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1호) 응답하라 2019: 서울대생협 전면파업 회고
응답하라 2019 :
서울대생협 전면파업 회고
비서공이 집회 현장에 결합할 때 올리는 검푸른 비서공 깃발에는 좁고 길쭉한 띠 형태의 보조 깃발이 따라다닙니다.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NEVER FORGET 2019 2021”이라고 쓰여 있는 이 보조 깃발의 의미는 당연히 “2019년과 2021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1] 이 두 해는 각각 제2공학관 청소노동자 사망사건과 기숙사 청소노동자 사망사건이 일어났던 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학생을 비롯한 대학 구성원들의 식사와 복지를 담당하는 서울대학교 생활협동조합(이하 서울대생협) 노동자들이 전면파업을 선언하고 투쟁했던 두 해이기도 합니다. 이 보조깃발은 사망사건 뿐 아니라 이 두 해에 교정에서 일어난 파업투쟁 역시 잊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잊지 말고 이어가야 할 이 두 해의 기억들 중 사망사건에 관해서는 다른 필진의 글에서 충분히 다루고 있으므로,[2] 이 글에서는 서울대생협 설립 이래 30년 만의 파업투쟁이었던 2019년 파업에 관하여 지극히 사적인 회고의 형식으로 풀어 보겠습니다.
074괜히 집회에 나가던 사람
한때 저는 그야말로 ‘괜히’ 집회·시위에 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 때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우리 세대 학번에는 자생적 정치 고관심층이 꽤 많았고, 그 중에서도 특정한 정치단체나 조직에 소속되지 않은 채 자기 나름 집회·시위에 나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집회가 있는지 그런 정보는 SNS를 비롯한 채널을 통해 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요새 시쳇말로는 ‘말벌동지’라는 말이 있던데, 그때 그런 말은 없었지만 그 비슷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떠한 유의미한 기여로 될 수 없는 자기만족적인 움직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말벌동지’들의 움직임이 특정한 현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조합 조합원들과 연결됨으로써 구체성을 얻고 세상에 대한 힘찬 날갯짓으로 되는 것과 비교하면, 일시적으로 만들어졌다가 흩어지는 집회에 괜히 나가는 것만으로 정치적 관심을 실천한다고 생각하고 함부로 정치적 자의식을 가졌(다고 착각했)던 과거는 부끄러울 따름입니다.[3]
| 2014년 12월 31일 강서구청. 이런 집회 현장들에 소속도 목표도, 뚜렷한 것이라곤 그 무엇도 없이 ‘괜히’ 나가곤 했다는 것이다. (촬영: 이일휘) | ![]() |
서울대생협 전면파업 소식을 알게 된 2019년 9월 어느 날의 저는 여전히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서울대학교 캠퍼스 안에서의 사안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고 학교 밖에서만 돌아다녔다는 점도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 즈음 저는 냉소주의자가 되어서――정확히 언제부터 그랬는지 이제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캠퍼스 안에서의 활동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점점 심해져서 학생과 노동자의 연대보다 양자를 분리해서 바라보는 생각, 취업공장으로서의 수도권 4년제 대학을 졸업할 학생들의 미래는 기껏해야 노동자들을 억075압하는 중간관리자에 그칠 것이며 특히 기득권을 재생산하는 공간으로서의 서울대학교는 더욱 그러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일정부분 사실입니다만, 당시의 저는 학생기득권을 건설적으로 지양하는 것도 아니었고, 다만 학업부진을 비롯한 여러 이유로 인해 방황하면서 자기파괴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에 불과했습니다.
잡설이 길었습니다. 아무튼 당시에 언론을 통해 알려진 서울대생협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샤워실을 따로 만들어 주지 않고 조리실 한켠에 샤워커튼을 설치해서 샤워하도록 한다는 것이 많은 시민들의 공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노동쟁의가 있을 때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가 스펙터클로 소비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윤리적으로 마땅한 것이지만, 내막을 모르던 사람들이 그 구체적인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충격을 받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기도 합니다. 내 생활과 가장 가까운 곳, 그것도 내 생존에 직결되는 식생활에 가장 밀접한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처우가 이러한데 지금껏 밖에서 자기만족적인 집회 결합을 하고 돌아다녔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처음 며칠 동안 관련 뉴스를 주변에 퍼뜨렸습니다. 하지만 곧 이 정도로 내가 이 사안을 위해 뭘 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데 생각이 076미쳤습니다. 그래서 파업한 생협 노동자들이 농성장을 차린 대학본부 행정관 필로티를 쭈뼛쭈뼛 찾아갔습니다. 그것이 2019년 9월 23일, 파업 5일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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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9월 23일, 파업으로 폐쇄된 학생회관 식당. (촬영: 이일휘) |
언론에는 학생들이 파업을 지지한다고 보도되었습니다. 적어도 같은 해 2월 기전노동자들의 소위 ‘난방파업’ 때와 같이 노동자들의 파업이 학생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대립하고 적대하는 분위기는 확실히 아니었습니다. 농성장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은 데는 그런 언론 보도를 보고 용기를 낸 덕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가 보니 농성장을 직접 방문하는 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때론 저 혼자 와 있는 날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 학생들이 (같은 시기에 열리고 있던) 가을축제에 다 갔는가 싶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대뜸 찾아가기란 당연히 어색하고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077진정한 ‘결합’은 결합하는 이의 시야를 넓힌다
노조원들은 매일 아침에는 서울대생협 사측인 생협사무처가 위치한 101동 아시아연구소 앞에서, 11시경부터는 행정관 필로티 농성장에서 선전전을 했습니다. 저는 당시에 점심시간 전후로 행정관 바로 옆에 있는 인문대학에서 교양강의를 들었기 때문에 그 사이 시간을 이용해 매일 필로티를 찾아갔습니다. 파업 6일차인 9월 24일에는 농성장에 오래 있다가 오후 강의에 지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일 선전전에서 노조원들께서 토로하는 구체적인 고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뜨겁고 습한 조리실 환경 때문에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는데 야채가 마른다는 이유로 조리실에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고 이온음료를 제공한다는 이야기, 명절 상여금을 제대로 주지 않고 김 선물로 때우는 078행태에 ‘김(스팀)’이 난다는 이야기, 서울대학교의 대표적인 학생복지 정책인 ‘천원의 학식(천식)’이 터무니없는 저가로 식사를 판매하면서 그 적자를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메꾼다는 이야기, 고강도 노동에 몸이 축나 스테로이드 주사(소위 ‘뼈주사’)로 관절염을 대증치료하며 일한다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을 달리 어디서 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개중에는 샤워실 문제나 뼈주사 문제처럼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들도 있었습니다만, 다른 구호들의 구체적인 맥락은 그 현장에 와서 당사자들의 목소리로 들어야지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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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9월 26일의 행정관 필로티 농성장. 기둥과 파사드 유리창을 빙 둘러치도록 구호를 붙여 놓았다. 배경으로 총장잔디에 세워진 가을 축제 천막들이 보인다. (촬영: 이일휘) |
대학 생협이 어떤 이유로 만들어지고 어떻게 운영되는지 그 상세는 학교마다 상이할 것입니다. 다만 거칠게 분류하자면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사정이 대별된다 할 수 있습니다. 사립대에서는 학생들을 비롯한 학내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협동조합 조직화의 형태로 생협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이런 곳에서는 사학재단이 생협을 내쫓고 수익성이 높은 외부업체를 입점시키려 하면 학생들이 이를 막으려고 투쟁하기도 했습니다.[4] 반면에 국공립대에서는 주로 학교가 영리사업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식당·매점과 같은 영리사업부문을 학교본부가 별도 법인으로 분리시키는, 즉 말하자면 즉 ‘위로부터의’ 형태로 생협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국공립대학 생협은 이름만 협동조합이지 협동조합 민주주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대학본부로부터 독립성을 갖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대생협 이사장은 서울대학교 부총장이 당연직으로 겸직합니다. 재정적으로 대학본부에 종속되어 있으면서 노무책임만 떠맡는 생협법인은 노동자들을 저임금 고강도로 착취하기 마련이고, 생협 079노동자들은 고용안정을 제외하면 사실상 제조업 부문의 사내하청이나 다름없는 불안정노동에 시달립니다. 서울대뿐 아니라 경북대·부산대·전남대 등 많은 국공립대 생협이 위태로운 경영과 노동자 혹사를 현재진행형으로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대학본부가 생협을 직영화하고 생협 노동자들의 처우를 대학의 예산으로 책임지지 않으면 생협의 재정적자와 노동자 착취는 구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2019년 서울대생협 파업의 주된 요구사항 중 하나였던 호봉제 개선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는 것입니다. 초봉이 최저임금에 미달하고 정년까지 일해도 저임금에 시달리는 115단계(!) 호봉구조를 유지해온 이유는 생협 경영의 ‘어려움’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해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나서도 천식을 그전같이 아무 생각 없이 먹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0803일 연속으로 농성장에 출근도장을 찍자 노조원들께서도 제가 눈에 익으셨는지, 파업 7일차 9월 25일부터 저를 알아보시고 반겨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이 날 해방터[5]에서 노조원들께서 학생들에게 파업의 목적과 정당성을 알리고 투쟁기금을 모으기 위해 부침개를 부쳐 파는 장터가 열렸습니다. 한 장에 3000원, 두 장에 5000원이었는데, 제게는 돈을 받지 않고 거저 주셨습니다. 어느 날은 과자와 비타민음료수를 나눠받기도 했습니다. 그저 찾아오는 것밖에 한 것도 없는 제게 그렇게 감사해 주시니 오히려 제가 너무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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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9월 25일 해방터. 노조원들이 천막 장터를 열고 전을 부쳐 팔고 있다. (촬영: 이일휘) |
일할 자유와 일터의 평화를 말하는 자들
파업 8일차 9월 26일, 전국대학노조 국립대본부 본부장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본부장과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이창수 부지부장께서 파업 노동자들의 요구를 사측에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사측은 “민주노총이 등뒤에서 선동했다”며 비협조적인 자세로 일관했고, 협상은 결렬되었습니다. 필로티 농성장에 돌아온 본부장께 이 소식을 전해들은 노조원들 사이에 한숨이 번졌습니다. 본부장은 10월 10일에 국정감사가 있으니 그때까지 2주일은 더 해야 할 것 같다며[6] 계속 부침개를 팔아가며 버티자고, 지금까지 제대로 있지도 않던 휴게시간 이참에 많이 누리자고 짐짓 밝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가벼운 농담에 노조원들이 웃었지만, 걱정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노조법 44조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파업 기간에는 임금이 나오지 않습니다. 파업이 길어질수록 081노동자들의 생계에 타격도 커지고, 견디지 못하고 이탈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며, 이에 따라 투쟁의 동력도 떨어져가기 마련입니다.
본부장이 돌아가신 뒤, 노조원들은 행정관에서 자하연과 로스쿨을 지나 생협사무처가 있는 101동 건물을 향해 비정규직철폐연대가를 부르며 행진했습니다. 오후 4시경이었습니다. “문여시오!”, “우리가 왔소!”, “우리를 보시오!”, “안 나오면 부수것슈!” 건물 입구 앞에 노조원들이 연좌해서 앰프로 민중가요를 틀고 있자 안에서 누가 나와서 6시에 10년만의 큰 행사(아시아연구소 10주년 심포지움)가 예정되어 있다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우린 30년만에 파업했어요!”, “10년만의 행사라는데 우리가 빠질 수가 없잖아요?”, “아직도 우리가 안 보이는 겁니다!”, “10년만의 행사가 중요합니까, 30년만의 파업이 중요합니까!” 082하늘색 조끼에 검은 사파리모를 쓴 100명 가까운 노조원들이 한입으로 “30년만의 파업!”이라고 외쳤습니다. “우리는 악, 악만 남았습니다. 악!” 이후 노조원들은 정말 6시까지 있을지 토론하신 뒤, 5시경 건물 6층의 생협사무처를 향해 “오늘은 우리가 바빠서 간다! 못 놀아줘서 미안하다!”라고 외치고 해산했습니다. 사정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유쾌한 에피소드처럼 읽힐지도 모르겠지만――그때 당장은 실제로 유쾌한 분위기이긴 했습니다――파업이 장기화될 수도 있다는 기미가 보이자 노조원들은 정말로 악에 받치고 피가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불안과 걱정을 유쾌하게 떨쳐내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을지 그 마음을 짐작해 볼 따름입니다. 그리고 노조원들의 불난 마음에 기름을 끼얹고 부채질을 한 것이 생협 사측의 대체인력 투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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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9월 26일 오후 4시 30분경 아시아연구소 앞에서. 진입이 가로막히자 5시까지 항의집회를 이어갔다. (촬영: 이일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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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9일차인 9월 27일, 파업 노조원들이 대체인력이 투입된 느티나무카페들에 항의방문을 했습니다. 저도 피켓 한 개를 나눠 받아 음대 54동의 느티나무카페로 따라갔습니다.[7] 생협 사측은 농생대 전망대(75-1동)의 제3학생식당에는 2년 미만 기간제계약직 노동자들을, 그리고 느티나무카페들에는 영양사들과 매점 판매직 노동자들을 대체인력으로 투입했습니다. 대체인력 투입은 파업 무력화를 목적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같은 공간에서 일하던 동료들을 대체인력으로 내세워 그들과 파업 노동자들과의 사이에 갈등·알력·앙금을 남김으로써 ‘노노갈등’을 유발하고 사측이 그 갈등을 이용하게끔 되는 아주 비열한 수법이기도 합니다. 같은 날, 농생대 제3학생식당에도 항의방문이 있어서 따라갔습니다. 필로티 농성장에서 자연대를 거쳐 농생대에 이른 노조원들이 3식당 문 앞에서 소리높여 외쳤습니다. “기간제 동료들아, 너희들은 083이해한다!”, “반드시 승리해서 함께 먹고 함께 살자!” 노조원들 가운데 눈물을 훔치는 분도 있었습니다. 사측에 밉보이면 재계약이 거부될 수도 있는 기간제 노동자들은 파업에 참여할 수도, 대체인력으로 투입되라는 지시를 거부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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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9월 27일, 파업무력화 목적 대체인력 투입에 항의하기 위해 행정관 필로티 농성장에서 농생대 제3식당으로 향하는 노조원들. (촬영: 이일휘) |
파업 11일차 9월 29일, 서울대학교노동조합(서울대노조)[9]에서 9월 27일의 대체인력 투입 항의방문을 문제삼는 성명을 내놓았습니다. 084파업에 동참하지 않고 대체인력으로 투입된 일부 노동자들이 민주노총 대학노조 서울대지부를 탈퇴하고 서울대노조에 가입했는데, 파업한 대학노조 조합원들의 카페·식당 항의방문 및 피켓팅이 서울대노조 조합원들의 “자유로운 근로의사를 침해하는 행태”라며 “위법한 행위”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생협 이사장, 즉 서울대 부총장에게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이 황당한 성명을 접한 파업 노조원들은 당연히 분개하였고, 저도 머리털이 곤두서는 듯하였습니다. 정규직 법인직원 위주의 노동조합인 서울대노조는 2년 전 2017년 비학생조교 파업 때도 “학교와 비학생조교 간 협상 결과가 정규직 조합원들의 사기 저하나 상대적인 박탈감을 불러올 경우 대응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같은 해 시흥캠 투쟁 때 행정관을 점거한 학생들에게 소화전 물대포를 쏘며 끌어낸 것도 그들이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우리의 일터가 학생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아야 하기에 “단결된 힘을 보여주었으며 학교의 주인임을 재확인했다”고 했습니다. ‘일터의 주인은 노동자’라는 거룩한 금언을 자신들의 구사대 행태를 분식하는 데 사용한 것입니다. “단호한 대응”을 해가면서까지 지켜야 하는 “일터”의 평화란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 “단호한 대응”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요? 다시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푸른 옷의 물결이 계단을 메우던 밤
파업 12일차 9월 30일, 오후 3시 반 무렵부터 재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노조원들은 행정관 필로티에서 농성집회를 하다 101동 앞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협상에 임하는 노조 간부들을 응원하고 생협사무처를 압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노조원들의 구호, 민중가요, 풍물북 소리, 호루라기 소리가 잿빛 하늘을 찢었습니다. 파업가, 임을 위한 행진곡, 철의 노동자, 대학노동자의 노래, 동지가, …… 어느새 해가 완전히 085져서 주변이 깜깜해졌습니다. 7시 조금 덜 되었을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어둑해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어느 분이 “생협사무처로 쳐들어갑시다” 하자 노조원들이 일제히 그러자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어떤 분들은 엘리베이터로, 어떤 분들은 계단으로, 생협사무처가 있는 101동 6층으로 몰려갔습니다. 계단에서 무반주로 동지가를 흥얼거리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노조원들은 사무처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게 6층 복도를 빽빽하게 채우고 구호를 연호했습니다. “주방 안에 샤워커튼, 불안해서 못 씻겠다!”, “많은 거 안 바란다, 함께 먹고 함께 살자!”, “이렇게는 못 살겠다, 최저임금 웬 말이냐!”, “휴게시간 하나 없는 카페업무 고달프다!”, “열악한 근무환경, 기계도 망가진다!”, “우리도 사람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웃으며 출근한 길, 골병들어 퇴사한다!”, “손님만 왕이냐, 직원도 살펴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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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9월 30일 오후 6시 45분경, 성난 파도가 모래성을 덮치듯이 아시아연구소 1층부터 생협사무처가 있는 6층까지 끊임없이 이어진 하늘색 조끼의 행렬(좌우 각각 3층/5층 사진). 아트리움에 걸려 있는 ‘세계를 잇다, 미래를 빚다’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새삼스럽다. (촬영: 이일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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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9월 30일 오후 6시 50분경 모습. 점거농성은 오후 9시경 잠정합의 도출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중간에 학사운영직 노조원께서 방문해 2년 전 비학생조교 파업의 기억을 언급하며 응원의 말씀을 남기고 가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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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연구소 6층 복도를 빼곡히 채운 생협 노조원들이 힘차게 팔뚝질하며 ‘파업가’를 부르고 있다. 일어서서 선창하는 분이 이창수 부지부장. “하나되어 우리 맞선다, 승리의 그날까지!” (촬영: 이일휘) |
101동은 지하 2층, 지상 6층인데 1층부터 6층까지 가운데가 아트리움으로 뚫려 있는 구조의 건물입니다. 백 명 가까운 사람들이 터뜨리는 목소리가 지상 전층에 쩌렁쩌렁 울렸을 것입니다. 6층 발코니에서 바깥을 내다보자 바로 앞의 규장각부터 멀리 윗공대까지 관악087캠퍼스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드문드문 쉬러 나오시는 노조원들과 함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야경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어느 분이 학교에 이런 뷰가 있는 줄 몰랐다고 감탄을 하셨습니다. 저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고지대에 올라와 학교의 야경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각자 배치된 식당·카페에서 근무하시고 저녁에 퇴근하시는 노동자들과 달리 학생인 저는 학교 안 여기저기를 다니고 학교에서 밤도 자주 새어 보았으니까요. 하지만 파업한 노동조합원들과 일주일을 함께 보내고 이분들과 함께 내려다보는 야경은, 그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관악캠퍼스가 달라진 것일까요, 제가 관악캠퍼스를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일까요. 혹은 그 둘이 사실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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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9월 30일 오후 7시, 아시아연구소 6층 발코니에서 남서쪽으로 내다본 야경. 가까이는 103동 규장각, 멀리 순환도로와 500동 신자연대, 그리고 저 멀리 301동 윗공대까지 보인다. (촬영: 이일휘) |
9시까지 이어진 농성투쟁 끝에 노조와 사무처는 극적으로 잠정합의에 도달했습니다. 기본급 3% 인상, 기본급의 30% 수준의 명절휴가비 신설, 내후년까지 호봉구조 개선, 식당 브레이크타임 도입과 샤워시설 및 휴게시설 개선을 약속받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아쉬운 점도 많은 합의안이었습니다. 명절휴가비가 신설되었지만 정규직에 비해 기본급이 낮아서 절대적인 양은 많지 않았고, 호봉구조 개선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 2021년에 다시 파업을 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휴게실 개선의 경우 전망대 3식당은 상당히 개선되었지만 학생회관 식당과 자하연 식당은 건물 자체의 노후함과 협소함으로 인해 2025년 현재까지도 개선이 미진합니다. 그러나 101동 6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그 길은 작으나마 승리를 얻었다는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붉은 해방띠를 동여매고 아트리움 가장자리 계단을 따라 쏟아져 내려오는 하늘색 조끼의 물결은 기쁨의 폭포였습니다.
이튿날 10월 1일 오후 12시 30분 행정관 앞에서 비서공과 대학노조 서울대지부의 공동주최로 파업 승리 보고대회 ‘당신의 노동은 우리의 일상입니다’가 열렸습니다. 이 보고대회에 관하여서는 기조발언 및 현장발언들이 모두 비서공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으니[10] 이 자리에서 굳이 되풀이하지는 않겠습니다. 파업이 끝나고 얼마 뒤 느티나무카페 자하연점에서 키오스크 앞에 줄을 섰습니다. 그런데 카운터 뒤의 노동자들이 저를 알아보시곤 공짜로 커피를 한 잔 주겠노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학생들에게 조금 눈치가 보였지만(그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데 제가 괜히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받아 마신 것이 아마 아이스 카라멜 마키아토였을 것입니다.
089도시락 한 끼의 무게, 들린다면 응답하라
이 글을 읽으면서 미묘하게 비서공에 대한 언급이 적거나 비서공이 타자화되어 있는 것 같다고 느끼셨다면, 옳게 읽으셨습니다. 저는 2019년 당시에 비서공 집행부가 아니었습니다. 2019년 서울대생협 파업을 통해서 비서공을 접하고 비로소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저는 비서공 조직에 대한 애착이 큽니다. 비서공을 만나게 되고 비서공 활동을 통해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남으로써, 그 이전의 자신의 모든 것을 부끄럽게 여길 정도로 그전에 비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제 삶의 의미와 목적은 거의 비서공 활동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비서공 학생 동지들과 서울대학교 민주노조 조합원 여러분 덕분에 평생 다 갚을 수 없는 것을 얻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비서공을 접한 계기가 된 2019년 서울대생협 파업에 대한 기억도 각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계를 한참 뒤로 돌려서 올해 2025년 2월 14일,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비서공에선 작년 10월부터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의 모든 현장직 노동자(청소·경비·기전·생협)의 휴게실을 직렬을 막론하고 모두 방문해서 환경을 조사하자는 ‘휴게실 전수조사’ 사업을 기획해 왔습니다. 그것이 연말의 갑작스러운 변고로 인해 한참 동안 미루어졌다가 2월부터 실제 시동에 들어갔던 것인데요. 각설하고 2월 14일에 있었던 일이란 이런 것입니다. 학생회관 1층 매점에서 나오다가, 안쪽 학생식당으로 들어가는 노동자 한 분과 마주쳤습니다. 2019년 파업 때 열정적으로 참여하셨고 승리 보고대회 때 현장발언도 하신 노조원이셨습니다. 일단 반갑게 알아봐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뵌 김에 요즘 비서공에서 이러저러한 사업을 하는데 혹시 언제 방문을 하여도 괜찮겠는지 여쭈었습니다. 얼마든지 괜찮다고 흔쾌히 승낙해 주셔서 더욱 감사했습니다.
090연구사업을 할 때 큰 장벽이 되는 것 중 하나가 학생들에 대한 노동자들의 경계심입니다. 사측에게 어떤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하셔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그 밖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모두가 호의적인 것은 아니고 방어적이거나 드물게는 공격적인 태도로 학생들을 대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생협에서는 그런 경우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최소한의 설명만 듣고도 신뢰해 주시고 환영해 주셨습니다. 이것도 모두 생협 식당 노동자들이 대학노조 서울대지부로 단결해 있고, 또한 2019년과 2021년의 두 차례 파업투쟁을 통해 그 단결을 벼려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생협 노동자들과 비서공이 함께 만들어 온 역사가 서로를 신뢰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서로를 알게 된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모든 연대는 서로를 만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만남 가운데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알게 되고, 앎으로써 스스로와 서로를 변화시키게 됩니다. 달리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을 직접 만나야만 합니다. 그러면서 비로소 나 자신도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세계를 진정으로 ‘변혁’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학 노학연대 운동을 해오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 중 하나가 바로 그것입니다.
다시 6년 전으로 돌아가서 파업 8일차, 2019년 9월 26일이었습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대학노조 국공립대본부 본부장께서 방문한 날이었는데, 그 방문 직전 점심께 노조원들께서 필로티 농성장에서 도시락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농성장 한 켠에 있는데 노조원들께서 저를 불러서 도시락을 나눠 주셨습니다. 생협이 파업해서 직영식당들이 모두 폐쇄 상태이니, 학생들이 다들 식사를 어디서 했겠습니까? 직영식당보다 비싼 외부입점업체에서 먹거나, 혹은 컵라면으로 때우거나 했습니다. 파업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습니다. 노동자가 일손을 놓음으로써 소비자에게 불편을 끼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091음식 하는 일손을 놓은 분들께서 그 일손으로 만들어 오신 도시락을 저는 나눔받았던 것입니다. 그 기억이 정말 특별했고 감사한 마음으로 남았습니다. 대학원까지 오면서 학교를 참 오래 다녔고 많은 훌륭한 교수님들께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날 2019년 9월 26일 목요일에 서울대생협 파업 노동자들께 받은 그 도시락만큼 귀한 가르침은 흔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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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9월 26일 오후 1시 30분, 행정관 필로티 농성장에서 노조원들께 나눔 받은 점심 도시락. (촬영: 이일휘) |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을 식구(食口)라고 합니다. 저는 그때 비로소 이 교정에 소속감을 갖게 되었고, 그 도시락 한 끼를 돌려드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비서공 사업과 활동에 임했습니다. 제가 느낀 것과 같은 감각으로 후배들도 이 교정과 조직에 소속감을 느끼기를 바랐습니다. 이 감각을 공유하는 ‘동지’들이 늘어나기를 바랐습니다. 나름092대로 노력은 해왔습니다만, 지금 와서 돌아봤을 때 그것을 제대로 잘 갚았는지, 후배 동지들이 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자신만의 계기나 의미를 찾도록 도움은 잘 드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얻어낸 개선은 너무나 미약해 보이는 반면에 대학본부는 너무 완고하여서 좌절감을 느낄 때도 없지 않습니다. 애초에 제가 저 스스로를 채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서울대생협 파업에 참여하셨던 노조원 여러분께 감사한 그 마음을 제가 앞으로도 평생 잊지 않고 간직하겠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약속드립니다. 보잘것없는 제가 여러분 덕분에 그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 또는 적어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낯선 사람들로 가득하여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거리에서 입으로만 떠들던 “인간이 인간답게, 사회가 평등하게, 노동이 아름답게, 민중이 주인되게”를, 이제는 ‘동지’들의 곁에서 그 의미를 알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교 밖에 연대를 나갈 때에도 그 현장의 사안이 서울대학교의 현안과, 또 나아가서 나 자신과 어떻게 결부되기에 그 현장에 결합하는 것인지 인식하고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일 누가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가장 먼저 2019년 9월 하순을 가리켜 보일 것입니다. 끊임없이 갱신되는 현재들을 흘려보낼 때마다 그때의 벅찬 감격을 붙들고, 언제라도 부르면 응답해 줄 2019년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서울대학교에서의 차별적 고용구조와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즉 진정한 의미에서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서울대학교와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사회 전반의 비정규 불안정노동을 철폐하기 위해 언제든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에 힘쓰겠습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2025년 여름 관악산과 도림천이 만나는 자락에서,
비서공 집행위원 일휘 拜上
부록: 2019년 서울대생협 전면파업 당시 구호들
- 웃으면서 출근한 길 골병들어 퇴사한다
- 고된 노동 반복되어 뼈주사로 연명한다
- 멀쩡하던 내 손가락 생협와서 망가졌다
- 우리도 사람이다 사람답게 살고싶다
- 이렇게는 못살겠다 최저임금 웬말이냐
- 휴게시설 하나 없는 노동자가 여기있다
- 휴게시간 하나 없는 카페근무 고달프다
- 주방 안에 샤워커튼 불안해서 못 씻겠다
- 에어컨을 틀어놔도 속옷까지 땀이 찬다
- 열악한 근무환경 기계도 망가진다
- 천원짜리 밥상에 엄마는 죽어난다
- 손님만 왕이냐 직원도 살펴줘라
- 피땀으로 지킨 생협 노동자도 살려줘라
- 적자경영 사측책임 흑자경영 피땀노동
- 특근 줄여 흑자 말고 경영 잘해 흑자 내라
- 누구 하나 죽어야지 봐줄 거냐
- 많은 거 안 바란다 함께 먹고 함께 살자
- 30년 부당노동행위 더 이상은 못참는다
- 노동자가 원한다 에어컨 좀 틀어줘라
- 야채보다 못한 노동 인간 대우 받고 싶다
- 일하다 쓰러져도 고된 노동 피할 길 없다
- 여름에는 찜질방 겨울에는 시베리아 돈 벌어서 어디 쓰냐
- 추석 명절 김 선물 머리에서 김 난다
- 구걸이 아니라 정당한 노동 대가다
- 사무실은 각성하라 노동자가 울고 있다
- 생협 운영 잘못했다 무릎 꿇고 사죄하라
- 업무 파악도 안 하면서 갑질 언행 웬 말이냐
- 우리는 승리한다 어리석은 생각 말고 현명하게 대처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