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2호) 외롭게 노동하는 밤에 상상하는 새로운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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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게 노동하는 밤에 상상하는 새로운 연대

이준협

비서공 활동회원

(전) 서울대 학소위 집행위원장
(2025년 1학기)

주말 밤늦게 작은 독서실에서 일한다. 주말 밤의 노동은 세상의 시간과 어긋나 있다. 사람들이 하루를 정리하고, 약속을 마치고, 휴식을 준비하는 시간에 나는 일터로 나선다. 근태경비 시스템에 출근 지문을 찍고, 직원석에 앉아 모니터에 몇 개의 창을 띄운다. 시간당 두 바퀴씩 열람실들을 돌며 NFC 시스템을 태그하고 돌아올 때마다 다시 모니터 앞이다. 나의 주말 밤은 클릭과 확인, 순찰과 기록으로 채워진다.

이 노동은 혼자서 이루어진다. 같은 시간에 함께 일하는 동료 없이, 나는 한 지점의 단독 관리자다. 순찰을 돌며 면학과 환경을 관리하는 것도, 전화를 받는 목소리도, 환불을 설명하는 언어도, 민원을 감당하는 표정도 모두 혼자다. 시끌벅적한 사회로부터 한참 멀리 내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도 내 행동은 CCTV로, 내 말은 통화녹음으로 기록되고 있다. 작은 실수나 문제라도 들켜 책임이 내 탓으로 돌아올까, 본사에서 나를 감시하며 평가하고 있을 누군가가 있을까, 상당한 긴장감은 계속 흐른다. ‘아무와도 함께 일하지 않지만 언제나 누군가에게 노출’되어 있다는 역설적인 감각 속에서 일은 몇 시간이고 이어진다.

시설과 환경을 관리하는 노동은 소리 없이 이루어진다. 열람실을 돌며 온도를 확인하고, 냄새를 체크한다. 학생들 사이를 걷고 복도를 030닦는다. 책상 위를 쓸고, 쓰레기를 비우고, 전등을 끄고, 창문을 연다. 누군가의 집중을 방해하지는 않을까 최대한 조용히 움직인다. 깨끗한 공간, 정돈된 자리, 고요한 분위기. 잘 관리된 환경은 눈에 띄지 않을수록 성공이다. 환경을 만드는 노동이란 많은 손길과 정성을 타는데도, 환경을 만드는 노동자는 학생들의 눈길로부터 벗어나 있음을 절감한다. 하긴 이 독서실을 다니던 고등학생 때의 예민했던 나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감이란 배경으로만 느껴졌지, 사람이자 동지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으니.

어느 상품과 서비스든 ‘만드는 사람의 시간과 에너지 투입’을 ‘만들어진 결과물 위에 얹히는 사람’이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렵나 보다. 동아리나 학생회에서 내놓는 볼품없는 행사의 이면에는 긴 시간 이어진 기획과 준비의 과정이 있는데. 아침 일찍 카페에서 생각 없이 받아 드는 커피 뒤에도 개점 전 청소와 재료 준비, 기계 점검 같은 손길이 먼저 지나갔을 것인데. 깨끗하게 정돈된 강의실이나 복도는 누군가가 이른 시간 혹은 늦은 밤에 조용히 청소를 마친 결과인데. 매끄럽게 유지되는 일상의 표면 아래에는 늘 이름 없이 지나가는 노동이 깔려 있는데.

이곳의 일은 거대한 전산 위에서 움직인다. 좌석은 색깔로 표시되고, 출입은 분 단위로 기록되며, 벌점은 자동으로 누적된다. 환불액은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계산해 안내하고, 대기 순번은 시스템이 문자로 발송한다. 결제 금액은 단말기가 기록한다. 기업이 만든 구조는 크고 노동이 얹는 재량은 작다. 매뉴얼에 충실하게 일하고, 하루 동안 한 일을 직원노트에 정리해 남길 뿐이다.

이곳의 교대표는 ‘월화수목금토일, 오픈-미들-마감’으로 틈 없이 짜여져 있다. 사내 메신저는 다른 지점이나 상급자와의 사이를 긴밀하게 연결해주고, 문제가 생겨 상황을 사진과 글로 전송하면 지침과 답변이 내려온다. 근무마다 기록해둔 직원노트를 모으면 후임자에게 건네는 인수인계서가 된다. 모든 일은 기록과 시스템을 통해 감정 없이 얼굴 모031르는 타인에게 조용히 건네진다. 일은 여백과 오차 없이 돌아가지만 함께 일하고 있다는 감각은 희미하다. 지금의 일터란, 동료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멀리 떨어져서, 이리도 메마르게 가동되는 것일까.

일요일 밤, 시스템에 찍은 퇴근 지문이 지점 게이트를 닫아내고 나면, 비상문을 개방하며 일터를 나선다. 곧이어 서울을 가로지르는 심야버스에 오르면서, 새벽이라는 시간대에 군중을 이송하는 버스기사 노동자 선생님의 노고를 꼭 한 번쯤 떠올리며, 낮과 밤의 경계를 허무는 그 일을 조용히 찬미한다. 인공의 빛이 밤하늘 아래를 수놓은 도시를 가로지르며, 꼬박꼬박 찾아오는 텍스트 연락을 읽고, 알고리즘이 내려주는 디지털 음원을 듣는다. 버스에서 내리고 나면, 일해서 벌어낸 돈을 다달이 내며 독거하는 셋방에 몸을 잠시 누인다. 눈을 뜨고 일어나 월요일 낮이면, 강의실에 앉아 학업이라는 또다른 노동을 마주한다. 노동으로 채워진 시간들이 매주 반복되며 매달, 매달 반복되며 매년이 된다.

‘단결’, ‘단체교섭’, ‘단체행동’ 같은 단어가 연상시키는 전통적인 노동 현장은 주로 대량생산 공장 같은 집단적인 공간이다. 노동자들은 ‘같은 공장의 노동이 단련시킨 단단한 몸’, ‘함께 일하는 동료끼리 공유하는 진하고 끈끈한 감정’의 동질성으로 뭉친다. 같은 작업복을 입고, 같은 쇳소리를 듣고 같은 먼지를 들이키며, 같은 시간에 출퇴근하며 동고동락한다. 위험천만한 현장과 사측의 횡포로부터 비롯한 같은 위험을 함께 직면한다. 컨베이어 벨트 옆자리 동료들과 함께, 사용자의 위법과 구사대의 탄압에 맞서, 머리띠를 두르고 통일된 구호를 힘차게 외치며 연대한다. 그렇게 사회 변혁의 주체가 된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하는 노동은? 그런 그림이 도무지 그려지지 않을 만큼 사뭇 다른데. 정적만 흐르는 일터를 혼자서 관리하는데. 모니터에 창을 띄우고 그 앞에 웅크려 마우스를 클릭하는 이 일이 주조하는 몸은 단단하지 못하고, 누구와도 감정을 공유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내032는데. 냉난방과 휴식시간, 야간수당은 충분히 주어지고, 손 끼임이나 상급자로부터의 구타도 없는데. 긴장과 불안, 피로만이 어째서인지 계속 있는데. 어쩌면 오늘날의 많은 다른 ‘일하는 사람’들 역시 이럴지도.

세상이 잠든 틈새의 일, 동료 없는 고독한 일, 소리 없는 조용한 일, 전산과 원격으로 메마른 일, 그러면서도 모두의 매일을 채우는 일. 공간과 몸과 감정을 공유해 뭉치기 어려운 파편화된 고용조건의 다양한 노동들은, 도무지 ‘무엇으로’, ‘어디에서’ 연대하고 ‘어떻게’를 지향해야 할까.

일하는 중 휴대폰으로 들어오는 알림에 이끌려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비서공 단톡방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는다. 비서공은 서울대학교의 차별적인 고용구조를 바꾸고, 학내 노동자와 학생 모두의 권리가 보장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연대체다. 청소노동자의 죽음을 기억하고, 생협 조리노동자의 노동강도를 문제 삼고,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을 주장하며, 학내 비정규직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한다.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이수기업 정리해고 노동자, 팔레스타인 학살에 맞서는 국제연대까지 함께하고 있다.

이 온라인 방에서는 실험실에서, 강의실에서, 사무실에서, 학교 밖에서 벌어지는 소식과 정보들이 끝없이 이어지며 흐름을 만든다. 머리띠를 두른 대오 같다. 고통받는 소식들은 서로 다른 일터에서의 경험이지만, 그것들을 연결짓고 엮다 보면 불안정과 차별, 책임 회피와 외주화 등 ‘공통되는 분명한 구조’ 그리고 나와의 접점을 찾아낼 수 있다. 다양한 노동들은 ‘이것으로’ 동질성을 발견하고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계속해서 접속’해 있다 보면,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활동회 원과 연대회원들이 각자마다 바쁘고 곤궁스러운 자리에서 살아가면서, 배워가면서, 노동하면서도, 간단하고 느슨하게나마 참여하는 중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간혹 틈을 내어 현장에 나서거나 행동하면서 말이다. 다양한 노동들은 ‘이런 데서’ 연대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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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앞으로 외치는 노동의 권리는 ‘심리적 고난의 치유’까지도 충분히 살펴야지 싶다. 근대의 노동운동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속 노동자의 물적 조건과 궁핍을 구조적 문제로 바라보며 혼자 말고 뭉쳐서 기업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물리적 고립과 원격 노출 등 동시대의 노동에서 으레 경험하는 고도의 긴장과 불안, 피로를 치유하는 것 역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우리가 함께 진단하고 감당해야지. ‘그렇게’ 사람을 살려야지.

자동화와 초양극화 등 인류 공통의 난제가 대두되는 흐름 위에, 서로를 밀쳐가며 무의미하게 경쟁만 하고 있기에 무력해져가는 개개인이다. 그저 살아있다는 데 귀속되는 권리를 증진하고 사회안전망을 탄탄히 하는 일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세계인의 몸, 말씨, 믿음, 정체성이 다르되 인격과 존엄의 주체로서 평등한 것은 ‘살아있다’는 조건이 공통된다는 데 의한다. ‘노동한다’는 희미한 공통점만으로도, 이만치 떨어져 서로 다르게 일하는 우리가 연대할 수 있었으면.

독서실에서 일하는 외로운 밤이면 이렇게 탈근대적 노동운동에 관한 희망적인 상상을 무르익힌다. 계속해서 접속해 있는다는 간단한 참여로, 대오처럼 이어지는 소식들 사이에서 공통의 구조를 찾고, 서로의 심리적 고난까지도 다독인다는. 하지만 빛이 있다면 언제나 그림자도 있다. 다른 한편으론 생존과 해방을 위한 가열찬 절규와 분투들이 남들에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구석에서의 무신경한 스크롤에 갇혀버리고 있진 않나 걱정도 쌓인다.

그래서 나는 정보의 파편들을 아낌없이 주섬주섬 모으고 컴퓨터 속 서재에 정리하는 적극적인 실천도 이어간다. 언젠가 이 모든 걸 땔감 삼아 모닥불을 피워, 각자의 피드 너머의 극단과 중독에 눈멀어 버린 세상 사람들 모두를 훤히 밝힐 날을 기약하면서. 서로 너무나 멀어진 우리가 ‘이대로’에 만취해 안주하지 말고 ‘제대로’ 갈아보자는 뜻으로 하나될 날이 조만간 있기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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