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anopica №03 (2026 Autumn) § 「서로를, 스스로를, 그리고 삶을 ‘조직’하자고 말을 건네주십시오: ‘운동권’이 없어진 세상에서 노학연대 운동과 관계맺는 ‘동지’들에게」
서로를, 스스로를, 그리고 삶을 ‘조직’하자고 말을 건네주십시오:
‘운동권’이 없어진 세상에서 노학연대 운동과 관계맺는 ‘동지’들에게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비서공)이 창립된 2018년 봄부터 비서공에서 회원으로 함께해왔습니다. 이 글을 쓰는 2026년 8월을 마지막으로, 8년하고도 반년 동안 비서공과 함께 활동해 온 시간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뒤늦은 졸업을 맞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비서공과 함께하던 시간 동안 대표직을 맡기도 했었고, 대표직을 마무리한 후에도 집행위원으로서, 활동회원으로서, 운영진으로서, 비서공을 새로 맡아주시는 분들을 계속 돕고자 했습니다. 공보 관련 일은 여러 해 동안 맡았고 그래서 많은 회원분이 저를 비서공의 소식을 전해주는 목소리로 기억할 것 같습니다. 졸업을 하게 된 만큼 이제는 그러한 역할을 모두 내려놓고, 한 사람의 연대회원으로서 비서공을 조용히 응원하고자 합니다.
8년 반은 꽤 긴 시간인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활동을 정리하면서 저도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말도 많았습니다. 당부의 말들입니다. 조금 일찍 할 걸 싶지만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당부의 말들을 비서공 회원들께, 그리고 회원이 아니라도 비서공과 관계를 맺거나 비서공에 관심을 가져 온 모든 분들께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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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7월 12일, 학보사 『대학신문』 인터뷰차[1] 촬영한 사진. (제공: 대학신문 김민주 사회문화부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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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 스스로에게 아쉬웠던 점들을 짚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비서공이 창립된 직후, 저는 한 가맹단위의 파견인으로 비서공을 드나들었지만 책임 있게 비서공 활동에 결합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다른 하고 싶은 활동들이 많은 시기였습니다. 흔히 ‘운동권’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조직이, 그리고 문화가 남아 있던 시기였기에,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활동의 영역이 넓게 느껴지기도 했죠. 새터(새내기 새로배움터)에 가면 민중가요에 맞춰 몸짓 추는 것을 배우고, 단과대학생대표자회의가 끝나면 폐회 식순으로 〈혁명의 투혼〉을 부르며, 학교 축제에는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회)에서 찾아와 연대 장터를 열어 떡볶이를 팔고, 장터 앞에서 막사(막걸리 사이다 칵테일)를 마시며 본부점거 투쟁과 물대포를 쏘던 대학본부의 폭력에 대해 선배들에게 이야기 듣던 시대였으니까요. 그런 과거가 꼭 좋기만 했던 것만은 물론 아닙니다만.
학생회도, 진보정당도, 난민 인권 운동이나 2019년 홍콩항쟁 연대투쟁 같은 국제연대 운동도 그 당시 저학번이었던 저로서는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조금은 거창한 언어를 큰 소리로 외치는 데만 주력했던 것 같고, 발 딛고 있는 공동체와 현장을 일구고 바꾸는 하루하루의 성실한 실천에는 조금 서툴렀던 것 같습니다. 대학기업화 반대를, 총장 직선제와 교육권을, 대학내 성평등을 외치던 선배 학생활동가들의 곁에 있었지만 함께 그런 실천을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경험을 많이 쌓지 못했습니다.
그런 부채감에 고민하다 비서공에서 대표를 맡게 되었고, 2021년 관악학생생활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에 대응하면서 비로소 책임 있게 활동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서툴렀던 점이 많았고 시행착오도 잦았습니다. 그런 저와 함께해주신 분들이 계셨기에 노학연대 운동이, 노동자와 학생이 연대하며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대학을 만든다는 그 가치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저와 그 길에 함께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무한히 고마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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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는 왜 제가 제가 디딘 학교에서 무언가 아래로부터 차근차근 해보지 못했다는 부채감을, 다른 곳이 아니라 비서공에서의 활동으로 이어가고 싶었을까요. 앞서 이야기했듯 제가 비서공에서 책임 있는 활동가로 지내오지 못한 조건이었음에도 말이죠. 아무래도 제가 함께 만들지는 않았지만 곁에 있었던 투쟁들의 경험 덕분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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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3월 15일 비서공 출범 기자회견에서 마이크 들고 발언하는 재현. 재현의 오른쪽에 최분조 당시 민주일반노조 서울대분회 분회장. 최 전 분회장의 오른쪽 위에 송혜련 당시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사무국장. 애석하지만 재현의 발언문을 비롯해서 이날 기자회견에서의 참여자 발언들은 대부분 유실되어 남아 있지 않다. |
입학하자마자 얼떨결에 비서공 창립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어보았고 발언도 해 보았던 조금은 쌀쌀하던 어느 날. 언어교육원 한국어교원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을 위해 학생과 노동자가 함께 행정관에서 자하연을 지나 언어교육원까지 짧지 않은 길을 걸었던 화창한 어느 노동절 전날. 중앙도서관의 일부 열람실에 난방이 꺼졌다는 이유로 온갖 비난을 감내해야 했던 기계·전기 노동자 파업을 응원하고자 도서관 기계실에 찾아갔던 어느 추운 날. 이러저러한 이유로 대학본부 앞에 쳐진 천막 농성장에 누웠다 더위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져 물을 벌컥벌컥 마셨던 날. 한 청소노동자분이 돌아가신 공과대학 302동의 숨 막히는 휴게실 문을 열며 창고에서 새어 나온 지독한 기름 냄새를 들이켰던 날. 민주노조를 지켜야 한다며 노조 탄압 중지 피켓을 들고 민주일반노동조합의 시설관리직 선생님들이 머리를 깎고 그걸 지켜보던 동료들이 눈물 훔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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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언어교육원 투쟁의 일환이었던 ‘129주년 노동절 맞이 서울대 비정규직 노동자-학생 연대활동’ 중 학내 현수막 행진. (촬영: 서울대저널 여동준 기자) |
그런 날들을 함께 겪었기에 저는 비서공에서, 노학연대 운동으로 우리의 공동체를 바꾸는 일에 함께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2021년 여름 관악학생생활관에서 한 청소노동자분이 고된 노동 속에 돌아가셨을 때, 그해 가을 2년 전의 파업에도 충분히 시정되지 않은 현실 앞에 서울대 생활협동조합 노동자분들이 재차 파업에 나섰을 때, 연대하는 운동을 만들고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투쟁이 없는 시기에도 일상 속에서 역량을 쌓아나가는 활동을 계속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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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9월 24일, 생협 파업 정문 선전전에 함께한 재현. 왼쪽에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이창수 수석부지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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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 노동자의 투쟁은 자연스러운 듯 보였던 일상이 멈추고, 그 균열 속에서 대학에서의 우리의 일상이 어떠한 노동으로 유지되고 있었는지 깨닫게 만듭니다. 그런 투쟁을 경험하는 순간이 2021년 이후로 많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일이 늘 있어야 한다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그런데 가끔은 궁금합니다. 비서공과 함께해오신 분들은, 비서공에 애정을 갖고 계신 분들은, 어떤 경험 속에서 관심을, 신뢰를, 때로는 함께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아마 저에게 계기가 된, 투쟁의 옆에 있었던 경험들과는 사뭇 다를 것 같습니다.
사실 2021년 사망 사건의 추모와 재발 방지를 위해 대응하고 파업에 연대하는 일이 조금은 일단락된 이후부터, 제가 비서공에서 어떤 직책에 있든 늘 제 고민은 ‘노학연대 운동에 함께할 수 있는 공동의 경험’에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일상 속에서 제공할 수 있길 바랐고, 그런 경험을 통해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랐습니다. 그렇게 비서공이라는 공동체가 이어지길 바랐고 우리 공동체의 활동이 더 큰 공동체, 즉 학교와 사회를 더 평등하고 민주적으로 바꾸는 역량이 되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공통의 역량과 경험을 만들어가는 비서공이라는 공동체가, 우리의 운동 전반이 더 안전하고 평등하고 편안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경비노동자 분들과 함께 단편영화를 만들고, 그걸 학생들과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국정감사 때 총장에게 학내의 노동 현안과 차별적 현실이 한번이라도 더 질의되도록 대응했습니다. 청소미화 노동자분들과 함께 스포츠를 하며 땀흘렸고, 생협 조리노동자분들과 밥상에 둘러앉아도 보았습니다. 건축학 연구자분과 함께 휴게공간의 질적 환경을 세심하게 뜯어보기도 했고, 스무 명 넘는 조사단원을 모아 노동자 휴게공간 전수조사를 시도해보기도 했습니다. 노동자들과 만나고 조사·연구를 하면서 알아낸 것들을 더 많은 이들이 알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토론회나 집담회, 간담회, 오픈세미나를 자주 했습니다. 일상 속 노동권을 가시화하는 설치미술 전시를 해 보기도 했습니다. 떠나간 청소노동자분들을 위해 추모공간을 만들었고, 관성적이지 않은 추모를 위해 현장 답사를 비롯한 다양한 방식을 고민하고 시도했습니다. 우리의 대학이 사회적 부정의에 연루되는 현실을 보며 SPC그룹과 좋은책신사고 등 노동 탄압 기업과 대학이 관계 맺지 말라고 서명운동으로, 기자회견으로 외쳤습니다. 학내의 권리의제 단위들과의 네트워킹과 공통 지반 구축을 위해 노력했고, 민주주의를 위한 광장에서 깃발을 들었으며, 기후정의행진이나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에 자주 나갔고, 마르크스경제학 강의의 폐지에 맞서는 데 참여했습니다. 이 글이 실릴 『물까치』도 냅니다.
아, 당연히 제가 다 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느 순간 주변을 보니 함께하는 이들이 늘어 있었고, 제가 생각만 했던 일을 시작하고 일구어주신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어떤 경험이 누군가에게 말을 건넸고, 호명에 응답한 사람이 사업을 만들며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주었습니다. 비서공은 지금까지 그렇게 왔습니다. 다른 사회운동도 모두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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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빚지고 있고, 우리가 진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말을 건넨 이에게 짐을 함께 맞들어 보자고 말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누군가에게 계기가 될 의미 있는 경험을 만들며 말을 건네보기도 하죠.
‘운동권’이라는 말에 익숙했을 저의 선배들은 그런 일을 ‘조직’하는 것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 말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딱딱하게 들리기도 했고 때로는 누군가를 타자화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조직된다’고 생각하기 싫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생각해보니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지 않으면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말을 걸어주지 않으면 저도 함께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고, 심지어는 함께 꿈을 꾸는 공동체도, 그 꿈을 공유하고 이야기 나눌 경험도 만들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서로를, 스스로를, 그렇게 공동체를 세상을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조직하자고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운동권’이라는 말에 익숙했을 저의 선배들은 서로를 ‘조직’하는 사람들을 ‘동지’라고 불렀습니다. 그 말을 내심 좋아했지만 학교에서 선뜻 쓰지 않았습니다. 일상에서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 부담감을 줄 것 같았습니다. ‘동지’라는 호칭을 자주 쓰는 어느 동지에게 그 말을 지나치게 많이 쓰는 것 아니냐고 면박을 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의식적으로 그 말을 사용하길 피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말뜻대로 ‘뜻을 같이하는 여러분’을 “동지”라고 불러보고 싶습니다. 아니, 물어보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동지인가요. 우리는 서로의 동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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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7월 15일, 중앙도서관 터널에 추모 사진전을 설치하고 땀에 흠뻑 젖었을 때. 925동 청소노동자 사망사건 대응에 여념이 없을 무렵. |
저는 지금 우리가 ‘동지’라는 말도, ‘조직’이라는 말도 낯선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운동권’ 없는 시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새터에서의 몸짓율동이, 축제에서의 철거민 연대 장터가 이제는 사라졌습니다. 권위적인 대학본부를 조롱하는 ‘총장잔디’라는 명칭도 잊혀지고, 학생회나 노조가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행정관 앞에 천막을 치던 자리는 분수대가 되어버린, 그리고 학생들의 총의를 모아 60동 행정관 건물을 몰아쳐 대학본부를 점거하는 그런 투쟁은 상상하는 것조차 힘들어진,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운동권’ 없는 시대가 ‘운동’ 없는 시대라는 말은 아닙니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현재의 상태를 지양하는 현실의 운동”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때로는 지면 아래에서 마르크스가 좋아했던 두더지처럼, 때로는 전혀 다른 이름과 얼굴을 하고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운동권’ 있었던 시대가 무조건 다 좋았다는 이야기도, 과거의 ‘운동권’을 지금 그대로 재건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오히려 ‘운동권’ 없는 시대의 ‘운동’에 맞는 경험을, ‘조직’의 문법과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여전히 우리가 서로를 ‘조직’할 수 있기를, 그렇게 ‘동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밥을 먹으며 고민을 나눌 수 있다면, 서로를 돌보면서 동시에 토론하고 논쟁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서로에 대한 돌봄이 언제나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듯이, 동지가 되는 일에, 더 나은 삶을 ‘조직’하자고 말을 건네는 일에, 언제나 편안한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언가를 같이 하자고 말 건네는 일은 때로는 부담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필요한 일이며, 무엇보다 큰 배움이 있는 일입니다. 저는 노학연대 운동을 하면서 힘들고 지치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제가 활동하며 희생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동지들이 언제나 제게 가장 큰 가르침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제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관계를 만들 수 있도록, 제 삶을 함께 조직하자고 손 내밀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학교를 떠나 다른 곳에서 새로운 동지적 관계와 전망을 조직하는 일을 다시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렇기에 동지가 되는 일을, 서로와 스스로와 삶을 조직하는 일을, 비서공에 남아 계신 분들 그리고 앞으로 비서공에 함께하실 분들께서 이어가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조직’이라는 말이 옛 ‘운동권’ 시대의 표현이라 낯설다면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함께 꿈을 꾸자고 말 건네길 두려워하지 않는 활동을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무언가를 완벽하게 알고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기에,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고 배우면서 활동을 시작해보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계속해서 활동가로 정체화하고, 때로는 대표자나 운영진을 맡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담을 지겠다고 나선 이들이 외롭지 않도록 부담을 함께 짊어져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저는 부담 없는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부담을 지게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런 부담이 소수에게 과중하게 집중될 때, 부담 없는 공동체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부담을 평등하게, 그러나 기계적인 평등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동지적 신뢰 속에서 평등하게 상의한다는 의미에서 평등하게 나눌 때 편안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일을 잘 해오진 못한 것 같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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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계신 그리고 앞으로 오실 학생활동가분들을 향해 글을 쓰느라 학내의 노동조합 선생님들께 드리는 감사 인사가 늦었습니다. 민주노총 전국대학노동조합 국공립대본부 서울대학교지부, 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본부 서울대학교시설지회, 동 노조 서울대학교기계전기지회, 공공운수노동조합 대학원생지부 서울대학교분회 선생님들께 무한히 감사드립니다. 특히 대학노조 서울대지부와 민주일반 서울대지회의 노조원 선생님들께는 한없이 죄송한 일들이 많습니다. 돌아보면 부끄럽고 부족했던 순간들이 머리를 스칩니다. 그 어떤 교수님보다 값진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들을 감히 ‘동지’라 불러보며 용서를 구합니다. 앞으로 노동조합이나 노동단체에서 활동가로 살아가게 될 때, 제가 지금까지 해 온 활동 위에서가 아니라, 부족함과 아쉬움을 기억하고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마음으로 시작하겠습니다. 그 길에서 늘 선생님들을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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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학생 동지들께 드리는 말씀으로 마무리합니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은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를 만들기 위해, 결국 우리가 더는 필요하지 않은 대학과 사회를 위해 활동하는 조직입니다. 차별과 배제를 넘어서고 더는 비정규성과 불안정성으로 서로를 나누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꿔 왔습니다. 비서공이 필요 없는 대학이 어떤 모습일지, 비서공이 해소될 사회는 어떤 그림일지, 우리가 어떤 이상적 청사진을 그릴 수는 없습니다. 미래는 당장 우리가 설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롭게 나타나는 분할과 억압의 형태들에 대응하는 운동 속에서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함께 꾸는 꿈의 감각을 우리의 운동 속에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활동가들 사이의 평등, 그리고 노동자와 학생이라는 서로 다른 위치성을 넘어서는 우애, 차별 없는 공동체에서 서로 연결되며 느끼는 기쁨을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활동 속에 감각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성차와 연령의 차이를 비롯하여 권력관계로 그리고 차별로 이어지는 사회적 현실들이 우리 곁과 안에 존재하기에, 평등한 공동체와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조직하는 일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학생과 학생 사이에서 관계 맺을 때에도, 학생과 노동자가 관계맺을 때에도, 차이 속에서 평등한 관계를 조직하는 일에 어떠한 정해진 답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때에 따라 그리고 맥락에 따라 무엇이 나은 길인지 판단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시작은 내가 존재하는 위치에 대한 감각, 그러한 위치에서 말을 걸고 손을 내밀 때에 평등한 발화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일 것입니다. 성차와 지향·정체성의 차이, 연령의 차이 속에서 평등한 발언권의 조건이 마련되고 있는지, 공동체의 일상을 돌보고 지탱하는 업무가 평등한 논의 속에 나누어지고 있는지 돌아보면서 시작해보아도 좋겠습니다. 말걸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조금은 흔들리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떨림의 감각을 놓치지 않으면서, 우리가 차이 속에서도 평등한 동지일 수 있음을 활동 속에서 현실로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차별 너머 더 낫게 살 수 있고 더 존엄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음을 함께 느껴봅시다. 함께 꿈을 꾸자고 떨리는 마음으로 말 걸어봅시다. 지금까지 아마 학부생으로서는 마지막까지 남은 비서공 창립 회원일 이재현이었습니다. 제가 마지막이 아니었다면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비서공을 거쳐간 선배 학생활동가들을 다른 곳에서 동지로 만나듯, 그렇게 여러분도 언젠가 저와 동지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무한히 영광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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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8월 11일, 청소노동자 사망사건 7주기 및 5주기 추모 사업[2] 간담회장에서 뜻밖의 졸업선물을 받다. 민주일반노조 서울대지회 노조원들의 ‘민들레산악회’에서 꽃다발과 금일봉을 준비해 주셨다. (촬영: 안승민) |





