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1호) 트럼프 시대 대학원생으로 살아남기: 존스홉킨스대학교 대학원생 노동조합 이야기
트럼프 시대 대학원생으로 살아남기 :
존스홉킨스대학교 대학원생 노동조합 이야기
2024년 3월,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의 대학원생 노동조합이 대학 측과 노사 단체 협약을 이끌어내는 데에 성공했다.[1] 협약에는 2024년 7월 1일부터 대학원생들의 최저 연봉 상승과 함께, 자녀 및 배우자에 대한 의료보험, 12주의 유급 출산휴가, 국제 학생의 비자 비용 보조 등의 항목이 포함되었다. 이 지역의 1인 가구 적정 생활비를 밑돈다고 평가되었던 37,000달러 수준의 대학원생 연봉은 계약 이후 47,000달러 수준으로 유의미하게 인상되었다. 노동조합 측에서는 99.5퍼센트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이 계약을 비준한 뒤 “회원들이 집세 걱정 없이 성과를 낼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논평을 발표했다.[2] 존스050홉킨스 노조가 속해 있는 전미전기노조 역시 이 계약이 “실질적이고 역사적인 개선을 명시”하고 있으며, “대학이 대학원생들의 헌신 없이는 운영될 수 없는 상태에서, 대학원생들의 협상력이 인정된 사례”라고 보도했다.[3]
미국 대학원생 노동조합의 소식에 대해 처음 접한 건 내가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처음으로 해외 학회에서 발표하게 된 2022년 가을이었다. (나는 이때 태어나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아보았다) 유학을 하고 있던 한 한국인 연구자와 만나 학회장 근처에서 밥을 먹던 중, 문득 최근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위해 대학원생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나는 낯선 곳에서 발표 준비를 하느라 여러모로 정신이 없었던 것 같고, 어떤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한국의 대학원생 및 노동자의 입장에서 공감하면서, 정말 축하할 일이고 우리도 논의가 어서 진전되었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렸던 한 미국 대학 노동조합의 존재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 내 생활의 일부분으로 들어왔다. 한동안 잊고 있던 존스홉킨스 노동조합의 소식을 2024년 초에 다시 접할 수 있었다. 이맘때쯤 나는 운이 좋게도 앞서 지원한 존스홉킨스 과학기술사학과 방문 연구원 자리에 선발되었다는 메일을 받게 되었다. 당시 내가 정말로 “운이 좋다”라고 느낀 것은, 물론 1년간 이 학문 분야에서 우수한 기관 중 하나에서 학과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적어도 앞으로 일 년 동안은 생계 걱정 없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겠다는 이유가 컸다. 학문적으로 자신감이 없었고, 051영어에는 더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에 때때로 걱정에 잠기기도 했지만, 한국의 대학원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데 겪었던 어려움에 비하면 그런 장애물들은 부딪혀볼 만한 축에 속했다.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영어와 학문에 대해 그때보다 약간 덜 낙관적인 사람이 되었지만, 저 때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곧바로 학과 측에 이 기회를 수락할 의사를 밝혔고, 더불어 역시 박사과정 대학원생인 배우자가 그곳에서 함께 생계를 유지하고 연구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 가능할지를 문의했다. 돌아온 답변은 긍정적이었다. 학과에서는 배우자 역시 학과 프로그램이나 세미나에 참여할 수 있으며 학교 시설 대부분을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또 내 급료가 대학원생 봉급 체계에 묶여 있기 때문에 대학원생 노동조합이 현재 진행 중인 협상에 성공한다면 공지된 것보다 더 높은 월급을 받을 052수 있을 것이므로, 이것이 파트너와 함께 생활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답장을 주었다. 미국에 도착한 이후 나는 노동조합과 학교 간 노사 단체 협약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되었다. 이 계약이 내게 1년 동안 가진 의미는, 대학원생 연구자들이 “집세 걱정 없이 성과를 낼 수 있게” 한다는 논평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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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7월 19일, 민주일반노조 서울대지회 사무실에 공기청정기를 전달하는 교련. 미국행을 준비하면서 쓸만한 세간살이를 주변에 나누고 갔다. 선풍기는 비서공 공용물품이 되었고 청소기는 문집 간사가 챙겼다. (촬영: 이일휘) |
존스홉킨스대학 노동조합의 성공은 결코 갑자기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노동조합 결성이 논의된 것은 2014년 크리거 인문 및 과학대학이 수립한 소위 “전략계획strategic plan”의 공표 이후였다.[4] 이 계획에는 대학의 학술적 우수성을 증진하기 위해서 젊은 교수들의 채용을 대폭 늘리는 대신 장학금을 수여받는 대학원생들의 수를 감축하는 내용이 담겼다. 소속 대학원생들은 이러한 조치가 자신들의 노동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에 더해, 이 계획의 수립 과정에서 대학원생들에게 전혀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좌절했다. 교수진과 대학원생들이 연구와 교육을 함께 진행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대학원생들은 학교의 지원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노동조합 결성의 필요성을 느끼고 비공식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다. 법적, 정치적인 흐름 역시 노동조합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오바마 행정부의 막바지였던 2016년, 연방정부 산하 노동관계위원회는 컬럼비아대학교의 노동조합을 승인하면서 사립대학 대학원생도 노동자라는 판결을 내렸다.[5] 연방정부 차원에서 법적 근거가 마련053됨에 따라 존스홉킨스 대학원생들도 의료보험 문제나 인문학 센터 폐지 반대 등 특정 이슈를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코로나19 봉쇄와 트럼프 임기가 마무리된 2022년, 노동조합 결성을 위한 구성원들의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노동조합이 결성된 이후, 약 9개월 간 40차례가 넘는 긴 협상 끝에 학교와의 단체협약 체결이라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 | 존스홉킨스대학 박사후연구원 노조(PRO) 전단지. 노조 설립에 성공했으니 교섭을 목표로 삼자며, 공개 집담회 일시를 알리는 내용이다. 다소 생뚱맞게 전미자동차노조(UAW) 소속이며 상징물로 부엉이를 사용한다는 점이 어쩐지 익숙하다. (촬영: 황교련) |
그렇다면 계약 이후 대학원생 노동조합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나는 운 좋게도 이런저런 인연으로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몇몇 대학원생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업무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고충 처리grievance”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존스홉킨스 대학원생 노동조합은 각 단과대학마다 대표간사lead steward를, 학과마다 간사steward를 두고 있다. 이들은 각 학과에서 발생하는 고충을 받아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고충의 예시로는 학생이 충분한 이유 없이 학과에서 추방되거나 급여 지급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는 일 등을 들 수 있다. 고충이 접수되면 간사 세 명과 해당 학생이 모여 해결 가능성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를 논의한다. 대응은 대체로 네 단계로 진행된다. 첫 번째 단계로 노동조합은 학과 내에서 공청회hearing를 열어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기를 권고한다. 이 단계에서 해결되지 않는 경우 두 번째 단계로 단과대학에 안건을 올리고, 학장, 부학장 등 보직교수들이 개입하여 중재를 시도한다. 세 번째 단계는 전체 대학교 단위에서 비슷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고, 여기서도 해결되지 않을 시 마지막 네 번째 단계인 공식적인 법적 소송을 준비한다. 물론 이러한 대응 지침은 모두 협약에 명시된 조약들을 근거로 한다.
054특히 한 대학원생이 들려준 경험은 노동조합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잘 보여준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한 학과에서는 학생들의 일반적인 장학금 지원 기간을 한 학기 늘려주겠다고 공지했다. 이는 전염병으로 인해 각종 연구소, 도서관, 아카이브 등이 폐쇄되자, 정상적인 연구와 논문 작성이 어려워진 대학원생들을 위해 내린 조치였고, 당시 다른 학과들도 많이들 비슷한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후에 한 학생이 이에 근거해 추가적인 학기장학금 지원을 문의하자, 학과는 약속에 “강제성이 없었다non-binding”고 주장하며 지급을 거부했다. 학과 간사와 노동조합은 학교 측이 약속한 장학금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 항의할 수 있다는 협약 조항을 근거로 고충 처리를 진행했다. 이 사례의 경우 첫 단계, 즉 학과 내 공청회를 통해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두 번째 단계인 단과대학 수준에서 부학장의 중재를 통해 해결되었다. 다른 학과들의 비슷한 지급 사례들과의 비교가 학생 측의 손을 들어주는 좋은 근거가 되었다. 끝내 학과나 학교 측은 이러한 불공정에 대해 사과나 인정의 태도를 보여주지는 않았055지만, 대학원생 노동조합의 협약과 조직 덕분에 이 대학원생은 연구와 삶을 지속하는 데 있어 큰 좌절을 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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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스홉킨스대학의 ‘the Beach’ 잔디밭. 서울대로 치자면 총장잔디와 아크로폴리스를 겸하는 공간인 듯하다. (촬영: 황교련) |
노동조합은 대학 공동체를 외부의 정치적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노력에도 적극적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반지성 정책은 최근 학생과 연구자들의 활동에 가장 큰 제약 요인 중 하나였다. 컬럼비아대학교 사례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미국에서 연방정부의 성향은 교육 정책이나 판결을 통해 대학원생들의 권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 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금전적 지원을 고삐로 삼아 대학교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정책을 펴고 있으며,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적대적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한 대학원생은 현재와 같은 비우호적인 정부 하에서는 노동조합의 고충 처리가 되도록이면 4단계, 즉 법적 소송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2024년 초부터 본격화된 친팔레스타인 시위 이후 일련의 정부 개입은 존스홉킨스대학교 공동체의 위기를 야기했다. 2024년 봄, 존스홉킨스대학의 056일부 구성원들이 “해변the Beach”이라고 불리는 캠퍼스 내 공터에 “팔레스타인 연대 천막촌Palestine solidarity encampment”을 설치하여 대학의 국방산업 및 이스라엘 관련 기업에의 투자를 전면 철회할 것을 주장하는 시위를 진행한 일이 있었다. 이들은 약 2주간의 시위 끝에, 투자에 대한 재검토를 약속한 학교와의 합의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산했다. 그러나 이듬해 1월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전국 대학의 친팔레스타인 시위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유학생들의 비자를 취소하고 심지어 사복 집행관을 동원하여 체포, 추방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실제로 존스홉킨스대학에서도 15명 정도의 유학생들이 명확한 근거 없이 이민세관단속국(ICE)으로부터 비자 취소를 통보받았다. 노동조합은 즉각 대학이 학생과 노동자들에 대한 감시와 기록 수집을 중단하고 057대학 공동체를 보호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노동조합은 협약상의 교섭권을 근거로, 캠퍼스 경찰이 이민세관단속국 인력의 캠퍼스 출입을 저지할 것과 연방정부 집행관의 위치알림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대학 측에 요구할 수 있었다. 또한 “권리 알기Know Your Rights”라는 이름으로 유학생 대상 워크샵을 진행하고, 팸플릿을 배부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팸플릿에는 이름 외의 정보를 제공하지 말 것, 절대 집행관의 문서에 서명하지 말 것, 상황을 기록하고 노동조합 간사에게 연락할 것 등이 안내되어 있었다. 이는 노동조합의 노력이 대학원생의 권익뿐만 아니라 대학 내 다양한 구성원들의 안전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데에 기여할 가능성을 보여 준다.
| 존스홉킨스대학 대학원생노조(TRU)의 ‘권리 알기’ 홍보 전단지. 우하단의 로고를 보면 전기전파기계노조(UE) 소속임을 알 수 있다. ICE 요원에게 잡도리를 당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매뉴얼을 제시하고 있다. (촬영: 황교련) | ![]() |
![]() | Baltimore Eyes on ICE의 전단지. ICE 철폐, ‘불법’체류자 사면, 정의 구현, 사립교도소 철폐, 사생활 보호, 인종간 평등, 그리고 반이민 폭력에 책임 있는 자들의 형사처벌을 7대 요구로 내걸고 있다. (촬영: 황교련) |
상당수의 대학원생들은 노동조합이 결성되면 학생과 교수진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거나 그로 인해 자신들의 학업에 지장이 가지는 않을지에 대해 우려할 것이다. 나 스스로도 대학원생 특유(?)의 취약한 사회경제적 지위로 인해, 정치적으로 생각될 수 있는 활동이나 발언을 하는 것에 상당한 부담을 느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실증적인 058연구에서 드러난 바로는 대학원생의 노동조합 결성이 가져오는 부정적 영향은 크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럿거스대학교 연구팀이 2013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노동조합을 통해 대표되는 대학원생이 그렇지 못한 대학원생에 비해 개인적으로나 전문적으로나 더 성공적인 교수-학생 관계를 구축했다고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도교수가 자신을 높게 평가한다고 느끼는 비율과 학문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노동조합이 있는 대학원생에서 유의미하게 높았다. 물론, 평균 급여의 수준 역시 노동조합에 소속된 대학원생 집단에서 약 2,500달러나 높았다.[6] 노동조합이 지도교수와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대학원생과 교수 간 개인적인 갈등을 공식적인 조직과 협약을 통해 간접적으로 해결하게 됨으로써 불필요한 긴장감이 완화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7] 실제로 내가 만난 대학원생들 역시, 적절하고 체계적인 업무 분담으로 인해 노동조합 활동이 자신의 연구를 방해하는 경우는 없었다고 답했으며, 지도교수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경우도 전혀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존스홉킨스대학교 대학원생 노동조합의 이야기는 한국 대학원생들에게도 참고할 만한 모델을 제공한다. 물론 우리 대학교의 상황은 미국의 대학교들과 많은 점에서 크게 다르다. 특히 한국에서는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에 대한 논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소정의 조교 급여 정도를 제외하면 대학원생들의 급여나 장학금이 대학을 통해 직접 지급되기보다는 국가의 용역과제나 민간 재단을 통059해 외부적으로 충당되는 경우가 많다는 데에 있다. 또 이마저도 대부분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 필요한 급여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부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8] 이러한 경우 노동조합의 활동 범위나 협상 대상이 모호해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또 존스홉킨스대학교가 위치한 메릴랜드주는 미국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지역 중 하나로, 지역 사회나 주정부가 노동조합에 대체로 우호적이었다는 점도 한몫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미국의 대학교는 많은 면에서 닮아 있기도 하다. 두 나라의 대학교들은 모두 신자유주의 및 상업화의 영향으로 운영, 교육, 연구를 점차 외주화하거나 불안정한 고용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있으며, 앞의 몇몇 예시처럼 이윤이나 행정적 편의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들의 권리를 묵살하기도 한다. 존스홉킨스대학교 역시 유지보수 및 교통 부문에서 주로 지역의 저소득 계층을 고용하는 하청업체에 저임금 계약직으로 업무를 맡기고 있으며, 이에 따라 대학원생 노동조합을 포함한 학생들로부터 캠퍼스 및 지역 사회에 대한 신체적, 사회적, 경제적 복지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9] 노동조합은 이에 기인하는 다양한 고충을 공론060화하고 나아가 구체적인 요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좋은 통로가 될 수있다. 특히 학과별 간사를 두어 고충을 처리하는 방식이나 성문화된 협약의 강력함은 대학원생 노동조합이 개별 대학원생의 큰 희생 없이도 충분한 힘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낙관적 전망을 잃지 않게 해준다. 존스홉킨스의 노동조합처럼 우리 대학원생들도 초기에는 특정 이슈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노동조합을 발전시키면서, 점차 충분한 인원을 모으고 더 구체적인 협약에 대한 논의를 진척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각국의 대학교들이 비슷하게 겪고 있는 전지구적 변화는 국제적인 연대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대학원생들은 많은 부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연구와 함께 생계를 고민하고, 자신의 생활과 함께 동료의 생활을 고민하고, 학자로서의 책임과 함께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고민했다. 어쩌면 혼자 짊어지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일 수도 있지만, 이들 역시 공동체와 도움을 주고받으며 낙관주의를 유지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만난 미국의 대학원생들은 한결같이 한국 대학교와 노동조합이 처한 상황에 공감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기꺼이 돕겠다고 했다. 한 대학원생은 최근 서울대에서 일어난 마르크스경제학 강의 폐강 사건과 그에 대한 학생들의 대응에 큰 흥미를 보이기도 했다. 반쯤 외부자라는 내 신분도, 더듬거리는 영어조차도, 이들의 적극적이고 따뜻한 연대의 손길을 가로막지 못했다. 이들에게 말 그대로 “물심양면”으로 빚을 진 셈이다. 한국에 처음 대학원생 노동조합이 출범했을 때에도 몇몇 미국 대학교의 노동조합에서 지지 영상을 보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처럼 국경 밖 학생들과 연대하고, 공통의 문제에 대해 함께 논의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061것이다. 마지막으로, 훗날 우리의 경험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금 희망이 될 수 있길 바라면서, 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담이 더 나은 대학교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