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까치』 №03 §053 「영화와 전장의 현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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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전장의 현행화

박세웅

비서공 활동회원

서마학 구성원

영화와 정치경제 세미나

작년 여름부터 영화모임 하나를 진행해왔다. 모임에는 서마학(서울대학교 내 마르크스경제학 개설을 요구하는 학생들) 공부모임의 사람들과 비서공 회원들, 영화공동체 씨네꼼 회원들이 함께하고 있다. 본래 이 모임은 마르크스 독회에서 좀 더 많은 사람을 모으기 위하여 영화 상영회를 진행하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되었다. 영화 상영회를 준비하면서 처음 관심을 가졌던 영화들은 남미의 제3영화Tercer Cine[1]였다. 그 무렵에 한창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신식민지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접근과 더불어서 영화 이론, 개중에서도 혁명적인 것으로 보이는 몽타주 이론과 키노-아이Kino-Eye[2]에 대한 글들을 함께 읽으면서 상영회를 진행하고자 했고, 따라서 모임의 이름을 ‘영화와 정치경제 세미나’라고 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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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부터 올해 초까지 영화와 정치경제 세미나에서는 주로 일본 영화를 보았고, 올봄부터는 중국의 지하전영(地下電影)[3]과 벵골・헝가리 등지의 뉴웨이브 영화를 보았다. 몇 주 단위로 소주제를 잡아서 상영회를 진행하기에 전체적인 주제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영화와 사회사를 겹쳐서 읽는 것을 목표로 상영회를 구성하고 있다.

지난 7월 말에는 김미례 감독의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을 직접 감독님께 연락해서 구하는 방식으로 공개 상영회를 진행했으며, 영화모임을 좀 더 확장해서 진행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어 오는 가을부터는 영화운동에 대해서 살펴보고, 영화와 학생운동, 노동운동이 맺을 수 있는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준비 중이다.

상영의 문제: 영화는 전장을 어떻게 현행화하는가?

영화와 정치경제 세미나에서 다룬 주요한 주제 중 하나는 ‘영화 상영의 의미’에 대한 것이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시대의 영화를 다시 트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느 때에는 시의적절했던 영화들이, 결합되어 있던 시간에서 풀려나와서 상영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단순히 정보습득만을 위해서라면 영화를 보는 것보다는 책을 읽거나 사료를 뒤적이는 편이 훨씬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 즉 움직이는 이미지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접한다는 것은 나의 시간에 어떤 것을 종속시켜서 대상을 접촉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시간에 나의 인식이 종속되게 만든다는 점에서 차이를 가진다.

또한 영화는 새로운 매체로서 등장했고, 기술과 산업의 성과로서 등장했다는 점에서 특정한 기술의 측면, 형식의 국면을 과도하게 확장해서 예찬할 수 있는 성격을 지닌다. 영화의 역사는 이 새로운 매체가 055너무나도 선명한 자신의 물질적 생에 대한 기억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유물론적 경향을 지닌 채로만 작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영화의 역사가 단순히 사조 혹은 이념의 연속으로 작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보장하는 물질적인 요소들의 발전과 긴밀하게 호흡하면서만 이해될 수 있도록 만든다.

지가 베르토프의 1929년 영화 〈영화촬영기를 든 사나이〉 포스터(좌), 사람 눈과 카메라 조리개의 이중노출을 담은 마지막 장면(우).
줄거리도 대사도 없이 어떤 사람이 카메라를 메고 우크라이나 여기저기를 찍고 다니는 것이 전부인 영화다. 포스터의 인간-카메라 콜라주와 마지막 장면의 눈알-조리개 중첩은 ‘키노-아이’ 테제의 가장 직접적인 시각적 선언이다.

하지만 이 ‘유물론’이 물질의 역사성, 기술의 사회적 매개를 잃어버리고 작동한다면 이는 영화의 특수한 국면에 대한 도착증, 즉 물신주의fetishism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영화사의 특정 국면을 이상화하려는 이론적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를 ‘영화 이론의 물신주의적 편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영화 이론 혹은 영화 상영이 지속적으로 다시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우리가 카메라를 통해서 도착적으로 ‘영원한’ 삶을 부여한 필름은 반드시 그것이 스크린 위에서 ‘재생(再生)’될 때에만 도착을 넘어서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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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재생’이 상영회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혹은 영화가 대상을 담는 방식인 키노-아이가 바로 이 순간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키노-아이는 카메라의 렌즈도, 감독의 눈도 아니고 스크린에 투사된 뇌도 아니라, 영화가 다시 돌아가는 순간에 영화의 의식이 되어버리는 관객에게서 태어나는 것이다. 키노-아이는 스크린이 위치한 암실에 부재하는 듯한 시간과 현장을 상영하고, 암실 속에서 스크린과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한에서는 전선의 후방(관객의 뒤, 일상)과 전방(카메라의 앞)을 합치는 방식으로 의식을 생산한다.

이러한 의식의 생산은 전선이 부재한다는 감각, 전장이 부재한다는 감각 속에 빠지기 쉬운 환등상phantasmagoria[4]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들에게 충격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충격이 〈매트릭스〉에서 빨간 약을 먹은 네오처럼 깨어나 진실된 세계를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것이기는 하겠지만……. 이러한 깨어남을 나는 전장의 현행화(現行化), 역사적 진리 혹은 영화적 진리 ‘키노-프라우다’[5]의 생산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키노-아이의 특성은 특히나 혁명이 유예된 상황에서 영화, 키노-아이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1960년대 일본의 자장 속에 있는 영화들이 이 문제를 다루는 여러가지 방식은 전후 일본의 학생운동,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지난한 역사와도 결부되어 있다. 대표적인 두 감독으로 오시마 나기사(大島渚)와 057와카마츠 코지(若松孝二)를 이야기할 수 있는데, 둘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에 답을 내린다.

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의 맥락: 유예된 혁명

일본 학생운동, 전공투로 이어지는 1960년대 학생운동은 전후 일본의 문제적 상황으로부터 출발한다. 군부 파시즘 체제로부터 ‘해방’된 일본은 이 ‘해방군’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해 혼란을 겪는다. ‘일본인민공화국’을 구축하고자 했던 일본공산당의 꿈은 GHQ, 즉 미국 주도의 연합군 최고사령부 지배하에서 이뤄질 수 없었고, 좌익 계열 인사와 정치 조직에 대한 체계적 탄압 때문에,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평화혁명에 대한 희망만으로는 일본에서 정치적 활동을 지속할 수 없었다.

이에 1951년에 있었던 두 차례의 전국협의회(사전협・오전협)에서 일본공산당은 중국에서의 혁명 성공의 전례를 참고해서 농촌 해방구를 건설하고, 게릴라전을 중심으로 무장투쟁을 진행할 것을 결의한다. 하지만 무장투쟁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지 못했고, 1955년 일본공산당은 제6회 전국협의회(육전협)에서 무장투쟁 노선의 포기를 결의하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 게릴라전을 위하여 조직된 산촌공작대 등의 조직으로 동원된 청년 당원들과 학생들은 당의 노선 변경에 대해서 불만을 품었고, 유예된 일본에서의 혁명을 진행하고 점차 미국 주도의 냉전 질서의 하위 파트너로 변해가던 일본에 대해서 저항하고자 모이기 시작한다.

전후 일본의 학생운동사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이름인 분트Bund, 즉 공산주의자동맹(共産主義者同盟)이 결성된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일본학생자치회총연합(전학련)을 주도했던 학생운동 단체들이 공산당과 결별하여 분트를 형성한 것이 50년대 말엽이었고, 분트는 1960년 미일안보조약 반대 투쟁, 일명 안보투쟁을 주도하며 학생운동의 핵심적인 행위자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058안보투쟁은 유예된 일본의 혁명 속에서 점차 확고해져가던 냉전 질서에 대해서 저항하고, ‘미지근한 당’으로부터 분리되어 더 급진적으로 투쟁하고자 했던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코민테른으로부터 이어져온 일국일당의 원칙에서 벗어나고, 이미 존재하는 공산당의 지도로부터 벗어난 ‘신좌익’의 탄생이었다.

이 ‘새로운’ 좌익들은 당연히도 단일한 의견을 지닌 집단이 아니었기에 1960년 안보투쟁 이후의 소강기간 동안 제1차 분트는 해산되었고, 분트에 참여했던 여러 학생운동 정파들은 제각기 분열되었다. 하지만 공동투쟁의 필요성에 대한 지각 속에서 조직 통합이 시도되어 1966년에 제2차 분트가 재건되었다. 이윽고 제2차 분트와, 트로츠키주의 정파인 중핵파, 룩셈부르크주의 정파인 해방파가 연합하여 삼파전학련(三派全學聯)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한편으로 이러한 공동투쟁에 대한 시도는 대학 체제가 품고 있던 현장적 문제들[6]에 대한 학생들의 투쟁과도 연결되었고, 이는 각 대학의 탈정파적・범정파적 학내 투쟁과 연결된 대학별 ‘전학공투회의(이하 ‘전공투’)’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전공투와 삼파전학련은 도쿄대학 야스다 강당을 점거하고, 신주쿠역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산리즈카에서 공항 건설 강행을 위한 토지수용절차를 저지하는 등 1960년대 말엽을 뜨겁게 달구었지만, 지속되는 국가의 폭력적 탄압과 자본주의의 공세 속에서 노선 투쟁을 봉합하지 못하고 갈라지기 시작했다. 제2차 분트가 십여 개의 소정파들로 다시 분열되는 가운데, 일부 세력은 전공투와 가두투쟁을 넘어서서 곧바로 무장투쟁으로 나아갈 것을 주장하며 1969년 ‘공산주의자동맹 적군파(赤軍派)’를 결성했다. 운동의 난행 속에서 직접적 무장투쟁을 전개하고자 하는 조직이 근 15년만에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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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마 나기사의 〈일본의 밤과 안개〉와 〈도쿄전쟁 전후비화〉: 아포리아의 제시

〈일본의 밤과 안개〉는 영화비평 사이트의 여러 사람들의 오해와는 달리 전공투에 대한 영화가 아니며, 이미 망해버린 학생운동에 대한 영화도 아니다. 영화 자체가 1960년에 나왔기에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각목과 헬멧으로 무장한 전공투 학생들의 대학 점거와는 다른 시기, 그러한 투쟁으로 나아가는 길목에 있는 시기에 대한 영화이다. 따라서 다소 이른 시기의 영화라고 할 수도 있다. 이미 종결된 역사에 대해서 성찰하는 시선으로 던진 영화가 아니라, 바로 그 시점의 문제의식을 던지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오시마 나기사의 또 다른 영화인 〈도쿄전쟁 전후비화〉는 그로부터 10년 후에, 전공투 운동이 한 번 마무리된 이후에 나온 영화로 오히려 이 영화가 일부 사람들의 오해에 더 부합하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두 영화는 두 차례의 안보투쟁(1960년의 1차 안보투쟁, 1970년의 2차 안보투쟁)과 겹쳐지는 시기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동시에 정치적 사건 자체에 대한 극화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이 극화는 직접적으로 실제 인물을 찍는 방식도, 실제 사건을 정밀하게 재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종의 전형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일본의 밤과 안개〉에는 〈젋은이여(若者よ)〉라는 노래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 노래는 일본공산당의 문화운동을 주도했던 누야마 히로시(본명은 니시자와 타카지)가 작사한 곡으로, 젊은이에게 몸을 단련하라고 요청하는 노래이다. 그 단련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 노래는 무장투쟁 노선을 이미 포기한 공산당 계열 활동가들을 통해 되풀이된다는 점에서, 이미 지나가 버린 무장투쟁 노선에 대한 회한을 보여주는 노래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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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밤과 안개〉(1960) 포스터. “젊은이여, 일본의 벗이여 들으라! 흐르는 노랫소리에 모든 것을 부딪힌 청춘의 영혼의 부르짖음을!”〈도쿄전쟁 전후비화〉(1970) 포스터. “정황을 깊이 파헤칠 것이라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현대를 날카롭게 고발할 것이라 생각하겠지, 그거야말로 안이하다. 파헤치지도 않고, 고발하지도 않는다…”

또한 연극과 같이 인물을 비춰주고, 인물에 맞추어서 과거를 다시 상기시키는 방식의 구성은 1950년대 일본의 공산주의자들이 마주했던 곤란들을 비춘다. 이는 운동과 정세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사랑과 생활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영화의 결말은 다소 불투명한데, 오시마 나기사가 마주한 당대의 상황이 아직 미결된 것이었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고 영화의 결말을 휘감고 있는 안개의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나 영화 말미에 등장하여 가두로 나가서 투쟁을 진행할 것을 요구하는 트로츠키주의자의 체포와, 그의 체포를 두고서 너무나도 선명한 공산당의 노선을 되풀이하는 공산당원의 발화는 이 안개의 이미지를 역설적으로 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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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기본적으로 〈일본의 밤과 안개〉는 어떤 답을 내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소극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마무리를 가진다. 구운동권(공산당계 운동권)과 신좌익 계열 운동권의 갈등을 드러내고, 아직도 선명한 구호를 통해서 세상을 전환할 것을 요구하는 ‘트로츠키주의자’와, 이미 세태와 타협한 듯 “춤추고 노래하며” 혁명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스탈린주의자’의 모습은 모두 교조적인 당・조직의 질서를 경유한다는 점에서 동일시된다. 그 속에서 계속해서 고뇌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폭력에 대해서 회의감을 품은 인간은 더는 현장에 나오지 않고, 남은 이들 중에서 몇 양심적인 인물들은 다르게 독해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 요구에 감독은 응답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 열린 1960년대의 운동에게 하나의 문제의식을 제출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영화는 오히려 답을 내리지 않음으로써 답을 내리고 있다. 특히나 배급사 쇼치쿠(松竹)에서 이 영화를 개봉 3일만에 상영 중지했다는 점은 이 답이 가지는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오시마 나기사의 한계점 또한 이 답의 모호성에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영화는 충실히 1960년대로 진입하던 일본의 운동이 맞이한 아포리아(막다른 골목 또는 난제)에 대해서 키노-프라우다를 생산함으로 응답하고 있으나, 이는 너무나 쉽게 허무주의로 추락할 위험을 품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는 벤야민이 사진에 대해서 제안한 것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설명문을 필요로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오시마 나기사의 60년대 전반(全般)에 대한 총괄 또한 그의 키노-아이의 부유적 혹은 비행적 특성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도쿄전쟁 전후비화〉는 전공투의 투쟁을 지나간 ‘도쿄 전쟁’으로 이야기하면서, 급격히 냉각된 70년대에 무엇을 남길 수 있는지 혹은 남길 수 없는지를 보여준다. 카메라라는 장치, 카메라가 본 것들, 실은 우리에게는 편집되어 장하는 풍경은 전장의 부재 혹은 유예 속에서 키노-아이가 비출 수 062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암묵적인 답만을 내놓는다. 하지만 설명문은 여전히 부재한다. 이런 점에서 오시마 나기사는 다분히 ‘시네마’적인 감독이라고도 예찬할 수 있을 것이다.

와카마츠 코지의 〈적군/PFLP: 세계전쟁선언〉과 〈실록 연합적군〉: 프로파간다와 지나간 시간의 기록

쇼치쿠 누벨바그(松竹ヌーヴェルヴァーグ)[7]의 기수로서 화 려하게 출발한 오시마 나기사와는 달리 와카마츠 코지는 핑크영화(ピンク映画)[8]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핑크영화는 정치적 지향이나 목적을 가지는 경우가 있었다. 이는 핑크영화라는 ‘천박한’ 형태가 역설적으로 정치성을 용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약간의 성애를 추가하기만 하면, 주제를 다룰 자유를 영화에게 부여해준 것이다.

이후 와카마츠 코지가 1960년대 중반에 차린 와카마츠 프로덕션은 나아가 더 정치적인 형식을 취하는 영화 또한 제작한다. 21세기에는 〈실록 연합적군〉, 〈캐터필러〉, 〈11.25 자결의 날〉로 구성된 일본 현대사 3부작이 대표적이다. 이 3부작은 좀 더 먼 시간적 거리를 두고서 과거를 고찰한다면 30대의 와카마츠 코지는 카메라를 챙겨두고서 공간적 거리마저도 압착하는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바로 레바논 현지로 063날아가서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과 적군파의 연대를 밀착 기록한 〈적군/PFLP: 세계전쟁선언〉(이하 ‘〈세계전쟁선언〉’)이다.

이 영화는 충실한 프로파간다 영화이자, 투쟁의 현실을 비추는 영화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PFLP 전사들의 생활을 다루며 “인민의 언어로서의 무장투쟁”을 이야기하고, 전선의 전방과 후방의 구분이 없음을 역설한다. 영화는 1960년대의 전공투를 총괄하고, 새로운 전략으로 나아선 ‘적군red army’의 결성과 세계혁명전쟁의 선포, 혁명과 세계전쟁의 등치를 통해서 끝맺어지면서, 인민의 언어인 총을 들고 나아갈 것을 요구한다. 영화를 도시민의 상실된 감각, 부재하는 경험에 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 프로파간다는 가장 시네마틱하게 그들에게 부재하고 있는 지점을 파고 든다. ‘당신(70년대의 인민)’에게 부재하는 것은 화면의 충격이 아니라, 체제가 만들어낸 폭력의 독점, 특수한 억압에 의한 언어이다. 따라서 이 영화가 기성의 영화 산업의 유통질서를 입고 출현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세계혁명선언과 이것이 함축하는 스케일에 대한 감각은 우리 손에 잡히는 총을 토대로 구조 자체를 타격할 수 있다는 신념을 보여준다. 전선은 저기 멀리 팔레스타인의 언덕에서만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손에 총을 쥐고 투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들에게, “흑표당과 베트남의 동포를 죽일 권리”를 지닌 이들에 대응하는 상보적 권리를 지닌 이들에게도 존재한다.[9] 자본의 망 반대편에 혹은 그 속에 또 다른 유통 체계, 살아있는 손들의 연결망이 있다. 이는 멀리 선 역사의 천사를 기다리지 않고, 당장 비행하여 마주할 수 있는 살flesh들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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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리아 속에서 키노-아이의 드러냄을 통해 다만 관객들의 행동을, 악무한[10]을 넘어서는 결단을 묵시적으로만 요구하는 오시마 나기사와 달리, 와카마츠 코지는 더 급진적인 운동을 키노-아이의 신체로 동원하면서 영화가 그친 지금-여기를 전장으로 구성한다. 그렇기에 그는 관객이 이미 살고 있는 전장에 대한 전략적・전술적 지시를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만일 운동이 키노-아이의 신체로 동원되지 않는 상황에서 와카마츠의 키노-아이는 어떻게 작동할까? 이를 보여주는 작품이 〈실록 연합적군〉이다. 이 영화는 적군파의 후계 조직들 중, 와카마츠 코지가 함께 했던 ‘일본적군’과는 달리 일본 국내에 남은 ‘연합적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적군파가 전공투 운동 속에서 형성되고, 일본 정부에 의하여 지도부와 핵심 인력들이 검거되는 상황에서 시작해서 적군파의 이념을 지닌 여러 계파가 다른 선택을 하러 갈라지는 상황을 비춘다. 말 그대로 실록처럼 실제 인물들과 사건들을 기록하는 것이다.

영화는 따라서 연합적군이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수세적 상황을 보여주고 그 속에서 발생한 폭력적 사건들 또한 세세하게 묘사한다. 하지만 그 시선은 단순히 〈그것이 알고싶다〉 같은 시사 프로에서 볼 수 있는 재현과 고발에 그치지 않는다. 이 실록의 흐름에서 첨점(添點)을 구성하는 것은 마지막 대목의 “용기가 없었던 거야!”라는 말인데, 아사마 산장으로 몰려 포위당한 연합적군의 인물들이 하는 대사이자, 산악베이스 사건[11]의 주동자로서 자살한 모리 츠네오(森恒夫)의 유서에 나오는 글귀를 변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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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PFLP: 세계전쟁선언〉(1971) 포스터.〈실록 연합적군: 아사마 산장으로 가는 길〉(2008) 포스터. “‘혁명’에 모든 것을 걸고 싶었다…….”

키노-아이는 극으로서 과거를 재현하면서도, 동시에 극에 대한 유용한 전략적 지시를 포함한다. 와카마츠의 키노-아이에게는, 재현불가능성과 같은 문제는 감상적인 사치인 것처럼 보인다. 그의 현행화는 온정적인 듯해 보이면서도, 냉철하게 과거를 분석할 기회를 제공하고 동시에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다. 젊은 시절의 그가 가진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과 무장투쟁에 대한 신념은 운동의 부재 속에서 포착되지 않지만, 그가 산악 베이스 사건에 대한 공안 시각의 재현에 대한 반발 속에서 영화를 제작했다는 점은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그의 영화가 어떤 장소에서 눈을 뜨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정리하자면, 현행의 운동에 대한 와카마츠 프로덕션의 응답은 직접적인 만남이었고, 따라서 이들은 영화라는 언어를 통해서 무장투쟁을 066번역했다. 악몽과 같이 운동이 지나가 버린 시기, 운동이 현행하지 않는 시기에 와카마츠 프로덕션의 키노-아이는 냉철한 시각으로 대상을 재현한다. 여기에서 문제는 윤리의 문제로 굴절되거나, 병리적 대상에 대한 고발 따위로 축소되지 않는다. ‘실록(實錄)’이라는 이름이 표현하는 바와 같이 대상은 여기에 자리잡으면서도 와카마츠 코지의 인용구를 통해서 특정한 방향성을 부여받고 있다.

사토 미츠오・야마오카 쿄이치의 〈산야, 당하거든 되돌려줘라〉: 상영의 의미

결론, 혹은 누구의 길이 좋은지에 대한 판결을 대신해, 마지막으로 한 편의 영화를 더 소개하고자 한다. 가장 최근에 상영회에서 튼, 80년대 초중반 도쿄 산야지구(山谷地区)[12]의 일용직 노동조합의 투쟁을 다룬 〈산야, 당하거든 되돌려줘라〉라는 영화이다. 영화를 처음 기획하고 촬영을 진행한 사토 미츠오 감독은 영화 촬영 중에 살해당했고, 영화는 이 죽음을 비추면서 시작한다. 이후 산야지구 노동자들의 생활과 투쟁을 비추고, 나아가 일용직 노동자들을 만들어내는 일본의 산업 구조와 식민주의의 역사에 카메라를 비추어서 다른 도시의 일용직 노동자 밀집 거주 지역과 탄광, 항구, 조선인 노동자들의 무덤 등을 다룬다.

영화는 생산의 사슬을 지탱하는 노동자를 비추는 것을 중심으로 하여 와카마츠 코지의 프로파간다와 같은 류의 작품을 지향한 것으로 067보이지만, 감독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리고 영화 촬영을 방해하려는 우익 폭력단의 행태로 인하여 〈세계전쟁선언〉과 같이 선명하게 만들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일본 각지의 여러 공동체에서 상영되고, 일용직 노동자들의 애환을 다룬 ‘산야 블루스’와 같은 음악과 함께 감상되면서 산야 쟁의단의 투쟁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투쟁의 역사를 현행화하는 데 동원된다. 저기 죽은 감독의 시나리오 속에서, 아니면 이미 찍힌 필름에서 영화가, 그것이 현행화하는 전장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재생을 통해서 등장하고 점차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이 사례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상영이란 과거에 이미 존재한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 영화를 현행화시키는 것이다. 상영회라는 제의(祭儀) 속에서 영화는 ‘이제와 항상 영원히’(천주교 기도문 중 영광송의 구절)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서 도래한다. 이 도래는 관객을 일상에서는 부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전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간다. 관객은 생물의 눈을 지니고서만 저편의 키노-아이의 상연(上演)을 보는 것이 아니라, 키노-아이 자체가 되어서 영화의 전장을 자신의 스크린에 상영(上映)할 기회를 얻게 된다. 환등상 저편, 스크린 뒷편에 도래하는 이미 존재하는 천국, 유토피아에 대한 헛된 욕망 속에서 몸부림치지 않고, 자신에게는 부재하는 저편에 실재하는 살들에 대해서 환상을 품지 않고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만일 영화가 비추는 모든 아포리아와 전략・전술의 제시를 대상화하거나, 무시하고 다만 상영실 안에 계속 머무른다면, 상영은 아무 의미 없는 영사기의 회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영화들은 이러한 회전만을 의식적으로 충실하게 수행하고자 하며, 때로는 성공적으로 목표를 달성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무의미를 길러내는 상영실에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오히려 이런 폐쇄적 회전은 068영화가 지니는 힘을 크게 제약하고, 현실은 결코 이러한 영화들이 원하는 환상의 방향, 자본을 위하여 재편되었을 방향을 단순히 쫓아갈 수 없도록 관객을 극장 밖으로 내몬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하고 상영회를 진행해야 한다. 영화가 지니는 환등상을 돌파하는 성격, 혁명적 성격은 우리의 스크린으로, 우리 자신으로 상영될 수 있고, 상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 1 196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반자본주의・반식민주의 영화 운동. 미국의 할리우드 오락영화(제1영화)와 유럽의 작가주의 영화(제2영화)를 모두 지양한다는 의미. 대표적인 감독은 아르헨티나의 페르난도 솔라나스, 브라질의 글라우베르 로샤.
× 2 소련의 영화 감독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가 전개한 영화운동의 슬로건. 몽타주 등의 기법을 통해서 인간의 눈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재구성하고 비추는, 그리하여 인간의 눈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것들을 포착해내는 ‘영화의 눈’이라는 특성을 지칭하는 개념.
× 3 주로 90년대 후반~00년대 초반에 제작된 중국의 독립영화를 지칭하는 이름. 정부기관의 통제와 허가를 벗어나서 제작 및 유통, 상영되는 비제도권 영화.
× 4 마르크스와 벤야민이 사용한 개념. 자본주의 상품생산 사회에서는 사람 간의 사회적 관계가 상품 간의 관계, 화폐 간의 관계 등으로 전도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세계의 상(像)을 주마등 또는 환등기가 영사하는 상에 비유하여 허깨비라고 표현한 것이다. 화려한 영상에 몰입하는 관객이 영사기를 돌리는 누군가의 존재를 망각하듯이, 자본주의 소비문화・대중문화의 향유자는 생산과정・노동과정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 5 (편집부) Kino-Pravda. 프라우다(Правда)는 러시아어로 ‘진리/진실’이라는 뜻이다. 베르토프는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에서 이름을 따온 〈키노-프라우다〉라는 제목으로 1922~1925년 23편의 단편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단순한 기록에서 그치지 않고 실천적이며 투쟁적으로 진실을 담고자 한 작업으로 평가된다.
× 6 가령, 니혼대학의 사학비리 문제, 도쿄대학의 전공의 노동착취 문제, 교토대학의 기숙사 노후화 문제, 와세다・케이오・메이지대학의 학비 인상 반대, 큐슈대학의 미군 정찰기 추락사건 등등.
× 7 일본의 대형 영화배급사 쇼치쿠에서 출발한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초반 작가주의적 경향의 전후 일본 영화감독 신세대를 지칭하는 말. 오시마 나기사가 쇼치쿠에서 제작한 몇 편의 영화들이 시작점으로 꼽히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시마 나기사는 1960년 이후 주로 ATG에서 활동했다.
× 8 중소 영화 배급회사에서 유통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일본 에로영화. 1980년대 후반 ‘성인 비디오(AV)’의 출현으로 쇠퇴. 3회 이상의 베드씬만 포함되면 나머지 제작에는 완전한 자율성이 부여되었기 때문에 단순 포르노가 아닌 작가주의 성향을 띨 수 있었다. 본문에 언급된 와카마츠 코지 외에도 쿠로사와 키요시, 타키타 요지로, 쿠마시로 타츠미, 스오 마사유키, 이즈츠 카즈유키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영화감독들이 핑크영화 출신.
× 9 “너희에게 흑표당의 동지들을 죽이고 게토를 전차로 짓밟을 권리가 있다면 우리에게도 닉슨・사토・키신저・드골을 죽이고 펜타곤, 방위청, 경시청, 너희들의 집을 폭파할 권리가 있다.” 1969년 9월 5일 전국전공투 결성대회장에 적군파가 난입해서 뿌린 ‘세계전쟁선언’의 한 문장. 이 때 적군파는 제2차 분트에서 이미 제명당한 상태였다. 이 선언문은 언더그라운드 펑크록 밴드 ‘두뇌경찰(頭脳警察)’ 1집(1972년) 첫 곡으로도 만들어져 불렸다.
× 10 (편집부) 헤겔 철학에서, 한없이 나아가는 운동 과정을 이르는 말. 궁극에 끝없이 접근하려 하지만 끝내 접근하지 못하는 진행을 이른다.
× 11 〈실록 연합적군〉 중반부에 등장하는 사건으로, 연합적군의 게릴라 근거지(산악베이스)에서 일어난 일련의 폭력 사태. 고립 상태에서 무장투쟁을 위한 군사훈련을 진행하던 중에 자아비판을 명목으로 구타 등이 자행되었고, 12명이 사망한다.
× 12 오사카 카마가사키 아이린지구(愛隣地區), 요코하마 나카구 코토부키쵸(寿町)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도시빈민 밀집 지역. 안정된 주거를 구할 수 없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주거하는 값싼 숙소가 몰려서 형성되는 이런 슬럼가를 ‘도야가이(ドヤ街)’라고 한다. 한국의 쪽방촌・달방촌과 비슷하지만, 도야가이는 요세바(寄せ場)라는 일용직 구인시장을 중심으로 건설업・하역업 일자리와 결합되어 형성된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