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2호) 자기증식하는 포켓몬 승부
자기증식하는 포켓몬 승부
포켓몬스터 DP 디아루가⋅펄기아에 공명하는 청년(들)
들어가며
비밀을 하나 고백하자면 내가 처음 시작한 포켓몬은 《포켓몬스터 DP 펄기아》(한국 정식 발매 2008)[1]임에도 일찍이 잃어버린 탓에 정을 붙인 게임은 본가 2세대의 리메이크판인 《포켓몬스터 하트골드·소울실버》(2009)였다. 아마 그렇기에 이 글은 게임에 대한 애정이 조금은 덜한 사람의 글일 것이며, 가끔 《DP》에 대한 것인지 포켓몬 전반에 대한 것인지 모를 서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DP》도 《하트골드》와 마찬가지로 성공적인 시리즈이면서 4세대에 속하고 발매 시기에 큰 차이가 없으므로 심각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전반적인 포켓몬 게임에 관한 것도 다루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시리즈의 핵심인 포획 진화 승부의 시스템은 오픈월드(게임 내 공간적 한계가 거의 없음)로 장르가 변경된 현재까지 거의 변하지 않아 왔다.
포켓몬이 언제나 그렇듯이 스토리는 간단하다. 《DP》의 주인공은 지방에 한둘밖에 없는 박사로부터 희귀한 포켓몬 셋 중 하나를 받고 모험을 떠난 이후 갤럭시단이라는 악의 조직을 만나게 된다. 갤럭시단의 036조무래기(이름 없는 일반 조직원)들은 남의 포켓몬을 빼앗는 등의 일차원적인 악인으로 묘사되는 한편 갤럭시단은 직장일 뿐이라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갤럭시단의 보스인 태홍이 조무래기들을 통해 악행을 벌이는 목적은 지금의 세계를 초기화하고 감정이 없는 세계로 다시 만드는 것, 그것을 위한 도구로 전승에 의하면 공간을 관장하는 펄기아 또는 시간을 관장하는 디아루가를 포획하는 것이다. 포획은 포켓몬볼을 통한 일반적인 포획과는 다르게 빨강 쇠사슬이라는 것으로 이루어지는데 아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악행의 중간 기착지는 호수에 살며 감정을 관장하는 엠라이트, 지식을 관장하는 유크시, 의지를 관장하는 아그놈이라는 또 다른 전설의 포켓몬 포획이다. 이들을 이용해 사슬을 완성한다. 당연히 주인공과의 포켓몬 승부에서 진 태홍은 사라지고 주인공은 챔피언이 된다.
이렇게만 본다면 《DP》는 그저 상업적으로 성공한 시리즈 중에서도 꽤 성공한 축에 드는 게임이지만, 조금 더 재밌게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러기 전에 우선 포켓몬을 낳은 정신은 일본의 것이다. 그러나 포켓몬 전체가 아닌, 에뮬레이터와 복제칩이 넘쳤던 그 시절에도 많은 판매고를 올려 포켓몬 본가의 한글화를 고정시킨 포켓몬 4세대 《DP》는 분명 청년의 정신과 공명하는 지점이 있다.
![]() | 《포켓몬스터 DP 펄기아》 게임팩. |
그렇다면, 어찌 되었든 세상을 바꾸려는 태홍의 시도가 악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대기업으로 형상화되며 대기업의 말단 사원인 조무래기들이 자아 없는 경험치 덩어리 정도로 파악되는 것, 그런 게임을 지금의 청년세대가 당시의 포켓몬에 열광했고 지금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노동자가 되지 못하는 청년의 공유되는 의식 중 폭력적인 부분을 추려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노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이 직업——게다가 아주 성공적인 신생 대기업 사원——을 가진 이들에게 반감을 품는 것은 당연하다. 기업체에서 노동자를 담당하는 조무래기가 이상한 생김새에 그다지 ‘현명하지 않은’ 언행을 하고 다른 이들의 포켓몬을 빼앗는 일차원적인 악인임에 반해 사실 일자리 없음에 더 큰 책임이 있는 간부들과 보스는 카리스마 있고 성공한 이미지로 제시되는 것을 보면 꼭 그렇다. 물질적·지위적 성공이라는 것이 윤리적 지표를 흐리는 방식으로 기능하는 사회에서 자신들의 일자리 없음에 더 큰 책임이 있는 기업인들을 흠모하면서, 그들의 ‘성공’과 개성이라는 것을 숭앙하면서 그들의 발현되는 개성을 얹을 전시대로 활용되는 노동자들의 ‘실패’와 몰개성을 ‘무식함’을 혐오하는 청년들을 곳곳에서 그리고 우리 안에서 볼 수 있다.
화성에 간다거나, 코스피 6000을 말한다거나 하는 대안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일과 일해 얻은 돈만으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세상, 일자리를 잃거나 얻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같은 대안의 삶을 상상하는 일은 받아들이는 사람이 체제를 문제 삼지 않는 과정에서 세계를 조각내는 일이나 마찬가지로 여겨지고, 공포스러우면서 동시에 매혹적으로 여겨진다. 기업인들이 인플루언서가 되고, 그들의 개성은 더욱 개성적으로 된다.
숭고미에 가까운 무언가를 얻게 된 대안을 말하는 존재들은 총체를 파악할 수 없도록 하는 숭고의 효과로 인하여 뭉그러져 하나로 나타038나고, 그럴 때 그것은 어떤 거대함이다. 우리 사회에서의 거대함이라고 하면 정부 또는 기업인데, 정부 내지는 정치인이 멋지지 않다는 것은 이미 체화된 사실인 데다 정부라는 것이 너무 만만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그러므로 감히 나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리고 가증스러운 조무래기들로 구성된, 세계를 바꾸려는 악의 조직은 기업이 어울린다. 단, 기업인은 우선 보류.
이상한 포켓몬 세계와 소비자 청년들
이런 식으로 포켓몬의 이상한 세계를 살펴봄으로써 생산관계에 속하지 못하는 청년들의 시선을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포켓몬 세계에서 가장 중시되는 직업군은 포켓몬 트레이너이지만 게임에서 만나고 인상 깊게 남을 포켓몬 트레이너들은 지방에 8명밖에 없는 체육관 관장들, 사천왕과 챔피언, 주인공과 라이벌 등을 합해 스무 명이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 트레이너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중 일부는 주인공의 앞을 막는 돌덩이거나 돈주머니이다. 주인공의 시선으로 우리는 그들을 조무래기들과 마찬가지로 경멸하게 된다. 너무 귀찮다, 회복해야 하는데, 다음 마을이 바로 앞인데, 같은 것은 플레이어의 마음과,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성공하지 못하면 저렇게 되는구나’ 같은 주인공의 마음을 갖는 우리이지만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하는 점은 그 길가에 널브러진 트레이너들은 아직 상황이 나쁘지 않은 이들이라는 점이다. 개발자들이 어떤 위치에 어떤 스프라이트(게임 내 움직이는 2차원 그래픽)를 넣을지 고려했고, 어떤 포켓몬 어떤 기술을 쓸지 같은 것을 고려했다는 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시스템적으로 보자면 그들에게는 주인공에게 졌을 때 지불할 돈이 남아있다. 서사 내적으로 보자면 생활할 여력도 있는 상태이다. 아직 트레이너일 수 있다는 것이다.
039그렇다면 더이상 트레이너일 수 없는 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애초에 포켓몬을 가지지 못한 경우들, 주인공의 화려한 시작과 같이 각 지방에 하나만 있는 박사로부터 희귀한 포켓몬을 받지 못한 이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게임의 모든 인물은 포켓몬 트레이너라고 봐도 무방한데 그 생활을 지탱해줄 경제활동에 대해 말하는 인물은 찾아볼 수 없다. 포켓몬에서 경험하게 되는 경제는 포켓몬 승부의 결과로 정해지는 돈의 지불과 바닥에서 주운 물건을 파는 것,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는 것밖에는 없다.[2]
승부의 결과로 돈을 받고 돈을 지불하는 약탈경제의 규모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생산관계에 들지 못해 소비자 정체성으로 구성된 인물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그렇대도 현실의 일자리 없고 보이지도 않는 청년들이 그렇듯이 집 안에서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DP》에서는 구현된 모든 집에 들어가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게임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트레이너들은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가지 않았다. 그들은 주인공에게 없는 존재이며, 그래서 구현되지 않는다, 즉 차단된다. 차단의 욕망은 편안한 환경을 만드는 욕망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이때 소비자의 눈으로는 소비할 수 없는 상태의 소비자를 불편한 존재로 볼 경우가 많을 것이다. 물건을 사지도 않을 사람이 서성이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게임과 게임개발의 논리가 그런 필요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삭제해 최적화하기를 미덕으로 하기에 게임에서 소비능력이 없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DP》에 있어서 최적화의 달성은 심각하게 실패해 있다. 포켓몬의 체력바가 과도할 정도로 느리게 줄어들었고, 줄어들기 시작040하는 사이에 지연이 있었으며, 그보다 모든 상호작용 사이에 지연이 있었다. 게임팩에 고정된 형태로 판매된 게임이 진행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느렸던 것은 DS라는 기기 자체의 판매량과도 연관이 있는 《DP》의 중요도[3]를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필요 없다고 여겨지는 모든 사람을 배제했음에도 최적화에 실패한 결과물을 내놓은 것은 암암리에 번지고 있던 의식이 공유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게임이라고 하면 흔히 시간을 들였을 때 숫자의 점층으로 또는 어떤 이벤트로 또는 적어도 잉여적 재미로 보상(그것이 재미가 있든 없든)을 받을 수 있는 매체로 여겨진다. 그러나 아무런 보상이 없거나 피로감만 유발하는 노력이 분명 존재하고,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상황도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DP》의 지연들과 시스템 자체가 그런 효과를 낸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어떤 포켓몬으로는 게임 진행 자체가 불가능하며, 많은 경우는 진화 시스템의 존재로 미진화체가 대전에 어울리지 않는 데서 나온다. 그리고 이런 제약들을 《DP》는 당연하다고 말한다. 노력에 대한 보상이 어떻게든 존재하는 게임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포켓몬은 많은 포켓몬이라는 선택지를 늘어놓고 결국 몇 가지 성공적인 경우가 존재함을 받아들이도록 하거나 적어도 느끼도록 한다. 어떤 노력을 거쳐도, 오히려 노력해서 성장을 이뤘을 때 체력바는 더 느리게 줄어들며 지연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어떤 구성을 가지더라도 《DP》의 스토리 내에서 원하는 포켓몬만으로는 진행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건 별로 상관이 없다. 애초에 그런 방식의 노력에는 관심 있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최적화가 효과적으로 041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어떤 포켓몬들은 전혀 쓰이지 않게 되더라도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개발자들이 알고 있는 것이다. 게임에서의 이동방향이 4가지에 불과하더라도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은 성공적이지 않은 방식의 자유와 노력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게임 밖에서는 너무나 익숙한 사고인데, 차가 막히는데 대응하지 못하는 앞차를 욕하고 버스가 파업해 오지 않는 것을 욕할 수는 있지만 도로 자체가 이동량을 고려하지 않고 구성됐다거나 버스 파업의 이유를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너무 섣부른 비유일까 싶지만, 이것이 노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소비자에 머무르는 사람의 표출되는 정신임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정부의 제약이 없고 노동자의 생산도 기업의 작동도 없는 《DP》의 세계는 거대한 악에 대해서도, 어떤 대단한 전설의 포켓몬에게도, 어떤 훌륭한 인간에게도 단순하고 직접적인 포켓몬 승부로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약속이 있다. 어떤 대단한 상품이라도 화폐와 교환되는 것이 당연하듯이. 항상 지적되는 부분이지만 승부 시스템을 위해서 야생의 포켓몬들을 포획하고 강제로 번식시키며 성에 차지 않을 경우 컨트롤러의 조작 하나로 버릴 수 있다는 감각과 이를 가능케 하는 게임 내 기능이 있으며, 그런 행위들은 어떤 시리즈에서든 거듭 윤리적으로 긍정적인 행위 또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의 영역[4]으로 보장된다. 마치 이 사회에서 어떤 짓을 하든 어떻게 돈을 벌든 쓰든 범법만 아니면 윤리적으로도 정당화되며, 가장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여겨지는 기업가들이 인간승리의 상징이자 인플루언서가 되듯이.
042자기증식하는 자본
그리고 이 지점에서 포켓몬이 어떤 존재인지, 왜 갤럭시단을 비롯한 악의 조직들은 포켓몬을 빼앗으려 하는지, 조무래기들은 왜 배틀중에 태홍의 목적과는 관련 없는 사담을 늘어놓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DP》에서는 포켓몬이 현실의 자본을 대체한다. 물론 《DP》에도 화폐가 존재한다. 그러나 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포켓몬볼과 상처약을 만드는 독점 기업을 제외한 기업들은 별다른 수익모델이 없음에도 대기업인 상태에 있다. 특히나 갤럭시단의 경우는 계속해서 조무래기와 과학자들에게 임금을 지불하고 복지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5] 임금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것은 당연한데, 최적화를 위해 생산과 소비가 잘려나간 포켓몬 세계에서는 포켓몬 승부라는 행위가 자본의 자기증식이라는 현실의 현상을 모방하기 때문이다.
자본은 정의상 자기증식하는 가치를 지시한다. 가치의 자기증식을 위해서는 자연을 변형하거나 유용해야 하며, 그 이후로는 말 그대로 자기증식하는 듯 행동한다. 가치를 생산해낸 노동을 자신으로부터 잘라버리고, 주식, 부동산과 같은 곳으로 넘어가 재료가 된 자연에서도 떼어내진 듯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어떤 과정으로 이뤄졌는지 알 길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본의 시초축적[6]을 지나서 자본은 자본 자신의 활동으로부터 모든 것을 생산해낼 수 있다는 듯하다.
그러나 자본과 자본가는 그 자신들로만 이루어진 세계에서는 살아갈 수가 없으며, 그것을 까먹고 지속적인 초과생산으로 발생한 공황을 전쟁이라는 수요를 만들어 털어낸 후 살아남은 자본에 공황을 버티지 못한 자본이 집중된다. 살아남은 자본은 공황을 더 안전하게 견뎌내기 043위해서 자신이 져야 할 위험을 노동자 국가 다른 자본에 떠넘기며, 그로 인해 거대한 자본일수록 더 거대해질 수 있게 된다.
갈수록 위험을 부담하면서 급여는 그 정도로 보장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은 점점 월급 등이 아닌 주식, 코인으로 몰아져 결국 아주 조금이지만 주식과 같은 자본을 가졌다는 이유로 온전히 노동자계급으로 칭하기 어렵다고 주장되는, 자기 인식에 있어서 자본가에게 가까워지기도 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렇지만 결국 대부분의 노동시간 동안은 노동자는 자신과 자본가의 처지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단지 생존의 수단으로 노동한다는 의식을 갖는다.
나는 지금 포켓몬이 초기축적에서 집중되는 토지를 비롯한 것들이고 트레이너는 일종의 자본가 계급이며 초기축적의 과정에서 승부라는 조건에 유리한 포켓몬을 포켓몬의 ‘주인 없음’을 근거로 선점하고 도구에 대한 접근이 수월한 트레이너들이 다른 트레이너와 ‘야생’의 포켓몬들을 상대로 유리한 조건의 포켓몬 승부를 벌였다고 주장하려 한다.
자기증식하는 포켓몬 승부와 몇 가지 트레이너들
포켓몬 승부가 진행된 후 복제의 부산물인 포켓몬 화폐와 경험치를 얻고 그것을 바탕으로 트레이너는 더욱 유리한 조건으로 다음 승부를 벌일 수 있다.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들이 모험과 성장의 과정으로 풀이됨으로써 강한 트레이너는 사회적 명망을 얻고 인플루언서로도 기능하게 된다. 아주 강한 트레이너들, 예를 들어 사천왕과 챔피언이라는 트레이너들은 그들과의 승부를 위한 조건인 체육관 관장과 챔피언로드 그리고 다른 사천왕의 존재로 인해서 새로 포켓몬 육성을 시작한 주인공 같은 이들과 거의 승부를 하지 않게 된다.
044이것이 흥미로운 점은 국가가 없는 포켓몬 세계에서 국가의 제한까지 모방했다는 이유에서이다. 체육관 관장들은 설정상 거의 대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된다. 그러나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먼저 만나게 마련된 관장일수록 쉽다. 이런 현상을 보완한 것이 ‘관장은 상대의 수준에 따라 다른 포켓몬을 사용한다’라는 설정이다. 새로 등장하는 자본이 성장할 수 있도록 큰 자본이 마구잡이로 흡수해 독과점하지 못하게 하는 국가의 제한과 너무나 닮아있다. 그것이 거대 자본에 대한 국가의 통제 시도이면서 새로운 세수 확보를 위한 시도이기도 하듯이 포켓몬 세계에서는 관장이나 사천왕이나 챔피언이나 하나같이 포켓몬 승부에 관성만을 느끼는 경우가 많고 새로운 트레이너를 찾는다. 본인들의 존재가 새로운 트레이너의 창출을 막고 있는데도. 국가가 없으니 국가가 맡고 있던 역할이 떠밀려온 것이다.
갤럭시단의 조무래기들은 정석적으로 노동자에 들어맞는다. 갤럭시단 조무래기들이 간부들과는 달리 다른 이들의 포켓몬을 빼앗는 일차원적인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는 그들의 악한 성정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포켓몬, 즉 월급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이 주식에 투자한 결과 갤럭시단으로 묶인 것을 은유하는 서사적 장치인 탓이다. 그렇다면 태홍 역시 어린 나이에 투자에 성공한 사업가이지만 이제는 본인이 직접 투자라는 위험을 짊어지지 않은 채 간부와 조무래기에게 윤리적 실질적 부채를 부려놓는 이들을 모방하는 것이다.
주인공에 공명하는 청년들
그렇다면 노동에 포함되지 못하는 청년층이 《DP》에 열광하는 것도 당연해진다. 주인공은 겉으로 보기에 챔피언과 같은 기성 트레이너나 갤럭시단 조무래기와 같이 다른 이들을 착취해 성공한 이들과는 다른 사람인 것이다. 도구도 없이 포켓몬 한 마리로 시작하고, 기성세대045인 체육관 관장들을 하나하나 이겨내며 결국 챔피언이 되어 세대교체에 성공하는 전형적인 성공서사를 직접 체험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앞서 말한 《DP》의 부자유는 완전히 무시될 수 있다. 지연은 전혀 없는 서사적 긴장을 대신하고(이 공격에 저 포켓몬이 쓰러질까 그렇지 않을까? 체력바가 움직이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고 아! 쓰러졌다!), 신진 자본가가 된 주인공은 ‘비효율’을 감수할 동인이 없다. 이것은 온전히 자신의 성공이며 다른 이 혹은 사회의 기여로 인해 나의 업적이 나눠지는 듯한 박탈감을 느낄 이유도 없어진다. 나를 돕는 다른 이와 내가 공유하는 사회는 진작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가 나로부터 나오고 모두 주인공-나에게 고마워하며 세계를 구한 것, 그 외에 부수적인 여럿이 내 덕분이라고 말한다. 이 세계를 내가 구했고 설화에 나온 포켓몬은 내 포켓몬볼 속에 잡혀 있으며 심지어 볼에 넣어줘서 고맙다고 하고 있는데,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 최적화도 되지 않은 게임에 친밀도라는 시스템도 마련돼있다. 현실에서는 어떤 기업인에 대해 홀로 자신만의 의지로 성공해냈다는 말에 여러 ‘핀잔’을 받을 수 있지만, 게임 속 주인공——게다가 나 자신——에 대해서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어 보이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개발자들이 친절하게 가려주고 잘라낸 세계를 만들어낸 덕분이지만.
태홍의 문제
이제 앞서 보류했던 기업인을 볼 때가 되었다. 게임 내적으로 신생 대기업 회장일 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렇다면 주인공과 비슷한 서사를 공유해 청년층의 호감을 살 법도 한 태홍을 막아내야 할 이유는 악의 조직을 이끌고 세계를 말 그대로 처음부터 다시 만든다는 그의 계획에 있다. 이때 태홍을 막아내는 일은 사실 악덕인 대기업의 ‘나쁜 짓’을 046막아낸다는 것과 그 ‘나쁜 짓’이 세계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그것이 자유시장주의자를 위한 것이든 반자본주의자 내지는 사회주의자를 위한 것이든——계획의 일부라는, 그리고 그 변화는 신화적일 정도로 아주 매혹적이지만 여전히 ‘나쁜 짓’이라는 것이 뒤섞여 있다.
태홍이 원하는 거대한 변화에는 감정이 없는 세계라는 제목이 붙었는데, 게임의 엔딩 이후 특정 캐릭터와의 대화에서 은근슬쩍 밝혀지기를 어릴 적 친했던 포켓몬과 관련이 있는 바람이었다고 한다. 로토무라는 이름을 가진 그 포켓몬이 낮은 레벨을 설정받은 채 특정 이벤트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봐서 포켓몬 승부에 관련된 상처일 것으로 추측 되는데, 로토무를 성장시키지 않은 자신 또는 승부를 걸어대는 다른 트레이너를 향한 원망이 있었을 것이다.
감정은 곧잘 비이성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따라서 비효율적인 것이 된다. 이때 변화를 막는 것은 비효율과 상처를 기꺼이 감수하는 세계의 승인이 될 것이고, 태홍은 단순히 비효율을 용납하지 못하는 신자유주의적 악당이며, 주인공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비효율적인 시간낭비와 상처입음이 지워져야만 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게 된다.
또는 감정을 특정해서 탐욕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시장 내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면 타자를 갈취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감각을 만드는 것이 감정인 셈이다. 그러므로 변화를 막는 것은 타자를 향한 무한정의 갈취를 승인하는 일이 되며, 태홍은 어릴 적의 포켓몬과 관련된 상처를 다른 이들이 겪지 않게 하려는 시도가 된다. 제작진으로서는 포켓몬과 다른 트레이너를 갈취하는 게임을 만들었어도 적어도 엔딩을 확실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앞의 경우를 의도했을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갤럭시단 조무래기를 완전히 악역으로 설정해 갤럭시단 자체도 악의 조직이 되었으니 태홍만 이질적인 캐릭터로 선회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DP》는 최적화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게임임을 기억해야 한다.
047그러나 포켓몬에 열광한다는 것은 주인공이 세계를 구하고 챔피언이 된다는 뻔한 결말보다도 결말에 이르는 여러 가지 확률과 반복에 기반한 과정——포켓몬 포획 육성 승부 등——에 열중하는 일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자기증식하는 포켓몬 승부를 즐기는 주인공들이 원하는 것은 무한정의 갈취가 승인되어 더 많은 포켓몬 승부가 가능해지는 일일 것이고, 뒤의 경우에 맞는 경험을 하게 됐을 것이다.
현실에서 자본의 자기증식의 한계가 어디일지를 가늠하기 어려운 것에 반해 포켓몬 승부에는 처음부터 알 수 있는 명확한 한도가 존재한다. 물건을 일정 수 이상 보유할 수 없고 포켓몬의 레벨은 100이 최대에 한 턴에 한 가지 행동만이 가능하며 최대로 보유할 수 있는 4개의 기술은 저마다 사용 가능 횟수가 설정돼있다. 따라서 주인공이 아무리 무한정한 포켓몬 승부를 원해도 불가능함이 명확했고, 태홍은 포켓몬 승부에서 진 후에 미련 없이 떠나가도 되었다.
태홍은 트레이너들이 가진 포켓몬 승부의 자기증식 욕구를 없애는 데 실패했지만 많은 것들이 잘려나간 포켓몬 세계이기에 후련히 사라져도 파국이 오지는 않는다. 승부가 성립하지도 않고, 한계가 미리 정해진 채 형성되지 않은 자본에 대한 변화의 시도가 실패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태홍처럼 훌쩍 사라지기?
몇 가지 태홍의 시도와 유사한 시도들이 있었던 것 같지만 마찬가지로 실패했다. 태홍의 실패는 현실의 시도에 신화적인 개입이 있(었)더라도 대안을 향한 시도가 실패할/했을 것이라는 선언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선언은 《DP》에 공명해 게임을 다시 시작해048대는 사람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되풀이된다. 되풀이될수록 태홍의 대사는 더 빠르게 넘겨질 것이고 지연 탓에 빠르게 넘겨버릴 수 없어 태홍의 대안에 대한 귀찮음이 더 커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마도 대안이 실패할 것이라는 선언에 대해서도 귀찮아질 것이며, 다시 태홍과 비슷한 것이 나타나 대안을 말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DP》에 공명하는 청년들의 공명하는 정도가 줄어들고 태홍의 대안을 다시 찾아볼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불규칙하지만 지속적으로 엔딩을 보는 행위에 의미부여를 해 본다.
나가며
이 글의 전체가 자기 진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내가 본문에서 서술하는 바로 그 청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바로 그 《DP》-《하트골드》 및 주인공에 공명한 소년이었고 그런 공명을 가지고 자란 청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실은 ‘공명하는 청년들’이 아니라 ‘공명하는 청년’이라도 좋은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을 즐기는 경험은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고, 그것을 일정부분 유도하는 것이 포켓몬과 같은 선형적인 JRPG의 플레이 경험에서 작용하는 힘이기도 할 테니까. 본문의 끝에 쓴 태홍의 대안이라는 것이 별 볼 일 없고 터무니없는 것일지라도, 상상할 것 없는 단조로운 게임에서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기를 바라본다. 성공의 방법이 단조로운 게임에서는 실패를 상상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