이전에는 휴게실이 드러나지 않는 공간에 있기도 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우선 충격적이다. 매일 아침 깨끗한 복도, 화장실, 쓰레기통을 보기 위해서 사람이 죽어야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학교의 장이었던 사람들과 지금 학교의 장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조사과정에서 만난 한 청소노동자의 말에 따르면 현재 사용중인 휴게실의 환경은, 행정실이 협조적이며 학교의 입장을 이해하므로 만족할 만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는 건 행정실이 비협조적일 경우에 만족스럽지 않은 환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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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경비노동자를 통해서는 ‘첨단 경비’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무인 경비가 자연대, 공대에 가장 먼저 적용된다는 우려를 들었다. 그 과정에서 “인문대야 뭐 별 거 없지만” 이라는 말도 들었지만 아무래도 인문대에 전기 배선 정도가 아니면 위험물질이 거의 없는 것은 사실이니까 괜찮았다. 한 학기를 지낸 인문대생으로서 불 켜진 경비실을 본 적은 없는데 다른 곳에는 더 없을 수도 있었다. 조사 과정에서 어떤 경비실은 ‘머리 조심’ 문구와 머리 보호 쿠션이 조그맣게 붙어 있는 철제 계단 아래를 지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평균 신장에 미치는 사람의 경우 허리를 숙여야만 했고 나는 다행히 평균신장에 미치지 않아 편하게 지나다닐 수 있었지만 경비노동자는 허리를 숙여야만 할 것이었다.

2025년 2월 28일, 휴게실 전수조사 사업 중에 촬영된 서울대학교 153동 우정원 1층 경비실 진입로. 진입로 한가운데를 계단이 막고 있어서 머리 충돌의 위험이 높아 보인다. (촬영: 이일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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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세 문단을 써놓고 이러는 것도 불편하긴 하지만, 충격적인 장면은 이용되기 쉽다. 충격적인 단 하나의 장면이 다른 문제들을 한꺼번에 대표하기도 하고, 충격에 익숙해지면 장면이 대표하는 다른 문제들과 함께 잊히기도 한다. 창작물에 사회문제와 사회문제를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사건을 가공한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 나타나고 보통 주연에 의해 금방 해소되는 사례는 흔해서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다. 잊혀져가는 사건에 다시 관심이 생기니 좋지 않냐는 의견도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은 조금 아니다 싶은 경우가 있으니까. 자극적인 소비로 기억한다고 착각하다가 잊어버리기보다는 실질적으로 어떻게 기억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궁리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대학 진학률을 보면 대학에 다닌다는 것과 거기 사람이 꽤 많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지만 대학 안에 사람이 상상 이상으로 많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사람이 몰려다니는 모습을 보면 놀랍기만 하다. 충격적인 이미지를 하나 뽑아보면 학생회관 식당의 줄이다. 점심에는 식당 바깥, 건물 출입문 바로 앞까지 서 있는 경우가 잦았으며 아마도 문 밖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추측성으로 말하는 이유는, 사람이 너무 많아 점심을 거르거나 하는 데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렇게 긴 줄이 줄어들지도 않는 건 대학에 오기 전까지 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에서도 줄은 곧 사라지는 것이었는데. 조금 버티면 지나가는 빈약한 공황만을 겪다가 대공황 얻어맞은 미국 자본가, 경제학자들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이전 문단에서 한 말을 내가 지키지 않게 되었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사람들을 맞는 생협 급식노동자의 수가 코너당 4-5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 개의 코너 중 하나의 코너를 제외하면 줄어들지 않는 줄이 선다. 세상에. 뭐라 할 말이 없다. 이해되는 부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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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에게 보내는 첫 메일의 용건이 동맹휴강 참여라 조금 신났었다. 두 과목을 쨌고 그중 한 과목은 출석이 인정되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수업을 째는 행위야 흔히 일어나지만 동맹휴강이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닌 것 같고 나는 특이한 것을 좋아하니까. 아직까지 아무 이유 없이 짼 적은 없다. 특이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사춘기가 지나가지 않은 것 같다. 유년기의 끝은 오지 않는걸지도 모른다. 이건 그냥 희망사항. 유년기가 끝났다고 다른 사람들은 멀쩡히 살고 있던 거주지를 날려버리는 예의없는 소설[1]이 더 현실성 있을지 모른다.

전봉준 투쟁단이 두 번째로 서울로 향했을 때 남태령에서 투쟁단원 한 분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동지라고, ‘고맙다’고 하셨다. 동지라는 말은 몇 번 들어봤어도 ‘고맙다’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전에는, 특히 첫 번째 상경 행렬이 남태령에 막 도착했을 때까지도 트랙터를 끌고 오든 어떻든 경찰이 패고 끌어냈으며, 그때는 남부지방 산불이 한창 심각한 때였고, 여느때와 같이 경찰력이 생뚱맞은 곳에 투입되었다. 그분에 의하면 그리고 생각해보면 민주당에서 대통령을 내봐야 탄압을 덜할 뿐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경찰에 의한 탄압이 일어나는 경우 소식이 잘 들리지도 않는다. 생각해 보니 이상한 일이었다. 누구나 체감할 만큼 농작물 가격이 말도 안 되게 널뛰어도,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트랙터 상경 시위가 대대적으로 보도되어도, 국내에서는 가끔 경찰이 트랙터 유리를 깨고 농민을 끌어내는 영상이 드문드문 보일 뿐, 어떤 정책 또는 상황에 대해서 어떤 요구가 있었다는 소식이 들린 적이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없어서 들리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싶어도, 또 그게 어느 정도 맞다고는 해도, 가만히 032앉아 있기만 하는 사람보고 고맙다는 말을 듣게 만들 정도라면 이상한 일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상황을 이용하기도 한 현 정권이 전 정권의 장관을 다시 기용한다니 이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이건 매번 나오는 ‘나중에……’ 식의 소위 우선순위 문제도 아닌데 말이다. 뭘 더 어떻게 믿고 기다리란 말인지.

어쩌다 보니 대치가 있던 상황은 이리저리 피해 다니게 되었다. 극우집회와 같은 위치에서 집회가 있더라도 덕담 비슷한 말을 좀 듣고 사진 몇 장 찍힌 것 말고는 아무 일 없었으니 신기한 일이었다. 어떤 트친은 디시인사이드에 신상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퀴어퍼레이드의 ‘혐오세력’도 어찌된 일인지 이번엔 규모가 조금 작았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내가 안전이 보장된 장소에만 있었다는 걸 명심해야 하겠다.

‘어쩌다 보니’라는 말은 12월부터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말이다. 어쩌다 보니 고등학교 생활 끝물에 계엄령이 있었고 어쩌다 보니 집회에서 같은 학교 사람을 만났으며 또 어쩌다 보니 그 친구로부터 비서공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어떻게 지내다 보니 마침 휴게공간 조사사업이 있었다.

어쩌다 보니 남태령에서는 발언도 하게 되었다. 전봉준 투쟁단 단원께서 내게 바람을 넣고 넣다 보니 그렇게 됐던 것 같다. 그렇게 계엄 이후 첫 발언을 했고, 그건 아주 어릴 때 뭣도 모르고 갔던 수요집회에서 했던 발언보다 어려웠다. 생각해 보니 발언문을 읽은 게 내가 아니었다. 어쩐지. 당시에 발언을 맡은 친구에게 늦은 감사를 전한다. 위의 사실에는 흐린 눈을 하고, 남태령에서 발언을 잘 하지 못한 원인이 지난 몇 년 동안 ‘발표’라는 것을 하지 않고 살아온 데 있다고 하고 싶다. 고등학교에서의 발표는 혼자 떠드는 것이었고, 그걸 또 어쩌다 보니, 너도 나도 각 과목 선생님도, 모두가 알고 있어서 발전하겠다는 033의욕도 발전해야 한다는 위기감도 없었는데, 또다시, ‘어쩌다 보니’다. 수요집회에 갔던 것도, 수요집회에서의 발언문을 맡게 된 것도, 원래도 처졌던 발표 능력이 더 떨어지게 된 것도.

2025년 3월 25일 심야, 2차 남태령 대치 때 발언하는 제헌. “오전에 학교 동기가 제 인스타 스토리에 공유된 극우 간담회 규탄 성명문을 보고 ‘진보’냐고 물었고, 저는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헌법을 수호하러 나왔기 때문에 충분히 진보적이지 않다는 걸 압니다.” (촬영: 이재현)

겨울에 있었던 집회의 발언들에서는 지금 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것이라는 비유가 자주 나왔다. 겨울과 봄이 비유에 많이 사용되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비유를 쓴다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것이 당연하듯 봄이 지나가는 것도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게 되는 것 같았다. 순환하는 계절들 가운데 봄이나 겨울이나 잠시 스쳐 지나가는 계절이니까. 그래서 굳이 계절 비유를 사용해야 한다면 ‘연대의 우기와 투쟁의 건기’ 같은 식의 비유가 좋지 않을까 했는데 발언문을 정리하는 034과정에서 까먹어 말하지 못했다. 다시 써놓고 보니 말 그대로 겨울이었던 곳에서 이런 내용을 말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기도 하고. 키세스 포장지 정도로 불린 은박 필름 덮고 있는 곳에서 말이다.

겨울이 끝나고 탄핵이 인용되어도 바뀐 것은 많지 않았다. 학내에 열렸던 세월호 11주기 추모제를 지나던 분이 “미친놈들”이라고, 못 들었을까봐 두 번이나 말하고 간 것을 기억한다. 각자의 상황이 있을 것이고, 못 들었을까 봐 굳이 멈춰 서서 한 번 더 말하는 세심함을 가진 분이시니 뭔 일이 있겠거니 싶지만 잘 모르겠다. 어떤 기억을 떠올리셨던 걸까? 왜 하필 ‘놈들’이었던 걸까.

2025년 4월 16일, 학생회관 앞에서 세월호 추모 기억문화제 부스를 지키고 있는 제헌. (촬영: 이일휘)

예상되었던 것이지만 이재명이 당선된다고 해서 ‘사회대개혁’이 이루어지는 것 같지도 않다. 정교분리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035듯이 개신교적 가치를 숭앙 중이며 그게 별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면, 교계, 그마저도 개신교에 대한 수사는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의견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고, 그런 면에서 출발점이 되어야 할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고려되지 않는 것 같다. 봄도 지나고 여름이 왔고, 그렇게도 호명하던 ‘광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도 않는데 그렇다고 소위 내란 청산이라는 것이 잘 진행되고 있는가 했을 때, 으으음…….

봄도 지나가고 여름이 왔다. 어떤 친구는 종종 왜, 뭐하러 집회에 가느냐고 묻는다. 뭐라고 대답하긴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할 수 있는 일이 우선 이것밖에 생각나지 않고 다른 어떤 일을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하기에는 내키지 않아서, 머릿수 채우러 간다고 대답한다. 두 말 모두 유의미한 차이 없이 무책임한 대답이지만. 이상한 일이지만 응원(?)한다는 사람이 있어서 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다짐하려 다시 나가는 것 같기도 하다. 나와 관련된 문제가 아닌 집회가 정해져 있고 뭐 그런 것도 아니고, 관련되지 않아 보인다고 해서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고.

그렇지만 집회에 있다 보면 가끔 집회를 넘어서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더이상 확실하지 못할 정도로 확실하게 든다. 집회가 힘들기는 하지만, 특히 여름 겨울엔 더 힘들지만, 천성대로 집에만 박혀 있고 싶지만, 집회만 한다고 바뀌는 게 있던가. 물론 그건 뭘 할 수 있을지 찾아보지 않아서 생긴 느낌이니까, 사실이라고도 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의 서술이라기보다는 무관심에 더 가깝다. 하지만 나는 지금 아는 게 없다시피 하니까, 절대적인 확신을 갖거나 그러는 것보다는 나은 상황이라고……생각하고……싶다.

비서공에서의 반년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을 경험할 수 036있는 시간이었고 만나본 적 없던 사람들, 만나도 만나지 않은 것처럼 굴었던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여름도 지나가고 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올해 겪은 경험들이 단순히 신기한 일을 경험한 것에서 끝나지 않게, 올해 만난 사람들을 특이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방법은 일단 지금은 연대밖에는 모르겠지만. 남은 대학생활 중에도, 대학 졸업 후에도 단순한 관심이나 연민에서 멈추지 않고 연대를 만드는 조건이 뭘지, 연대라는 말을 구호에서 멈추지 않게 하는 것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졸업이 아주 멀기는 하지만. 나를 믿을 수 없기에 놀기도 잘 놀면서 동시에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항상 체력이 좋지 않았으니 운동을? 아니 그건 좀. 지금부터 열심히 준비하지 않으면 나중에 정말 힘들어진다고는 하지만 잘 모르겠다. 어떻게 되지 않을지.

정말 오랜만에 많은 일이 있었어서 그런지 겪었던 일을 멀끔하게 정리할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입학 때도 이정도로 주변이 바뀌지는 않았다. 대학 관련 말고 다른 일이 있기도 했고, 인생에서 이렇게 많은 사 람들을 보고 많은 장소에 간 적이 있나 싶다. 그렇다보니 중요한 일이었지만 쓰지 못한 것도 있을 것이고 다시 보면 왜 들어갔는지 모를 일들도 있을 것이다. 서술된 사건에 대한 태도도 지적받을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인데, 쓰다 보니 내 기억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정리될 필요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만의 기억인 것도 아니고. 소설이나 시를 쓸 때는 재밌으면 된다고 생각해 버리는 사람이지만 수필은 아직까지 재미를 넘은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재미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 뭔가가 있냐고 하면…….

누가 이 글을 끝까지 읽었거든, 모쪼록 관대하게 기억하게 되시면 좋겠다.

×  (편집부)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