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까치』 №03 §005 「들어가며」
창간선언문
물까치는 참새목 까마귀과 물까치속의 조류다.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교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박하고 친숙한 새다. 교조로 지정은 되어 있으나 실제로 볼 수는 없는 두루미의 고고한 권위성과는 대별된다.
물까치는 수십 마리가 무리를 지어 공동육아를 하는 연대의식을 아는 새이며, 둥지를 위협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덤비는 투쟁성 있는 새이다.
물까치의 푸른색, 흰색, 검은색 깃털은 현장직 노동자(블루칼라), 사무직 노동자(화이트칼라), 그리고 학생(학위복)들의 노학연대 총연대 총단결을 상징한다.
우리는 “세속의 이해관계로부터 초연”하게 높이 나는 두루미가 아니라, 시끄럽게 울며 낮게 나는 물까치가 될 것이다.
비서공 회칙 1장 2조
비서공은 서울대학교 노동자들의 차별적 고용구조와 노동조건을 개선함으로써 노동자와 학생을 비롯한 모든 학교 구성원이 이윤논리를 넘어 존엄한 권리를 보장받는 서울대를 만들고, 궁극적으로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는 노동자-학생 연대단체이다. 서울대학교 노동자들의 권리를 증진하고 노동자와 학생 권익을 공동성장시키며 노동을 바라보는 사회 전반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비서공은 다음과 같은 사업을 전개한다.
비서공 회칙 6장 15조
비서공은 다음 조건이 모두 충족되었을 때에 한하여 해산된다. ▲서울대학교의 모든 상시적 노동자들의 고용형태에 법인직과 자체직의 차등이 사라지고 총장발령 정규직으로 일원화될 때 ▲서울대학교의 모든 상시적 노동자들이 임금과 복지 등 모든 방면에서 차별을 받지 않고 평등해질 때 ▲서울대학교에 위험한 노동환경이 남지 않고 교정의 모든 곳이 안전한 일자리가 되었을 때
005들어가며
『물까치』 통권 제3호의 표제어는 ‘말문speech’ 입니다. 사실 영어로 번역하기에는 딱 떨어지지 않는 말입니다. 말을 꺼내는 실마리와, 열리는 입을 동시에 의미하는 ‘말문’이란 때로 막히는speechless 것이며 또 때로 트이는speechful 것이기도 합니다.
이번 호의 문을 여는 진제헌 활동회원의 글은 제27회 퀴어문화축제 참여 후기를 겸하여, 서브컬처를 경유하는 자기성찰적 비평입니다. 학생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그런 운동을 통해서 ‘성장’했다는 서사는 매력적입니다. 많은 경우 그 ‘성장’은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사회화’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그런데 진제헌 회원의 글은 그러한 ‘사회화’가 자칫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지우고 “보통으로 기능”하는 존재로 환원시키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긍정적이고 매력적이며 동시에 전형적인 서사를 반대 결로 쓸어 보는 고민을 함께해 볼 기회입니다.
이제 서울에 단둘만 남은 학생몸짓패 중 하나, 서울대학교 중앙몸짓패 ‘골패’의 패짱인 최수지 활동회원은 홍진훤 예술가의 기획에 섭외되어 몸짓을 수행한 경험을 써 주셨습니다. 자신의 몸짓이 미술관에 걸렸다는 사실이 그저 개인적 성취감으로 직결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화려한 미술관 조명 아래 선명하게 드러나는 학생운동의 쇠락을 안타까워하고, 그 문화의 아마도 끝자락일지 모르는 담지자로서 고독해하는 마음을 정직하게 고백하는 글입니다. 평소에 쉽사리 나누기 힘든 고민에 관해 말문을 튼 두 활동회원에게 함께 귀를 기울여 보면 좋겠습니다.
006올해 학생대표를 맡고 있는 안승민 활동회원이 방학 중 스페인에 단기 어학연수를 다녀오며 현장 르포를 보내 주셨습니다. 다른 언어를 배워 경계를 넘고, 새로운 사람들과 말문을 트면서 내 마음도 새롭게 열리게 됩니다. 스페인 마드리드 기숙사에서 서울대학교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또 마드리드의 어학원에서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한국어교원을 떠올리며, 대학의 일상을 지탱하는 노동을 세심하게 인식한 글입니다. 그에 더해 언제 어디에서나 밝게 건네는 인사 한 마디에서 연대와 연결이 시작된다는, 낯설지 않지만 자칫 깜박 잊기도 쉬운 진리를 깨닫게 해 줍니다.
예술 작품은 우선 만든 사람(들)이 세상과 감상자에게 말을 건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상한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말문을 트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할 때 비로소 깊고도 진정한 의미가 생깁니다. 영화 비평을 써 주신 박세웅 회원은 서마학 공부모임과 영화동아리 씨네꼼 내 ‘영화와 정치경제’ 소모임에서 다양한 영화 상영회를 주관하고 있습니다. 이 비평에서는 ‘키노-아이’ 영화이론을 도구 삼아, 1960-70년대 일본 학생운동사와 맞물려 있는 네 편의 영화를 들여다봅니다. ‘영화와 정치경제’는 이번 학기에도 진행됩니다. 어디 가서 보기 힘든 영화들을 많이 상영하고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박세웅 회원에게 연락 바랍니다.
노동자와 학생 사이에, 또 학생과 학생 사이에 말문이 한번 열리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열렸다면 다시 닫히지 않도록 꾸준히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비서공은 학교에서 삶의 일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 대화를 엮어 왔습니다. 그 역사를 후반부 세 편의 글로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다지길 제안합니다.
비서공 초대 집행위원장과 제2대 대표를 역임한 양진영 전 집행위원이 정직한 성찰과 따뜻한 회고를 담아 글을 써 주셨습니다. 비서공은 0072018년 사회과학대학생회 인권국의 역점사업으로 시작되었는데, 양진영 회원이 당시 인권국장이었습니다. 첫 깃발을 올리던 시절의 설렘과, 때로 비난에도 맞서야 했던 연대의 기억들을 들려 줍니다.
비서공 제3대 대표를 맡았던 이재현 활동회원은 지난 8월 학부생 생활을 마치고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2018년 입학해서 비서공의 시작부터 쭉 함께해온 8년 반의 시간을 돌아봅니다. 또한, 비서공을 이어갈 회원들에게 바치는 당부를 장고 끝에 내놓습니다. 책임있고 평등한 대학,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을 꾸자고 나와 너의 말문을 여는 것에서 ‘조직화’가 시작됩니다.
마지막으로, 비서공 결성의 주요 배경 중 하나였던 2017년 비학생조교 파업투쟁, 그 주축이셨던 송혜련 학사운영직(구 비학생조교) 노동자 인터뷰입니다. 노동의 일상 속 불안정 고용과 같은 부당한 이유로 억눌려 왔던 말문이 마침내 터져나오면 그것이 투쟁입니다. 학사운영직 노동자들의 2016-2017년 투쟁의 기억과 2026년의 투쟁을 겹쳐봅니다. 노동자들과 서울대 학생들 간의 노학연대, 비학생조교 노동자들과 다른 서울대 노동자들 간의 노노연대는 오늘날 비서공이 품은 지향의 시원이었습니다. 그 기억 위에, 10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날 우리가 여전히 지향하는 노-노-학연대를 또 한층 쌓아 올릴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말문을 트고 마음에 담아 두었던 고민과 정감을 꺼내놓을 용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까치』는 공간과 주제와 시간을 누비며, 관악캠퍼스에서 평등한 사회와 대학의 역할을 고민했던–고민하는–고민할 모든 분들을 잇고자 노력하겠습니다.
2026년 9월 27일
편집부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