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1호) 뒤풀이

136

뒤풀이

비서공 사업에 참여하며 느낀 마음을 자유롭게 나누어 주세요!
활동회원·연대회원 구분 없이, 소중한 한 마디를 모아봅니다.

🪶 황교련 (전 활동회원)
- 2022년 생협 식대인상 대응

지금 돌이켜보니 너무 지난 일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팬데믹 이후에는 학교가 참 뒤숭숭한 느낌이었는데요, 그 이유 중 하나가 생협 식당을 포함한 학내 시설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 것도 컸을 것입니다. 그 때 비서공에서는 사망하신 청소노동자 두 분 추모와 더불어 생협 파업의 원인을 조사하고 학생들에게 알리는 데에 가장 힘을 쏟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생협 파업 및 학식 가격 인상의 원인이 학교 고용 구조에 있다는 유인물을 학생들에게 배포했던 것이 아직도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입니다. 셔틀줄에 서있던 학생 및 학교 구성원 분들이 대체로 호의적으로 저희 자료를 받아주셨습니다. 간혹 한장 더 달라고 한다거나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네는 분도 있었습니다. 대체로 무관심할 거란 제 예상을 완전히 깨는 것이었어요. 역시 피부에 맞닿는 학내 현안이 모두에게 가장 힘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일단 학식 가격이 오른다니, 학생들에게도 생존의 문제잖아요? 그 외에 작년 여름 민주일반노조 사무실에 공기청정기를 전달한 것도 뿌듯했던 경험입니다. 비서공에서는 좋은 기억밖에 없어서 뭘 적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었지만 글이 길어지는 것 같아 이만 줄입니다. 서울대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될 정도로 아주 거대하고 상징적인 기관인 만큼, 우리 비서공의 역할이 앞으로도 중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화이팅!!
137

🪶 임채린 (현 활동회원)
- 2024년 생협 조리노동자와 함께하는 밥상회

희망버스란 무엇일까요? 버스에 희망을 실을 수 있을까요? 희망뚜벅이란 무엇일까요? 걸음에 희망을 담을 수 있을까요? 어쨌든 고공농성의 결의에 연대하고 응원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은 희망이 될 수 있으려나요? 제 개인적인 부채감 때문에 한국옵티칼지회 박정혜, 소현숙 동지의 투쟁 현장에 여러번 동참했었지만 늘 단위 안에서도 응원해주시고 함께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거듭 외롭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작년 밥상회 이후 안면을 트게 된 생협 선생님들이 저에게 내주신 환대를 경험한 뒤에 탄핵을 찬성하는 집에 돌아갔더니 너무 외로웠는데, 연대 현장에서 그런 개인적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고, 그 뜻에 공감해주신 회원 분들 덕분에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여력 되는 대로 많은 사업장에 함께 가봐요. 화이팅!

🪶 조성윤 (현 활동회원)
- 2025년 봄학기 호호체육관

학내 노동자 쌤들과 교류를 하는 자리가 소중했다. 단지 노동자 쌤들을 가까이서 봬고 말을 나눌 수 있어서뿐만이 아니라, 학생과 노동자 모두 처음 배우는 배드민턴을 통해 평등한 관계 속에서 관계 맺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학생사회공헌단 활동을 통해 노동자 쌤들과 비누나 전등, 바구니 등을 만드는 자리를 만들었는데 그때는 노동자 쌤들이 우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 그런 말씀을 해주신 것은 너무 고맙지만, 그 자리가 노동자 쌤들에게 권리로서 다가오지 않았던 듯하다. 반면 호호체육관에서는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고마워해야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모두가 자유롭게 참여하고 관계맺을수 있었다. 학생과 노동자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관계 맺으며, 함께 공존하는 캠퍼스를 만들어가는 발걸음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138

🪶 이일휘 (현 활동회원)
- SPC 허영인 회장 서울대학교 발전공로상 박탈 촉구 서명운동

옛말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일본에 베트남을 끌고 오지 않는 것이 일본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연구실이 전쟁터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대학의 자치’나 ‘연구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연구자의 에고이즘을 지키는 것일 따름이다.”(山本 1969) 서울대에 SPC를 끌고 오지 않는 것이 서울대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마음으로 1500장의 전단지를 붙였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할 리 없겠지만, 전단을 보고 서명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마음 속 서울대 교정에 전쟁터와 같은 SPC 공장을 조금이라도 끌고 올 수 있었다면 좋겠습니다.

🪶 진제헌 (현 활동회원)
- 2025년 팔레스타인 긴급행동 결합

윤석열 탄핵 이후 팔레스타인 연대에 관심갖기 시작했습니다. 격주로 토요일 SK서린빌딩 뒤에서 열리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주관 ‘가자지구 집단학살 규탄 한국 시민사회 n차 긴급행동’에 비서공 깃발과 같이 갔었네요. 이제는 깃발 없이도 잘 다닐 수 있답니다, 하하. 집회에는 고정적으로 2주간 팔레스타인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해주시는 발언 시간이 있습니다. 거기서 가자의 사람들은 철저하게 사라지고 있었는데 가자지구, 서안지구에 다녀온 분들은 그래도 생활이 존재한다고 전해주십니다. 실감이 나질 않았지요. 아마 말로만 전해들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상영회는 실감을 갖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다큐멘터리 속 주민들은 사방이 막힌 구역에서도 생활을 꾸려나가고 투쟁합니다. 상영회 소감을 나누는 시간에 나왔던 말처럼, 생활이 존재함에 놀라는 제 자신이 너무나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이런 불편함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압박하길 바라게 됩니다.
139

🪶 윤단영 (현 활동회원)
- 2024년 가을학기 오픈세미나

아직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인지 활동을 이어나갈 동력보다는 활동을 ‘시작할 계기가 될’ 동력에 대한 고민이 더 크다. 무언가를 얼마나 더, 어떤 방향으로 이어나갈 것인지는 경로를 따라 걸으며 천천히 고민할 수 있지만 첫 걸음은 어떤 길에 올라서기로 하는 결심이기에 이후의 어떤 결정과 고민보다도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주변에서 꾸준히 손을 내밀어야 한다.
새맞이 사업은 결국 문턱을 넘게 하는 데에 달려있다고 본다. 본인 역시 1년 이상 문턱을 넘는 일을 주저해왔지만, 지난 가을의 새맞이 오픈세미나와 이어서 가진 대화의 시간들을 통해 실질적인 첫 걸음을 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봄여름을 지나오는 동안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무거운 첫걸음을 떼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지난 겨울에는 광장의 민주주의가 큰 동력이 되었고, 이번 학기에는 생협의 오랜 문제를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연대는 결국 사람을 향해 손을 내미는 일이지 않은가. 손을 잡기 위해서는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그 다가서는 과정을, 걸음들을 이번 학기에도 함께 딛어내고자 한다.

🪶 김민재 (현 활동회원)
- 2024년 사회운동의 길 순례

교정을 지나며 익숙하게 느꼈던 기념물들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고, 나무덤불 너머 존재조차 몰랐던 기념물들을 발견했습니다. 관악캠퍼스라는 공간의 역사를 새로이 생각하게 됩니다. 서울대학교는 ‘대학생이 이끈 민주화’라는 깔끔한 규정에 미처 담기지 않는 목소리들, 또는 그러한 규정으로써 기억의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투쟁의 자취들이 조용히 끓고 있는 곳입니다. 이 길을 앞서 걸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함께 걷는 이들의 소중함을 느끼며 더 많은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야겠습니다.
140

🪶 이은세 (전 활동회원)
- 2024년 학생활동가를 위한 진로 토크

“뭘 하고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지 않는 학생은 적겠지만, 이런저런 활동(운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이 질문은 특히나 어려운 문제가 되는 듯합니다. 아무래도 활동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좋다고’ 여겨지는 통상의 진로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경력이기도 하고, 지금의 시선과 지향을 유지하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잘 알지 못해서이기도 합니다. 사실 제가 바로 그런 고민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 이 행사 소식을 들었을 때 참 반가웠습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니! 행사가 벌써 작년 일이니만큼 구체적인 내용들은 조금 흐릿해졌지만,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 않더라도, 지금의 마음들을 포기하지 않더라도 해볼 수 있는 일들이 있겠구나’라고 느꼈던 그 감각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자리가 지속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141

🪶 김종형 (현 활동회원)
- 2025년 6월 27일 ‘최저임금 대폭인상 청년학생 노학연대 강화 문화제’

처음에는 조금 갑작스럽게 참여하게 된 사업이었습니다. 발언문은 받았지만, 원래 발언하시기로 하셨던 분 일정이 어려워지며 대신 발언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활동을 했던 2년 전으로부터, 군복무를 거치며 2년간 퇴보하여, 사업에 대한 이해도, 자신감도 부족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2년 전인 2023년 6월에도 최저임금 관련하여 비서공에서 활동하며 자보를 쓰고, 발언을 하였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를 이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발언과 문화제 모두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최저임금을 보며, 심지어는 지역별, 산업별 ‘차등적용’을 운운하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참담했습니다. 최저임금이 갈 길이 아직 먼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우리의 연대가 더욱 절실합니다. 모든 일하는 노동자들의 보편적 최저임금을 위해서, 최저임금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모두가 최저임금을 통해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연대를 이어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