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2호) 한 사람의 선배와 한 사람의 후배를 떠나보내며
한 사람의 선배와 한 사람의 후배를 떠나보내며:
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故김희지 학우 및
전 비서공 집행위원 故조건우 학우 추도문
지난 1월, 우리는 한 사람의 활동가를 머나먼 곳으로 떠나보냈습니다. 생의 마지막 몇 해를 노동건강연대의 상근활동가로서 보냈던 김희지 활동가의 삶을 몇몇 약력으로 간추리는 일은 불가능하고 더없이 무례한 일일 터입니다. 그럼에도 몇 가지 키워드를 들어보면 학생자치, 반성폭력, 몸짓패, 노동안전과 건강권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활동을 이어왔던 희지에 대해 제가 무언가 말할 수 있다면, 제가 새내기 때부터 그와 보낸 많은 시간 동안 미안할 정도로 부족한 후배였던 저에게 어떠한 말할 자리가 주어진다면, 저는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할까요. 그가 보낸 마지막 몇 년 동안의 시간, 한 사람의 ‘활동가’로서 더 많은 이들과, 특히 학생활동과 사회운동에 발을 내디딜 더 많은 후배들과 손 맞잡고 싶어했던 시간들을 함께 보냈고 때로는 견뎠기에, 늘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던 그리고 그럼으로써 연결되고팠던 의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비서공을 비롯한 여러 학내 권리의제 단위들이 함께 꾸린 2025년 여름방학의 학생활동가 진로 토크콘서트에서 희지가 남긴 몇 마디를 인용하는 일을 용서해주리라 믿습니다. 그의 말을 다시금 그리고 때때로 소리내어 읽는 것이 우리가 그를 잃지 않고 함께 싸우는 한 작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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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11월 7일, 제37회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전날 세종호텔을 향해 행진하는,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대오에서 노동건강연대 깃발을 들고 있는 故김희지. (촬영: 이재현) |
“이제 제가 졸업을 앞두고 취업의 압박을 느끼고 채용 공고를 보고 있었어요. 그때 삼성 공채가 떴는데 말하자면 기회균형 전형 같은 게 있었어요. 제가 그걸 쓸 자격이 되어서 교수님께 추천서까지 받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나는 삼성의 노동자가 되는 게 아니라 삼성에서 일하다 죽거나 다친 사람들을 위해서 활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마음을 먹고서 저는 교수님의 정성스러운 추천서를 내지 않았습니다. 우연히 지금 일하는 단체의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했고 합격해서 2024년 3월 이후로 저는 직업활동가로 살고 있습니다.”151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나이브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항상 연대와 확장에 대해서 고민하고 실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연대는 우리의 무기이기 때문에 확장성, 지속가능성을 놓치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또한 아직 연결되지 않았을 뿐이지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지는 어디에든 있습니다. 내가 속한 조직 안에 있기도 하지만, 조직 밖에도, 심지어 서울대학교 밖에도 있어요. 때문에 혼자서 울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이고 환경에 좌우되는 존재가 맞아요. 하지만 어떤 환경에 나를 놓을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회를 향한 애정과 관심은 나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맞아요. 나를 잃지 않으면서 우리 같이 싸워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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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우리는 여러 해 동안 비서공에서 활동했던 한 회원을 머나먼 곳으로 떠나보냈습니다. 제게는 더욱 긴 시간을 함께한 학과 후배였고 그렇기에 (활동에서의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더욱 다양한 얼굴로 기억되는 조건우 회원, 그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에게 각자가 기억하는 건우의 얼굴들이 있을 것이고, 그 얼굴들은 모두 진실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건우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지만 어려운 시간들을 함께 견딜 줄 알던 얼굴로, 책임을 함께 지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그리고 몸으로 이해했던 얼굴로 기억됩니다. 작은 모임에도 소홀하지 않았던, 대외 연대에의 파견인을 맡으면 요구되는 일보다 꼭 더 많은 일을 해내던 그를 생각합니다. 여러 학교 학생들과 청소노동자 노조원들이 함께하는 합동 수련회에서 그가 보낸 시간이, 집회와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던 시간이 우리에게뿐 아니라 그에게도 값진 흔적을 남겼으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가 언제나 깊이 빠지고 싶었던 152현대 서양사의 격변에 대한 공부, 실패하였지만 결코 우회할 수 없는 역사적 경험으로서 역사적 사회주의에 대한 연구, 대안을 향해 더듬어 나가는 과정에서 곱씹어야 할 열망과 오류에 대한 열정적 탐구가 그의 활동적인 삶과 따로 있지 않았으리라고 믿습니다. 투쟁의 현장에서, 강의실과 도서관에서 보낸 그의 시간들이 연결되어 있었다고, 그리고 유한한 시간을 살아갔고 살아갈 그와 우리에게 어떤 값진 흔적으로 남았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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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월 7일,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6차 긴급행동 집회에 참여한 뒤 비서공 깃발을 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한 故조건우 당시 집행위원(2024년 2월 퇴임). 왼쪽은 재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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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남은 것은 기억들과 말들, 그것도 조각난 기억들과 말들일 뿐입니다. 그 파편들 속에서 늘 떠난 이들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153때로는 깨진 거울 같은 조각들에서 재회하는 상이 우리 자신의 비친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그 조각들에 대해 더 많이 함께 말하는 일뿐이고, 어쩌면 이미 우리 안에 떠난 이들의 흔적이 지울 수 없이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진 거울에 비추어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시간들을 함께 만들어내지 못했음에 그리고 더 손 잡아주지 못했음에 자책감이 드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과거에도 미래에도 애정하는 두 사람의 동지에게, 잘 가라고, 그리고 또 자주 다시 보자고 말을 건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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